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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Sep 30. 2022

독서록 쓸 때 책의 표지와 띠 종이까지 활용하세요.

 이미 밝힌 바가 있지만 제 글쓰기의 대전제는 ‘쓰고 싶은 글쓰기’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뭔가 쓰고 싶다’고 느끼는 일이 많이 있을까요? 어른들은 책을 읽으면 무조건 기록하게 시키는데 그 책에 아무 감흥이 없다면 그때 아이는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독서록 쓰기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써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처음 독서록을 쓰는 아이들은 아주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바로 줄거리부터 쓰고 마지막에 ‘참 재밌었다’로 감상평을 달고 끝내는 것이지요.

 ‘아니 이런 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이 쓰지?’

 제가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 어린아이들도 그렇고, 아마 저희 엄마가 학창 시절 독후감을 쓰셨을 때도 이 패턴으로 쓰지 않으셨을까요? 왜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고, 줄거리를 쓰고, 한두 줄의 감상평을 적는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을 찾기에 앞서 먼저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먼저 독서록과 독후감에 대한 개념 정리입니다. 독서록은 본인이 읽은 책을 중심으로 ‘기록’에 목적을 둔 행위입니다. 따라서 독서록은 책 제목만 적어도 무방합니다. 지은이, 날짜, 한 줄 평을 적기도 하는데 기록의 범위는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후감은 그 책에 대한 느낌 즉 ‘감상’을 중심으로 적는 것입니다. 따라서 줄거리보다 본인의 생각을 더 많이 담아야 합니다. 아니 반드시 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서평’과 ‘비평’은 어떨까요? 서평은 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입니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지, 그림까지 개인의 평가를 담는 것입니다. 비평은 여기에 ‘분석’을 더합니다. 왜 이런 표현을 썼고, 이런 표현에 대한 역사적 의미까지 아주 전문적이고 세세하게 분석합니다. 그러므로 비평은 전문가의 영역이며 ‘비평가’라는 직업까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의 독후활동 글쓰기에 어떤 형태를 입힐 것인지 부모님들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아이에게 독서록을 쓰게 하고 싶은지, 독후감을 쓰게 하고 싶은지, 서평을 쓰게 하고 싶은지. 초등학교 저학년 선생님들이 과제로 내주시는 독후활동은 독서록과 독후감의 경계를 오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읽은 날짜, 제목, 지은이만 적게 하셨고, 어떤 선생님은 거기에 더해 핵심 단어를 적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인상 깊은 문장 쓰기를 요구하거나 한 줄짜리 감상평을 적게 하시는 분도 계셨지요. 자녀가 어리다면 딱 이 정도의 독후활동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록도 남기고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독후감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독서록이라고 하기엔 부담스러운 ‘7~10 줄 정도로 써올 것’이라는 독서록.(선생님께서 독서록이라고 하셨으므로 일단 독서록이라 정의하겠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니 그런 요구의 글쓰기 활동이 있었습니다. 이 얘기는 책의 줄거리를 1~3 문장으로 요약하고 본인의 감상평을 5~7 문장 정도 써야 한다는 소리인데, 책 한 권의 줄거리를 1~3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사실 어른도 어렵죠. 출판사 직원 정도면 가능할까요?

 아이가 정말 쓰기 싫어하고 힘들어할 때, 독서록의 일정 분량을 채워야 할 때, 책 내용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지 않을 때, 저는 책의 표지와 날개, 띠 종이까지 활용합니다. 책의 겉표지와 뒤표지에는 반드시 이 책이 담고 있는 흥미로운 부분과 핵심 내용이 적혀있기 마련입니다. 책의 구매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죠. 띠 종이는 책에 대한 한 줄 논평입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정도의 내용이 되겠지요. 책의 날개에는 작가 소개와 유사한 책들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유사한 책들의 제목을 보면 이 책의 내용을 대략 감 잡을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그 책을 다 읽어볼 수 없다면 저는 책 뒤에 ‘작가의 말’이나 ‘부모님께’라는 제목의 글들을 읽습니다. 그 책을 쓴 작가의 의도나 기획의도가 담겨있는 부분입니다. 이 책에서 어떤 내용을 아이와 대화하면 좋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학부모님은 ‘작가의 말’은 꼭 읽힌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만큼 해당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 저희 아들과 독서록을 썼던 에피소드를 통해 어떻게 책 표지 등을 활용했는지 보여드릴게요. 그날의 책 제목은 <숙제 안 하는 게 더 힘들어>였습니다. 야마모토 에쓰코라는 일본 작가의 책이었지요. 내용은 숙제하기 싫어하는 반 아이들에게 담임 선생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재밌는 이야기(이 책에서는 거짓말이라고 표현했습니다.)를 만들어온 사람에게 숙제 면제권을 주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자신이 숙제를 못 한 이유에 대해 엉뚱한 이야기를 만들어 옵니다. 말하는 들쥐를 만나 모험하느라 숙제를 못 한 이야기, 연필이 도망간 이야기, 숙제는 했지만 숫자가 하늘 위로 떠다녔다는 이야기 등을 그럴싸하게 말합니다. 마지막엔 선생님까지 아픈 용을 만나 돌봐주느라 아이들에게 내줄 숙제를 만들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시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독서록 첫 줄 어떻게 쓸 거야?”

