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함께 보낸 한 주가 그렇게 흘렀다. 그들은 겨울 밤, 어두웠던 해변 위에 몸을 뉘었고 차갑고 습한 여름 계곡, 밤의 흐름을 알리던 산비둘기의 흐느낌을 함께 들었으며, 단풍이 내려 앉은 산과 산을 걸었다. 시간이 흘렀고, 한 여름과 가을의 시작 그 어느 중간에서 그 둘은 만나기로 했다. 길지만 짧은 순간이었다. 둘은 조금씩 진동하며 떨었고, 그렇게 서로는 서로가 자신에게 조금씩 다가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그 진동은 사랑에서 시작된 울림이 아닌, 과거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엿 본 자신 만의 전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나는 조금씩 앞으로, 다른 하나는 조금씩 뒤로 걸어갔다.
“전화로 너무 많은 말을 해서 그런가, 할 말이 없는 느낌이에요”
“그래요? 재미없어요?”
“아뇨…그냥 좀 지치긴 해요 날이 더워서”
“근데, 할 말이 꼭 있어야 하나요?”
“그래도 첫 만남인데…제가 생각 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거든요”
“그럼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떤 이야기요?”
늘 해를 바라보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바닷가 근처 제철소에서 일하던 용접공이었다. 하루 종일 이글거리는 제철소의 용광로 옆에서 일했고, 쉬는 시간이 되면 홀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늘에 타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사건 이후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너무 오랫동안 해를 바라본 탓에 그의 눈이 멀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늘 홀로 다니던 그가 어느 날, 퇴근시간이 되자 자신의 애인을 소개해주겠다며 친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눈은 태양처럼 이글거렸고, 이마는 구름 한 점 없는 밤의 은색의 달처럼 반들거리며 빛났으며 입술에 흐르는 붉은 핏빛 계곡은 너무도 마시고 싶어 갈증을 일으킬 만큼 탐스러웠다. 부러웠다. 이 마을에 이런 여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나는 당연히 그의 고향에서 온 외지인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둘에게 어찌 만나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우물쭈물하더니 그저 진심이 닿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의심스러워졌다. 외지에서 온 술집 여자이거나, 매매혼으로 팔려온 이방의 젊은 여인이 아닐까 하는 질투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비참했다.
“여기서 ‘나’가 당신이에요? 직접 겪은 일인가요?”
“제가 제철소에서 일했을 것 같아요?”
“아니 그건 뭐… 모르는 일이니까. 아직 잘 모르잖아요 서로”
“계속 들어봐요”
나는 같이 술이라도 마시자고 그에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면서 그 여인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은 마무리할 작업이 있다며 사람들을 물렸다. 우리는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용접공은 혼자 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함께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둘은 제철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와 사람들은 그 둘을 두고 쑥덕거렸다. 둘이 무슨 짓을 하려고 텅 빈 제철소 안으로, 저 더운 곳으로 들어간 것인지에 대해. 나이 많은 잡부는 이러한 도태와 외면이 익숙한 듯, 신경 쓰지 말라며, 오늘 받은 일당을 흔들고는 가라오케에 가자고 했다. 자신이 잘 아는 곳엔 저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며, 가질 수 없는 것 보단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쾌락에 집중했다. 우리 대부분이 그의 말에 동조했다. 죽어가는 이 남자들은 그 여인으로부터 받은 에로스적 충격을 부여잡고, 그 환상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해 납 범벅의 싸구려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중국 여성들의 품 속으로 달려갔다. 익숙한 그들의 모습들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일용직 김씨의 송곳니 사이에 낀 오늘 점심의 육개장이 보였고 그의 귀털이 보였다. 역겨웠다. 나는 그 무리에서 멀어지려고 갖은 변명을 대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멀어지는 그들로부터 “재미없는 새끼” 따위의 말이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 둘이 들어간 제철소로 숨어들어갔다.
사건 이후, 그가 왜 내게 다시 돌아왔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사실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돌아가지 않았다면 그 사건을 목격하지 못했을 것이고 어떻게 보면 내가 돌아간 행위 역시 그 사건의 일부이기 때문이었다. 구태여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솔직히 답변했다. 너의 여인과 조금 더 있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어떤 범죄 행위의 의도나 미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적어도 그 당시엔.
