또 지역이동을 했다.
기존에 있던 곳에서는 영주권을 지원받기 어려워져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때 다시 토론토로 돌아가지 않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 것에 대해 한동안 꽤 후회를 했다.
이 당시만 해도 영주권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 급하게 여러 군데에 면접을 보았고 결국 이번에는 알버타에 있는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할 수 있었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 마을은 좀 더 풍족한 생활이 가능해졌다.
생활 반경과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며 훨씬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에도 좋은 환경에 오게 되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외로움의 정도가 심해졌다.
주변 환경이 좋아졌다고 내 모든 것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차가 없으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전에 살았던 곳은 규모가 작다 보니 그래도 걸어서 10분이면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의 마을은 1시간 이상을 걸어가야 기본적인 식료품 구매가 가능하다.
겨우 걸어서 간다고 해도 대부분의 물건이 4인 가족 기준의 대용량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1인 가정인 내가 살 수 있는 물건은 아주 적다.
그나마 괜찮은 물건을 산다고 해도 그걸 들고 다시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캐나다는 햇빛이 한국보다 훨씬 뜨겁다.
마치 돋보기로 내 피부를 조준해서 태우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매우 뜨겁다.
이런 여름에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걸어보니 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만큼 너무나도 힘들었다.
몇 번이고 풀밭에 쓰러지고 싶기도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다 버리거나 택배로 보내고 싶기도 했다.
기본적인 생활 이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전히 옆 마을로 가야 하는데 이 때도 차 없이는 이동할 수 없어서 사실 이전의 생활과 거의 비슷했다.
마을의 규모가 커졌지만 뚜벅이로서 살기에는 더 힘들어졌다.
캐나다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가 바로 가족중심문화가 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민자들 역시 가정을 위해서 이민 온 사람이 많았고 이 마을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토론토에서 많이 보았던 인도나 필리핀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가정적인 모습이 더 강했다.
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친구나 친척,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백인은 백인끼리, 인도인은 인도인끼리, 필리핀인은 필리핀인끼리 어울리지 함께 뒤섞여서 어울리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서로의 문화는 존중하지만 자신의 선으로 들어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같은 공간 내에서도 경계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인인 나의 문화를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의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했던 인도인이나 필리핀인들은 비슷한 이방인 처지임에도 마을 내에 자신들만의 커뮤니티가 존재해 있었기에 굳이 나를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사람 자체를 만나기가 힘들어서 외로웠다면 이곳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나와 대화를 할 사람을 만날 수가 없음에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하게 가질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더 큰 고독감을 느꼈다.
모두가 즐겁게 웃고 떠들고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그 속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사람들이 웃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게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종종 마트에서 계산을 할 때나 도서관에 들어갈 때 'Hi'라도 할 수 있는 거에 큰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심한 목감기를 앓게 되면서 목소리마저도 잃어서 이 인사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이전보다 큰 상실감과 외로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전에는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코워커들이라도 존재했고 그들과 공감대라도 형성했지만 이곳에서의 코워커들과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코워커의 대부분은 영주권을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고 이들 중 일부는 일한 지 1년 이상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주권만을 위해서 일하는 게 나쁠 게 있나 싶었지만 그들을 보며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영주권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도 없이 캐나다에서 사는 게 한국보다 나으니까 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만 일한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불안정한 비자 신분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로 세상의 모든 시련을 다 겪은 사람들 같았다.
이래서 시골에서 영주권을 받는 사람들이 독하다고 하는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을 정도로 아무 감정 없이 일만 하는 기계 같았다. 기계도 이보다는 감정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선을 긋는 모습이 정말 사람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주거환경의 문제도 있었다.
급하게 집을 구하다 보니 뷰잉을 하지 않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정말 인생 최악의 집이었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풍기던 구린 냄새와 여기가 집인지 창고인지 모를 엄청나게 쌓인 쓰레기들. 분명히 집주인이 청소했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 찌든 때와 지린내에 절어버린 화장실. 물건을 보관할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침대만 하나 있는 작은 방과 끊임없이 나오는 개미들.
이런 집을 돈을 받고 내주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최악의 집이었다.
집에 1분 1초라도 더 있다가는 미쳐버릴 거 같아서 일이 없을 때도 최대한 빨리 집을 나와 최대한 오랜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고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긴 고민 끝에 영주권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을 하겠지만 이렇게 외로운 시간과 최악의 환경 속에서 어떤 특별한 목적도 없이 영주권을 받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행복하려고 한 결정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며 이 길은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영주권을 빠르게 받으려고 하면 할수록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지독할 줄은 몰랐다. 애초에 영주권을 받기로 한 이유가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냥 살아보니 괜찮아서 더 살아보고 싶어서 이러한 단순한 이유였다.
물론 이런 이유로 영주권을 받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냥 살아보고 싶어서라는 이유 이상의 것을 찾지 못했고 그럴 바엔 지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돌아가서 남은 시간이라도 잘 보내보자는 결론을 내린 거뿐이다.
더군다나 하루종일 일 할 때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구도 가족도 없고, 집마저도 최악인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거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는 지옥에 있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정도로 고통스러운 걸 보면 후회를 해도 엄청난 후회를 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내 미래보다 지금 당장의 행복이 중요하다. 알 수 없는 미래에 투자하겠다고 현재를 망칠 정도로 의지가 강하지도 않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