졸려서 책상에 엎어지듯 앉아있던 제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도 숙제 안 하고 싶어.”

 “응. 그렇게 써. 그런데 왜?”

 “귀찮아.”

 “그래 그렇게 써.”

 쓰기 싫다던 아이가 연필을 잡았습니다. 아이가 문장을 거의 다 썼을 때 저는 슬쩍 다음 문장을 유도해봤습니다.

 “너도 얘네 교실로 가고 싶겠네? 주인공 이름이 뭐였지? 그래 유스케. 너도 유스케 반 학생 하고 싶겠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써.”

 물론 그다음은 “왜?”라고 또 물었습니다.

 “숙제 안 해도 안 혼나니까”.

 아들은 이미 그 문장을 쓰면서 대답을 하더군요.

 “대신 뭐 해야 하잖아? 숙제 대신 뭐 한다며?”

 “이야기 만들어.”

 “넌 무슨 이야기 만들 건데?”

 “몰라. 하기 귀찮아.”

 “그냥 이야기 아니고 멋진 이야기잖아. 그거 써야 안 혼나지.”

 저는 그 순간에 책의 뒤표지를 슬쩍 보여줬습니다. 간단하고 읽기 쉽게 적힌 글들을 한번 읽어보더니 아이는 힌트를 얻고 다음 문장을 썼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질문했습니다.

 “이 책 속 이야기 중에 제일 재밌었던 이야기는 뭐야?”

 그리고 “왜?”라는 질문도 빼놓지 않았지요. 아이가 꼽은 것은 이야기 속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유는 용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더군요. 그렇게 완성된 독서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 : 숙제 안 하는 게 더 힘들어

나도 숙제를 안 하고 싶다. 왜냐하면 하기 귀찮다. 나도 유스케 반 학생이면 좋겠다. 왜냐하면 숙제를 안 해도 안 혼나니까. 대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책 속 아이들은 이야기 만드는데 2시간이나 걸린다. 나는 10분 안에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너무 졸려서 내일 하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서 못 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유스케네 반 선생님이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용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제 아들은 이 독서록을 쓰고 힘들어 죽겠다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분은 ‘왜냐하면’이 너무 반복되니 고쳐야 한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숙제하기 싫어하는 책 속 아이들에 빗대어 제 아들은 ‘숙제하기 싫다’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적었습니다. 저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기 싫은 걸 하기 싫다고 말했으니 그 속이 얼마나 후련하겠습니까.

 독서록도 결국은 본인의 생각을 적어야 재밌습니다. 어른들은 뭔가 멋들어진 표현을 원하지만 사실 책을 읽고 아이들이 얻는 감상은 그렇게 깊지 못합니다. 제 아들의 독서록도 기껏해야 ‘나도 숙제하기 싫다’, ‘내가 좋아하는 용 얘기를 한 선생님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정도의 감상평이 나왔을 뿐입니다. 핵심은 ‘내 생각을 솔직히 쓴다’는 것이지요. 단순하고 깊이 없는 감상평이 성의 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이가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며, 아이가 할 수 있는 표현도 그런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존중해줘야죠. 존중은 귀합니다.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세상 사는 모든 곳에서 그래야 합니다.

  글은 일단 써야 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내 생각’이어야 합니다. 투명하게 내 생각을 쓸 수 있을 때 글의 진도도 나갑니다. ‘하기 싫다’ ‘귀찮다’는 아이의 도발적인 마음도 마음껏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논리적이고 멋진 글쓰기의 기술을 입히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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