“…” 그녀는 말 없이 맥주를 마신 뒤 빈 잔을 양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유리잔과 양철 테이블이 부딪히며 낸 소음은 순간을 휘 저으며 둘 사이를 맴돌았다. 만약 그곳이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이었다면 그 소음은 둘 사이의 벽을 너머 다른 커플들의 달콤한 시간까지 찢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관광지에 있는 어느 시끌벅적하고 지저분한 치킨집이었고 그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그녀가 맥주잔을 내려놓는 순간에도, 주변에는 소리치는 취객들과 더 크게 소리치며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던 점원들, 적어도 2-3개의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합주하던 외국인들, 황달과 시커먼 얼굴로 자신의 간의 상태를 자랑하던 배 나온 중년 남성과 그가 데리고 온 삼십 대 초반의 외국 여성, 그리고 그녀의 아들로 추정되는 꼬마가 뛰어다녔다. 그는 왜 그녀가 첫 만남에 이런 곳으로 그를 끌고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그의 태도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태도는 그 둘이 함께 지나온 일주일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고, 그 일주일 동안 둘은 서로가 서로의 덫에 이미 잡혀버린 토끼일 것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으며, 착각은 둘의 그런 태도를 불러일으키고 태도가 그런 선택을 야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석은 늘 사건의 그림자를 뒤쫓을 뿐이기에 당시 그 둘은 왜 자신이 그런 태도를,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음은 너무도 자명했다.
“사장님, 오 백 한잔 더주세요” 그녀의 주문은 그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자행하고 선택한다. 그것은 학습된 양식에 복종하는 태도이면서 동시에, 그 학습을 통해 이해하고 있는 보장된 미래와 결과를 꿈꾸는 헛된 기대이기도 했을 것이다. “계속 말해주세요. 궁금해요”
덕분에 그는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제철소 안은 어두운 밤이었고, 그 곳에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용광로 만이 밤 하늘을 밀어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 용광로로부터 약간 떨어진 구석에서 나는 나체의 용접공을 발견했다. 너무도 전형적인 모습에 실망했지만 동시에 전형성에 기대어 나의 더러운 욕구를 채울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나는 몇 푼 안되는 일당을 흔들며 가라오케로 몰려가던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던 돼지일 뿐이었다. 용접공의 모습이 명확히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갈 수록 뜨거운 용광로의 열기에 의해 내 더러운 살 위에는 구정물이 섞인 검은 땀들이 흘러내려 온 몸을 뒤덮었다. 나는 죽음 같은 검은 얼굴로 그를 불렀다.
“이봐 이씨, 뭐해요 여기서?”
그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우유빛 땀으로 뒤덮인 끈적이는 나체 위에 용접 마스크를 쓴 기괴한 모습으로 그는 어떤 조각을 용접하고 있었다. 근처에 그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더러운 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봐 뭐하냐니까”
그는 그제서야 마스크를 머리위로 뒤집으며 나를 돌아봤다. 반쯤 미친 사람처럼 희열에 가득 찬 미소로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보셨어요?”
“뭘 봤다는 거지?”
“못 보셨군요. 이제 곧 다시 나옵니다”
“뭐가 다시 나온다는 거야?”
“당신이 오늘 저녁에 그 눈으로 탐닉했던 그 여자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대체. 나는 놓고 간 물건이 있어서 다시 돌아왔을 뿐이야”
“뭘 놓고 가셨죠?”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양심의 가책 따위가 아닌 무력함 이었다. 그의 뒤에서 혼자 빛나는 강철의 조각상이 주는 아름다움 앞에서, 나의 거짓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저건 대체 뭡니까”
그는 다시 뒤돌아서 용접 마스크를 내렸다. 그리고 알아 듣기 힘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요”
그리고 다시 용접을 시작했다. 수천도의 불꽃이 그녀 주변에서 일었고, 뜨겁게 달아오를 수록 그녀의 미소는 더욱 매혹적으로 커져만 갔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나는 온 몸에 피가 빠르고 강렬하게 돌고 있음이 느껴졌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내 환희 속에서 나는 단 한번도 느끼지 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깨어나고 있었다. 지저분한 옷과 더러운 땀과 체액에 짓눌린 피부 위에서는 솜털 한 가닥 마저 고개를 쳐들고 그녀를 바라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모든 감각이 빛나는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씨발…거의 다 됐는데…”
“왜 하필 지금이야!!”
