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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단 Jul 18. 2021

왜냐면 금 간 곳으로 먼저 햇빛이 드니까

자기동일성 대해 말하게  것은 언제였을까? 나는 사학과에서  개념을 배웠고, 그리하여 국가가 혹은 역사가 무엇은 차용하고 무엇을 배제하며 스스로를 구성해나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대학 시절의 학문 경험이 으레 그렇듯 습득한 개념은 단순히 한국, 중국, 일본 같은 곳에 머무르는  아니라, 왕조나 민족에 머무르는  아니라 가장 먼저 나에게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우리는 모두 자기동일성을 위한 존재다. 우리의 말과 , 경험들은 모두 동일성을 위해 차별적으로 계승되며 스스로 생각하는 ‘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자기동일성은 변화하는 시간과 사적 경험을 흡수하며 요동하지만 결국에는 ‘라고 여기는  모양을 완수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고 충분한 재구성을 통해 ‘모양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동일성이란 개념도 자기라 인식하는 모양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모양으로 남는 것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형태이기 때문에 존재하며, 존재한다고 인지해 계속 그것을 거듭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이 어느 시점을 넘으면 굳이 자기동일성을 추구하지 않아도 이미 정해진 형상으로 남아있고 자기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이 점차 줄면서 끝내는 소멸되는 개념이지만 나는 아직 자기동일성을 말한다.  질문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자기동일성은 필연적으로 서사의 재구성을 합의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에게 발생한 일을 어느 것은 역사로, 어느 것은 그냥 해프닝이나 이벤트 정도로 혹은 아무일도 아니었음의 폴더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과거의 자신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전부 기억하는 인간이 있는가? 모두 기억속에 혹은 기억으로 수장되지 않고 떠돌다가 우연히 포획되어 겹겹이 원인관계를 이루며 구축될 뿐이다. 서사가 만들어지고 견고해지며 안정되는 감각. 그리고 그것에 기반해 새로 쌓이는 경험들을 수월하게 배치할 수 있는 능력. 그들은 고사에서 말하는 완벽, 즉 흠결없이 깎인 둥근 구 형태로 자신을 조형할 수 있다. 물론 그 내부는 경옥처럼 단단하지 않은 유기체로 끊임없이 원형을 지속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테지만 그런 정도의 신경은 알아서 조절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편안할 수 있다.



‘자기동일성’과 함께 나를 뒤흔든 주제는 ‘불가능’이었다. 아마 불가능을 먼저 배웠을 것이다. 불행히도 불가능은 학교에서 가르쳐준 가르침이 아니었다. 불가능은 아주 사랑스러운 개념이었다. 관계에 대해 미숙했던 시절 제일 먼저 학습해야했던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나는 내 성적지향이나 정신이상에 대해 거리끼거나 부정적으로 대해진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고, 이것은 곧 사회적 장벽이 되었다. 만약 그 시절들을 거치며 누군가에게 부정당하거나 충돌했던 경험이 있었더라면 훨씬 능숙한 기술을 더 어렸을 때부터 배울 수 있었을텐데, 정말로 내게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처음들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정합한 서사도, 심미적인 부분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가능에 뛰어들어야했다.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지만 정말로 그뿐이었다. 모든 설명은 변명이었다. 사실 몇 해에 걸친 연애기간동안보다 당신의 모든 불가능을 적응해보이겠다고 뛰어든 헤어진 후의 시간 동안에 배운 게 더 많았다. 그리고 불가능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텍스트와 작품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모든 불가능은 고유하다. 그는 내 동일성을 너무 많이 헤쳤다. 원이 재모양을 갖추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나는 그를 꼭 남기고 싶었다. 아니 가두고 싶었다. 그리고 공을 들이며 가능으로 변하는 기능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우리는 모든 정의를 빗겨 달려갔다. 애인, 친구, 지인, 동기…. 아직 연애할 무렵에 ‘연애하는 친구’라는 말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적 있었다. 그는 그 표현을 마음에 들어했고, 나는 언젠가 본 기형도의 글 문집을 모은 책에서 본 그의 형이 적은 서문 말미에 있었던 ‘연애하는’의 憐愛와 戀愛의 사이를 생각했다. 나는 그의 애인인가? 아니오. 친구인가? 글쎄요. 매일 그는 내 안에 새로이 자리한 공간을 넓혀갔으나 하나도 존재의 위협감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날 버려서?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나를 버릴 인간이 아니다. 그저 나는 내 안의 그를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확고한 명제였고 한동안의 나를 살게했다. 문제는 정신병 쪽이었다.



