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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진 Feb 02. 2024

일본의 지역온천에 가보다..


몰랐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유명한 온천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온천에 관심 없는 것도 한몫했다. 그래도 차로 5분 거리라니. 아무튼 남편의 제안으로 평일 오후에 처음으로 일본의 지역 온천을 다녀왔다. (주말은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일부러 피했다.)



오후 5시가 못돼서 도착했는데 세상에... 주차장에 자리가 없다. 거의 만석이었다.

친절한 안내원의 지시로 수건을 챙기고 앞을 보니 무인정산기가 보였다. 후불제라 일단 계산은 패스. 우리는 미어캣이 되어 쭈뼛쭈뼛 긴 복도를 따라 행렬을 시작했다. 식당을 지나 마사지룸을 지나니 빨강커튼의 문과 회색커튼의 문이 보였다. 난 사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각종 찜질도 같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는 말 그대로 그냥 목욕탕이라는 걸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찜질먼저 해야 하는데 목욕이라니! 허둥지둥 남편에게 카톡을 남발해 봐도 깜깜무소식... 남편은 아마 모든 걸 알고 계획하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이드니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비록 한 시간 뒤에 오해가 풀렸지만 말이다... 아무튼 연락을 포기하고 딸과 나는 또 한 번 미어캣이 되어 목욕탕을 두리번거렸다.  



한국의 목욕탕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일단 온천탕에 들어가 보았다. 안내문에는 한국어로 탄산천이라고 적혀있었다. 음... 그렇구나. 유리창문을 통해 보이는 노천탕을 무심히 바라보며 별거 아니군하고 중얼거렸다. 무딘 나에게 탄산천이 수돗물보다 무엇이 좋은지는 상대성원리를 배우는 것만큼 난해한 일이었다. 자! 이제는 바깥이다! 나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심호흡을 흐~~ 헙 들이쉰다음 노천탕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춥다~ 추워!'

저절로 몸이 쭈그러들고 발이 총총거렸다. 고작 2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온갖 호들갑을 떨며 걸었다. 영하의 추운 온도와 찬바람이 쌩쌩 부는 곳에 발가벗은 채 서있다는 다고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뜨끈한 물에서 백숙이 되어 갓 나온 것까지.


이것이 노천탕의 맛이구나!


대나무인지 뭔지 모를 나무로 벽을 두르고, 그 사이사이에 높은 나무들이 병풍처럼 서서 청량함을 느끼게 해 준다. 한쪽은 잔디가 한쪽은 베드의자가 놓여있다.(얼어 죽겠는데 베드의자라니..) 온천수를 나무로 만든 기둥과 지붕이 든든히 지켜주고 그 아래에 사람들이 내일 죽어도 여한 없을 표정으로 앉아있다. 우리도 슬며시 들어가 앉으면 보송보송 피어오르는 연기에 몸은 취하고 차갑게 몸을 때리는 바람에 정신은 번뜩해진다. 몸은 뜨끈한데 머리는 차니  온천수도 더욱 소중히 느껴진다. 노천탕에서의 입욕이 이런 느낌이구나.  온천수의 뜨끈함과 외부의 청량함과 바람의 시원함이 동시에 나를 휘감아 정신을 못 차리게 하다가 한편으론 아늑하게 몰아간다. 행복하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물아일체가 이런 것이던가. 그때 따님의 앙칼진 한마디가 날아온다.


"엄마~~ 나 너무 더워. 여기 이제 재미없어! 가자."


더위를 싫어하는 따님에게 온천수는 5분의 신기함이요 그 후로는 사요나라의 대상일 뿐이었다. 결국 나는 노천탕과의 짧은 첫 만남을 뒤로하고 나와야 했다. 생이별하는 여인네처럼 가슴이 저려왔다.


홈페이지속 노천탕 이미지


다음엔 꼭 혼자 와야겠다!



노천탕의 맛을 제대로 알아버린 나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아이들과 남편을 저 멀리 보낸 오전의 황금시간을 노천탕과 다시 한번 함께하기로 말이다.

물론 이곳은 다양한 찜질방도 있다. 남편말에 따르면 목욕 후 찜질방을 이용하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한다.(진실은 저너머에..) 아무튼 우리는 대부분 초등생 이용불가인 찜질방은 결국 포기하고 식당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나왔다. 찜질방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나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노천탕과 제2의 사랑에 빠졌으니 말이다. 혼자 와서 망중한을 즐길 생각을 하니 지금도 배실배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일본 찜질방 온천수 이런 거 나는 모르겠다. 그저 일본 노천탕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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