그는 갑자기 화를 내며 용접기를 땅에 내던졌다. 그리고 벗은 마스크로 그녀를 세차게 내리쳤다. 아직 굳지 않은 그녀의 몸은 땅에 추락하며 산산조각이 났고 타오르던 몸은 빠르고 차갑게 식어갔다. 그의 파괴적인 순간에 나의 환희는 잡아 먹혔고, 시야의 모든 것이 짙게 변해갔다. 나의 환희는 고작 그런 소음 한 번에 깨어질 만큼 얇고 가벼운 존재였다. 나는 그러한 순간조차 가질 수 없는 무의미한 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잡아먹던 용광로가 작동을 멈췄고, 그녀의 몸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짙게 변하는 내 시야가, 이명처럼 귀를 쑤시는 이 고요함을 나는 참을 수 없었다. 탁자 위에 놓여져 있던 스패너를 쥐고 뒤 돌아 서있던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한 번 더 내리쳤다. 또 한번 내리쳤다. 그가 옆으로 쓰러졌고, 조각난 그녀의 몸통이 온전히 내 시야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그가 왜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몸 위에는 천장의 창문을 타고 내려온 은색의 달빛이 입혀져 있었다. 그의 머리통을 내리치며 다시 한번 뿜어져 나온 나의 열정과 흥분은 달빛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잠깐의 고요가 나를 눌렀다. 그 고요속에서 나는 용광로가 식어가며 마지막 빛을 태우는 소리, 열린 창문 너머로 들리는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잡으며 붙어있는 숨을 내쉬는 용접공의 숨소리,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굴러 떨어진 그녀의 머리까지, 지저분한 바닥의 모래와 먼지들을 헤집으며 기어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해할 수 없는 동요가 온 몸에 느껴졌다. 그것은 퇴근시간 그녀를 보았을 때도, 스패너로 그의 머리를 내려칠 때도 느낄 수 없는 살아있음이었다. 그리고 그 깨어난 감각, 나의 또렷한 시각은 어째서인지 용광로를 향해 있었다.
나는 피에 젖은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고 용광로의 사다리를 올랐다. 애플워치의 알람이 울렸다. 내 동료 중 한 명이 내게 사진을 보낸 것이다. 김씨가 중국여성을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진과 그것을 비웃으며 동조하는 그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시간은 밤 11시 30분을 가리켰다. 몇시간 뒤면 다시 그들을 보아야 한다. 다시 역겨운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밤 하늘에 뜬 태양을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온 감각을 집중해 그 용광로 안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용광로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녀가 입을 땠다.
“재밌네요”
“네. 좋아하는 이야기에요”
"그가 직장 동료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권태와 그녀를 바라보며 느꼈던 우울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잖아요. 권태에서 벗어나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동시에 환상에서 벗어났다는 뜻일까요? 물론 다른 상황이겠지만 환상과 함께 지내면서 권태를 벗어나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말 대단하신데요, 한 번 듣고 이런 생각까지 하실줄은 몰랐어요”
“무슨말씀이세요” “저는 당신이 만든 인물이잖아요”
“당신처럼 생각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도 당연한 거죠”
"한가지 의문인것은 왜 이런이야기를 하냐는거죠. 그건 당신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
나도 모를 수 밖에 없어요"
그는 말을 이을 수 없었고, 다시 둘 사이를 옆자리 중년 남녀들의 헛소리와 점원과 취객의 고성이 채워 나갔다. “그만 나갈까요?”
그녀는 그를 앞질렀고, 계산을 하고 입구를 빠져나왔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다가 냇가에 도착해서야 그녀에게 물었다.
“왜 내가 거절 당한 거죠?”
“나는 우리 둘이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글쎄요, 그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이젠 불가능 하잖아요”
“근데 뭐 어때요, 당신이 원하는 건 어쩌면 그 여자보단 이런 환상 아닌가요?”
“환상이 더 아름다운 편이긴 하죠”
“씁쓸하지 않은 진실은 없다잖아요”
“이번에는 그 씁쓸한 진실에 굳게 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조차 환상이었을 수 있죠”
“아직 더 배워야겠네요 저는”
“잘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녀는 처음으로 그를 존칭하여 말했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주일동안 그에게 존칭을 쓰고, 그는 그 존칭을 뛰어 넘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의 환상 속에서 다시금 그가 뛰어넘고자 했던 현실을 마주했을 때, 그는 슬픔보다는 오히려 기쁨과 환희를 느꼈다. 그가 공들여 만든 환상이 이전보다 더 현실적으로 바뀌어 가져 본 적 없는 것을 가졌다는 생각과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안도감이 그를 기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에 잠긴 그는 홀로 관광지를 걸었다. 아직은 뜨거운 한 여름의 열기가 그의 온 몸에 땀을 쥐어짜내고 있었지만, 그는 다시 찾은 자신의 멜랑콜리아를 즐기며 머리 끝부터 흘러내리는 감격과 환희에 젖어갔다. 그의 고개는 땅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