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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Oct 16. 2023

엄마는 늘 "숙제 다 했니?"

아동동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면서 나는 말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래도 가끔은 엄마가 휴가 내서 집에 있거나 출장 다녀와서 일찍 집에 올 때도 있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용한 집안을 확인하고 출입구와 가까운 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집에 왔어.”

 “어 그래. 숙제 다 했니?”

 “아니 지금 막 집에 왔다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숙제를 다 해.”

 “아니 왜 짜증이야. 그럼 지금부터 하면 되겠네. 엄마 바빠 끊어.”

 나는 엄마가 그리운데, 엄마하고의 전화 통화는 늘 이런 식이다.

 ‘엄마는 정말 내 숙제가 궁금한 걸까? 아니면 나하고 할 말이 그것밖에 없나? 엄마는 나처럼 내가 그립지 않나?’

 그러다 문득 오늘 점심시간에 나경이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말을 참 이상하게 하지 않아?”

 “뭐가?”

 “아까 수업 시간에 재민이가 앞에 안 보고 딴짓하니까, ‘너는 앞이 잘 안 보이니?’라고 물었잖아. 난 재민이가 새로 안경 맞춰는 줄 알고 다시 봤잖아. 그런데 그게 앞에 칠판 보고 수업 집중하라는 말이었어.”

 “응 그런데 그게 왜?”

 “아니 ‘앞이 잘 안 보이니?’라고 말하는 건 진짜 잘 보이나 안 보이나 궁금해서 묻는 거여야 하지 않아? 그냥 앞에 잘 보고 수업 집중하라고 하면 되는데 왜 다르게 말하지?”

 “그런가?”

 “누가 떠들면 ‘조용히 해’하면 되는데, ‘넌 목소리가 왜 이렇게 크니?’ 숙제 내라고 할 때도 ‘숙제 안 내는 사람들은 손이 없니?’ 왜 그렇게 말해?”

 나경이가 선생님의 성대모사를 해서 그런지 웃음이 나왔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니 또 웃음이 나왔다. 나경이는 정말 재밌는 친구다. 나는 나경이의 말을 생각하며 엄마의 ‘숙제 다 했니?’를 다른 말로 바꿔보려 노력했다.

 “숙제 다 했니?” -> “집에 잘 왔니?”

 “숙제 다 했니?” -> 오늘 학교 재미있었니?

 “숙제 다 했니?” -> 딸 보고 싶어.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았다. 정말 우리 엄마는 내가 숙제를 다 했나 안 했나 그게 궁금한 걸까?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할까? 숙제는 중요하니까? 숙제는 꼭 해야 할 일이니까? 내가 숙제를 다 못 할까 봐 걱정이 돼서?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 궁금증으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의 새벽이 온 것이다.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진 나는 부엌으로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엄마가 식탁에 멍하니 앉아계셨다.

 “엄마 여기서 뭐 해?”

 “어 소영이 왔구나. 그냥 엄마가 잠이 안 와서. 너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아니 그냥 목이 말라서.”

 나는 정수기에서 물 한 컵을 따라 식탁에 앉았다. 그러다 생각을 바꿔 그 물을 엄마께 드리고, 새로 하나 더 떠와서 앉았다.

 “고맙다.”

 엄마는 피곤한 얼굴로 물 한 컵을 마시더니, 또 그 말을 내뱉으셨다.

 “숙제는 다 했니?”

순간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또 그 말, 또 그 말. 너무 화가 나서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엄마는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

엄마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

 “왜 그래 소영아?”

 “엄마는! 엄마는 왜 맨날 나한테 숙제 다 했냐고 물어? 내가 숙제를 다 못 할까 봐 그렇게 걱정돼?”

 “얘는, 학생이 공부하고 숙제하는 건 당연하지. 네가 할 일을 다 했냐고 묻는 거잖아.”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새벽에도! 엄마는 그게 궁금해? 그게 그렇게 중요해?”

 “아니 얘가 왜 이래. 이럴 거면 그냥 들어가서 더 자. 엄마 귀찮게 하지 말고.”

 그 순간 내가 해야 될 말이 떠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엄마 왜 나한테 숙제 다 했냐고 물어?’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외로워.’였다.

 “엄마.......”

하면서 엄마를 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엄마가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안으셨다.

 “왜 그래? 왜 그래 소영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데 눈물이 내 목구멍을 콱 막고 있었다. 매일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차마 하지 못 했던 말. 혹시나 내가 엄마한테 짐이 될까 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참고 참았던 그 말. 그러다 나조차도 잊어버렸던 그 말. ‘외로워. 엄마 나 외로워.’ 그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참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 그냥 말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닿았던 대화. 나는 외롭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다. 그리고 엄마는 퇴사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나를 혼자 집에 둔 것이 늘 미안했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엄마가 그동안 쌓은 경력과 경제적 여건도 무시할 수 없어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학원비도 많이 들 거라고. 나는 그렇게 중요한 것들이 나 하나 하고 견줘진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엄마하고 이런 시간을 많이 갖자고 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엄마가 회사를 다니든, 내가 혼자 집에 있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말로 싸우고, 말 때문에 싸운다. 하지만 말은 초콜릿을 싸고 있는 포장지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벗겨내면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초콜릿이 있는지, 쓴맛이 나는 다크 초콜릿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포장지가 예뻐도, 포장지가 볼품없어도 내가 가지는 것은 초콜릿뿐이니 앞으로도 내면의 초콜릿을 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날의 새벽. 그날의 대화. 나는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그날이 떠오를 것 같다.          

  

이 글은 제41회 마로니에 백일장 출품작입니다. 안타깝게 순위에 들지 못 했어요. 연가까지 내서 참가했는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썼던 작품이라 게시해봅니다.

사람들은 입밖으로 내는 말고 속에 품은 말이 다를 때가 많아요. 그렇게 가려진 말은 대화를 이끌어낼 수 없고 대화 없는 관계는 외로움을 가져오죠. 우리 아이들도 부모와 대화하지 못 하고 외로울 때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써 본 동화입니다
제41회 마로니에 백일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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