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일지 Day3
오늘은 약간 늦었다. 어제 밤에 꽤 늦게 잤고, 트리플 금기를 달성했다. 일어나서 시간에 맞게 나오긴 했는데 캐리어가 무거워 걷는 길에 정체가 있었고, 지하철에서 졸다가 결국 신도림까지 가버렸다. 2,000㎜ 4개, 2,400㎜ 3개, 900㎜ 1개, 그리고 2,500㎜ 과 2,700㎜ (B벽)을 정신없이 재단했다. 오늘은 한 명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점심식사 시간에 도시락을 싸서 휴게실에서 먹는다. 수다를 들어보면 어디어디에서 안전화를 샀느니, 시험장이 서울시에 몇 개이니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나는 주로 가만히 있는다. 딱히 어울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잘 스미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 노동의 장점은 여럿 있겠고, 상상하는 그대로의 장점이라 굳이 말하지 않겠다. 반면 단점도 아주 많다. 이를테면 맥모골 같은 것이 계속 당긴다든지 하는 당분 섭취의 욕구가 올라오고, 흡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에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고 '만족스러운, 너그럽고 느슨한' 상태가 되냐, 절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레쓰비 같은 것에 손이 가려 한다.
방금까지는 천장을 붙였다. 목을 위로 올려보고 시스티나 대성당을 칠한 미켈란젤로의 목 디스크를 염려하는 마음이 되었다. 우마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사용해야(그것을 옮기고 날랐다가 다시 자리에 두는 과정이 시간을 많이 끌기에)했고, 이미 2미터가 넘는 벽지는 뒷장에 풀이 가득 발라져서 나는 무슨 성화에 나오는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든 자세로 붙였다. 내가 제일 빨리 한 모양인데 중요한 것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중간에 울은 벽지를 처리하기(뗐다가 다시 붙여라), 5로 떨어지게 자른다든지, 전구나 콘센트가 있을 때에 어떻게 찢고 마무리하는지, 그리고 정배솔을 좀 더 빠르고 유려하게 놀리는 법을 배웠다. 모서리가 난관이었는데 다시 한 번 가르쳐달라 하기를 말했지만, 다시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었고 외려 제일 마지막에 선보인 '현장에서 파바박 해치울 때'의 방법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대각선으로 뜯어내고 칼질로 마무리)
그러고 보면 목공 현장에서도 자르기를 할 때에 금을 전부 긋지 않는다. 한 점만 사용하거나 한 점을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표시를 하고 그 점에 맞춰서 절단기를 쓰거나 다른 기계를 쓴다. 삼각자로 90°금을 긋는 건 초보라는 소리. 우리 선생은 인터넷과 유튜브를 많이 보고 자기만의 방법을 익히라 했지만, 왠지 그 말은 조금은 무책임하게 들리긴 했다. 물론 수업에서 모든 방법론을 일러주진 않지만, 그리고 요즘같은 시대에 오히려 어울리는 방식이지만, 그래도 나는 손수 손에 손을 거쳐 전수하는 방법을 제일 선호하는 듯 하다. 해서 두 번씩 물어보고 한 번은 틀리고 웃고 지나갔다.
이제 2,3월 일정이 정해져서, 나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도배 벽지 일은 3주 진행되고 이후에 연습 시간을 가지고 시험을 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들 시험에 합격하길 기원하며 식사를 한다. 다음에는 그 자리에 낄 수 있을까? 끼고 싶은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도배질은 재미있고, 그것의 육체성은나의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가져온 도시락은 놀랍게도 과일과 샐러드였다. 아니, 그걸 먹고 어떻게 5시간을 더 일하나요? 나는 간장에 졸인 닭고기와 햇반 큰 것을 먹었다. 오늘은 소폭 작업을 오전 오후 내내 계속 했는데, 소폭은 처음은 비닐 포장에서 벽지에 손상이 없게 뜯어내는 게 먼저. 그리고 소폭 둘을 겹쳐서 2,000을 5장,(천장) 2,400을 3장, 80을 한 장 재단하는 것이 순서였다. 천장과 A벽이 모두 소폭으로 제공하는 데, 길이를 가늠해서 둘을 구분하는 것도 관건이라고 했다. 나는 반대로 해서 천장에 긴 걸 붙이고, 벽에는 짧은 걸 붙였다가 망했다. 하지만 미미선을 얇게 해서 그점은 칭찬받았다. 벽지와 벽지 새를 잇는 미미선이 두꺼우면 그것도 감점의 요인이란다. 그래서 물었다.
"처음 와서 실수로 탈락하는 비율이 높나요? 감점을 당해 탈락하는 비율이 높나요?"
