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네바 Aug 16. 2023

고립되고 고독해지다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느낀 낯선 감정

한평생을 도시에서 살던 내가 한국에서 13시간이나 떨어진 캐나다에 있는 시골에서 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주권을 가질 수 있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전적으로 나를 도와주겠다는, 처음 보는 사람의 말만 믿고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이러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되지만 그만큼 영주권이 절실했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온갖 이민자가 가득한 토론토를 벗어나서 캐나다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에서 살아본다는 경험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을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사람의 욕심은 이렇게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건 알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이 근방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며 마지막 행정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도시이다.

이곳을 지나가면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보던 이누이트나 다른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지막 행정 시설이 있는 마을답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러 시설들도 존재한다.

마트도 3개나 있고, 음식점도 여러 개가 있으며, 하나뿐이지만 카페도 존재한다.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차를 소유하고 있으면 된다.

차가 있으면 옆 마을에 있는 헬스장에 갈 수 있고, 2시간이나 떨어져 있지만 영화관에 갈 수도 있으며, 6시간을 가면 공항에도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차가 없고 그렇게 이 마을에 갇혀버렸다.

먹고 자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뿐이다.

그래서 주말 밤낮없이 일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곳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하는지 후회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적응하기가 무섭게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졌다.

문제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일을 할 때는 해야 될 것이 많아서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지만, 쉬는 날이나 혼자 있을 때 몰려오는 고독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캐나다에 와서 항상 외로움을 느꼈지만 이 마을에 와서 느끼는 외로움은 그 정도가 더 심하게 느껴진다.

마치 몇 톤짜리의 돌이 내 몸 위에 쌓여가는 기분이다.

일을 할 때는 잠시나마 말을 할 수 있어서 덜하지만, 혼자 시간을 보낼 때, 문득문득 하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미칠듯한 고립감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있는 호수에 가서 사람 구경을 하며 고립감을 이겨내보려고 하지만 친구도 가족도 없는 이 쓸쓸한 현실을 이겨내기는 역부족이다.

해외생활이 외로움과의 싸움의 연속이라지만, 세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단절된 곳에서의 외로움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외로움을 초월해 낸다.

항상 나이트 시프트로 근무를 하다가 처음으로 모닝 시프트로 일을 한 적이 있다.

전 날 밤에 일하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일을 해서 일이 끝난 후에 바로 낮잠을 잤었다.

밥 먹는 것도 건너뛰고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밤 10시가 되어있었다.

다시 잠들기에는 이미 잠이 깼고, 어디를 가거나 누구를 만날 수도 없는 시간대에 문득 이곳에 와서 노을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밤 10시에 노을을 본다는 게 말이 안 되겠지만, 고위도 가까이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백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여 밤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밖으로 나섰고 이 날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하게 되었다.

밖에 나가보니 세상이 타오르듯이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몇 분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하늘의 모습이 나를 반겼다.

그래서 그 길로 곧장 걸어서 호숫가로 갔고, 그렇게 아무도 없는 호숫가 근처에 앉아서 하늘을 구경했다.

보이는 것은 호수와 하늘뿐이고, 들리는 것은 물소리뿐이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요함 속에서 그렇게 큰 하늘을 바라본다는 게 참 경이로웠다.

그리고 '세상이 아름다워서 그만 살아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전까지만 해도 외롭다는 걸 실감하고 있지 못했고,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이 순간을 계기로 내가 이곳에 와서 정말 외로웠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모든 친구들이 그립고 가족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웠다.





시골에 오면, 미드에서 보던 생활을 할 줄 알았다.

원주민과 백인이 가득한 이 마을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살아가면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특별한 생활을 할 줄 알았다.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하루하루 즐겁고 재밌는 일만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을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선을 긋고 나를 철저하게 이방인 취급한다.

소속감을 가지면 달라질까 싶어서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말로만 'Welcome'이라며 나를 반기고 자신들의 경계에 들어오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장기 거주 목적이 아닌데 누가 나를 반길까 싶기도 하다.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라도 잠깐 머물다 갈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친절을 베풀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다.

베풀어도 어느 정도, 그 이상을 베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외로움을 깨닫자마자 이곳을 떠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에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게 급급했기에 이 기회가 너무나도 반갑게만 느껴진다.

지금보다 더 큰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가득하고 그곳에서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대도시에서 깡시골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