레즈비어니즘이 앞서 몰고 온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어릴 때부터 성적지향, 섹슈얼리티에 대해 고민은 했지만 사랑하고 있는데 뭐 어때, 그 사람 문제가 더 중요하지, 하고 제쳐놓은 것들은 훗날 한번에 용솟음쳤다. 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못 배운 것들이 전부 반사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오래도록 침묵했던 병이 발발했다. 나는 매일 자기동일성에 금이 가 그것을 수리해야 하는, 아니 좀 적응을 하고 정리도 하고 해야할 처지였는데 발발한 병은 아주 활기가 넘쳤다. 자연스런 수순으로 나는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8개월동안 자지 못했으며 환청이 있었는데 그동안의 ‘건전한’ 환청과 다른 속성의 것이었고 자주 자해했다. 나의 서사는 맥주병과 꽁초들이 대신 채워줬고 허름한 집에서 나오는 바퀴벌레가 대신했으며 한없이 추락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여전히 설명할 적확한 문장들이 없다. 그래서 그 기억들은 텅 빈집에 남아 있는 초라한 가구들처럼 남았다. 한번도 말한 적 없지만 혹시 내가 그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걸까? 하는 의문이 지금사 들었다. 하지만 나는 늘 알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알아가는 과정은 당연한 일이지 슬프거나 아플 이유가 없잖은가? 아무튼 관계가 헤집어놓은 원형에 정신병이 깃들자 비로소 과부하가 걸렸다. 아니,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작동원리가 그렇듯 병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시절은 아직 정신병이 아닌 쪽이 더 강세였던 때였다. 환경을 조금 바꾸고, 조금만 노력하면 학교 생활도 잘 할 수 있었다. 사이사이 치미는 병은 아직 약했으니까. 그래서 안일했다. 관계나 병세, 둘 다 내 선에서 알아서 할 수 있었다. 아직은 가능한 나날들이니까. 기꺼이 두 불가능에게 몸을 허락했다. 물컵에 아주아주 미량의 잉크를 떨어뜨리면 물도 여전히 투명할 수 있는 것처럼 외려 나처럼 회오리같은 사람에게 휘말린 이와 병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우습고 치기어린 시절이었다.



나의 두 불가능은 원형을 복구하려는 동일성에 언제나 제동을 걸었다. 매끄러운 연결이 없고 듬성듬성한 성긴 서사가 되었고 언제나 이질로 남았다. 그리고 광활했다. 이것은 뭐 모종삽으로 갯벌을 메우라는 것과 같았다. 나는 꽃놀이를 할 마음은 없었고 내 존재에 생겨나 뽀르르 돌아다니는 얼룩들을 조금 고민했다. 내가 무슨 털색이 새하얀 눈같은 고양이도 아니니 인생에 색깔이 더해지는 것에 큰 거리낌은 없었다. 이런 결함은 내가 뛰어든 불가능에 비하면 사소했다. 다만 정신병이 언제부터 더 심각해졌냐, 2015년을 꼽겠다. 트위터를 시작했고 그곳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문장들은 전부 내 거였다. 그러니까 트위터를 통해 역사를, 일종의 미시사를 구성해나가면서 병에 대한 탐구는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병도 속도를 붙였다. 삽화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조증과 우울증이 훨씬 명확해지고 간극이 심해져 누가 보더라도 조증과 우울증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상태가 되었다. 여전히 알코올중독이어서 수전증이 심했다. 그 뜻은 전각을 더는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림체가 바뀌어야 했다. 필체가 더 극적으로 변했다. 남들이 알아보게 쓰려면 시간도 노력도 배로 들었다. 내가 너무 깊이 뛰어들었나? 정신병은 한 차례의 정의에 만족하지 않았다. 매번 새로움을 달리하며 나를 만들었다. 내가 기껏 세운 탑을 부수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시지프스이고! 레즈비어니즘이든 정신병이든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불가능을 향해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니라 나는 불가능을 향해 돌진할 수 없었을 뿐이었단 것을. 그 언젠가 한때 그럴싸했던 구는 이제 갖은 금과 흠결로 가득했고 여전히 속에서는 쉼 없이 돌고 있었다. 마치 아직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며 어르듯하지만 영원히 섞이지 않을 것들. 내가 품은 내가 아닌 것, 하지만 그것이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만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가능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막을 수 없었다. 언제나 참담했다. 자주 결함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결과가 이 결함이라면, 그것도 앞으로 계속 갈라질 금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확실히 앤드루 솔로몬이 ‘존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동일성을 포기한다’고 선언하긴 했다. 하지만 너는 돈도 많고! 법적 부부고! 자식도 있는 제1세계 백인 게이잖아! 라는 현실감을 지울 수 없다. 그래. 우리는 각기 다른 불가능을 향해 뛴다.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한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 포기하는 순간 불가능이 되겠지. 그때까지 나는 앎을 거듭 할 뿐이다. 당신 고통을 알 수 있을까? 그래도 해볼게. 도무지 뭐인지 모를 불가해한 것이라도 기꺼이 들여볼게. 그러니 내 글에 울지마. 나를 울게 만드는 문장이라 말하지마. 내가 울면서 쓴 글들은 달력이나 책장처럼 끼워 넘기고 평온한 문장과 소박한 단어에 울고 그리워해. 내가 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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