"처음 와서 손 베면 끝(불행히도 우리 피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풀이 피투성이가 되겠지…), 천장하고 A벽 벽지 실측에 실패해서 바뀌면 끝(실수했다고 벽지를 더 주지는 않는다) 보통 이 두 가지에서 많이 탈락하고, 3시간 20분이라는 시간 내에 어찌저찌하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배를 30분 만에 끊어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되었다. 목공과 같은 점이 먼저 보였다면, 목공과 다른 점도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먼지가 없는 것. 우리는 벽지에 풀칠하는 일이니까, 샌딩은 필요도 없고 세멘을 개는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혼자 척척척 해나가는 점이 있다. 물론 그때문에 사용 가능 공간이 축소되어 앉은 자세로 재단과 풀칠과 숙성을 마치고, 우마에 올라 작업에 쓸 풀칠한 소폭을 옆에 늘어놓고 위에서부터 연달아 붙인다. 그리고 한꺼번에 자르고, 위의 일을 마치고 우마 아래로 내려와 중간의 미미선을 맞춘 다음 아래 걸레받이로 내려간다. 골칫거리는 이음새에 풀이 많아 커터로 자르려다 찢기는 경우. 위의 탈락 경우에서 벽지가 지나치게 찢어지면 그 또한 탈락이었다. 여분의 용지가 없으니까. 그리고 '보'(지금의 건축엔 거의 없지만)가 있는 벽을 바를 때에는 보 밑에서 1로 끊고, 그 다음 다시 소폭을 그대로 위에 붙이는 방식이다. 도배는 쓰레기가 굉장히 많이 나와 다들 방 밖의 중앙 통로로 쓰레기를 던져놓는다. 그리고 수정 만능이 될 수 없는 게 도배지는 한정이 있으니까, 첫 재단에서 망하면 게임 끝이다. 물론 이건 목공도 마찬가지다. 다루끼 말고 오비끼 같은 비싼 걸로 다리를 하려다가 괜히 망할 때 처럼.그리고 커터 날도 굉장히 많이 쓰기 때문에, 그것도 엄청 많은데 일일이 모아 버리기 힘들어 보였다. 나는 주로 풀 바구니를 닦거나 부직포로 풀을 닦아내거나 우마를 옮기거나 하는 청소를 맡는다. 청소 시간 자체도 삼십 분은 걸린다. 쓰레기봉투도 매번 4개 정도 나오는 것 같고.
풀 얘기를 해서 그런데, 중간에 풀을 바르고 바로 닦지 않고 허리춤이나 소맷단에 묻히고 나면 나중에 손이 거끌거끌거려서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있다. 오늘까지는 소폭이었고, 내일은 C벽의 장폭을 할 것이다. 나는 어서 빨리 비단벽지를 바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리고 교육 과정을 위해 당분간 집을 비우기로 했다. 교육을 받는 곳은 문래인데, 여기서 머무는 집까지 한 번에 오는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지하철과 버스와 자전거 모두 성에 차지 않았다. 내일이 기대되는데 장폭과 실크는 크기 자체가 1를 넘기 때문에 일단 굉장히 무겁고(풀 묻은 종이는 다 무거워진다) 어려울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작업에 매우 흥미와 열의를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즐거워하고 있다. 내가 즐거워하고 있어. 도배는 수치와 연산의 작업이라고 막연히 상상했지만 실지로는 도배칼에 갓 끼운 커터로 10㎜씩 5㎜씩 그어버리는 재미가 있다. 전혀 단조롭지 않다. 움직임의 범위가 좁다랄 뿐, 움직임 자체가 적은 건 아니다. 한 번 실습을 하면 안경부터 마스크, 안전화 끝까지 풀 투성이가 된다. 나는 이를 위해 카모플라주 겉옷을 하나 이 만원 주고 샀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의 몇몇은 털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던데, 그러면 좀 더 나은지 궁금하긴 했다. 내가 원하는 3M의 장갑은 고무 재질이라 그다지 상성이 맞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맨손으로 만지는 감촉의 다양성이 는 것도 좋고.
육체 노동을 하면 점심에 뭘 먹어야지, 저녁에 뭘 먹어야지 같은 생각을 한다. 하루의 연속성이 생긴다. 집에 가면 뭘 해야지. 이런식으로 생각을 하며 살 수 있다. 내가 줄곧 노가다를 지속하고 싶었던 이유였다. 그 일이 재미있어서도 있지만, 사람같이 산다는 느낌이 신선하고, 인간적이다. 아직은 도배 벽지를 하며 드는 생각들을 주위에 나누고 있지 않다. 고작 2일차이니까. 겉옷에 조그만 붉은 소련 뱃지를 달았다. 노동하는 인간…. 나는 언제나 노동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비단 나만의 바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이들의 소망같은 것이 아닐까. 기술이 나를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주며, 기술로 버는 돈은 나를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