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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May 11. 2022

아이와 독해 공부를 하며 생겼던 작은 에피소드

 우리 둘째 이야기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이 녀석은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다. 형이 학원을 가거나 운동 갈 때 엄마가 따라다니다 보니 혼자 집에 머물러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나는 아이에게 숙제를 내준다. 그냥 ‘놀아라’라고 하면 좋을 텐데 참 못된 엄마다. 아이가 해야 할 숙제는 수학과 독해 문제집 각 1장이다. 그러나 평소에도 엉덩이가 가벼워 잘 돌아다니는 녀석이 엄마도 없는 빈집에서 진득하게 앉아 문제집을 풀어야 하니 얼마나 좀이 쑤시겠는가. “잊어버렸어”’하며 안 하는 날이 반, 해놨는데 성의 없게 풀어서 채점에 틀린 것이 수두룩한 날이 반이다.


 처음엔 이 녀석의 성실성을 의심했다. 녀석이 꾀만 늘고 공부는 하기 싫어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웃 엄마의 말이 문제를 읽고도 이해가 안 되어 그럴 수도 있단다. 다시 말해서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여건이 안 되어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아이에게 다른 미션을 주었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하고, 문제집은 내가 돌아와서 저녁 시간에 같이 풀자고 했다. 사실 저녁밥 먹고, 치우고, 두 아이 숙제까지 봐주려면 정말 바쁘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되게 지친다. 말이 곱게 안 나온다. 오만상을 쓰고 앉아 아이에게 문제집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독해 수업이었다.


 본문은 짤막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라는 제목이었는데 아이가 대뜸 물었다.

 “쓰레기는 버려야지 왜 안 버려?”

 “모르지. 읽어보자.”

 내용은 산 정상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는데 버려진 쓰레기가 많아 좋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러자 아이가 그랬다.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

 “산 꼭대기에 쓰레기통이 없잖아. 다시 가지고 내려와야지.”

 내 대답에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쓰레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온다고?’

 본인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녀석이다. 나는 조금 더 설명해줄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냥 책을 덮으려 했다. 그때 파란 글씨 세 개가 보였다.



  ‘얼른’, ‘정상’, ‘경치’였다. 아마도 어휘력을 한번 더 확인해보라는 문제집 회사의 의도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이 세 단어의 뜻을 아냐고 물었다. 아이는 ‘얼른’은 빨리하는 거라고 했다. ‘정상’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경치’를 설명할 때였다. 갑자기 손을 이마에 대고 주위를 살피는 흉내를 내더니

 “이렇게 손을 머리에 대고, 주위를 쭉 보면서 경치를 살필 때 하는 말이야. 경치 참 좋~다. 이렇게.”

 웃음이 나와 죽는 줄 알았다. 사실 이날 공부 분위기는 그때까지 험악했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거리고 내가 “똑바로 안 해!” 소리 지르며 진행된 수업이었다. 이 단어 세 개를 물을 때도 내 목소리가 얼마나 무뚝뚝했는데. 그런데 그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경치를 설명하는데 복식호흡으로 웃음을 참았다.

 “그래. 잘 알고 있네. 정상은 산의 꼭대기야.”

 나는 그 분위기를 깰 수 없어서 짧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리고 가만히 녀석을 살폈다. 아이는 내가 그렇게 우스워 죽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저 마지막 문제를 다 풀었다는 즐거움만 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겠다. 엄마 속을 확 뒤집어 놨다가 그 속을 다시 뒤집어 웃게 만든다. 엄하고 무섭게 한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너무 귀엽게 군다. 당장 두 볼을 꼬집어 당기고 싶게 만드는 아이들의 천진난만의 힘!!


 오늘 책을 읽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표현한 어느 문구에서 우리 아이의 모습이 생각나 바로 컴퓨터를 켰다. 나를 웃게 만들고 심지어 글 쓰게 만드는 아이. 이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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