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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Jun 04. 2022

군위 화산마을과 화산산성

고랭지 채소를 심는 마을과 미완의 산성 성곽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에는 정상 높이가 827.1m인 화산이 있다. 화산 정상부에서 북서쪽으로 약 700m 해발에는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1962년 정부 산지개간 정책으로 180가구가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된 화북4리 화산마을이다. 마을로 올라가면 상당히 아름다운 풍차전망대가 있어, 전망대에서 탁 트인 군위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동쪽에는 조선 후기에 미완으로 남은 성곽인 화산산성이 있다. 자연돌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흉물로 보이지 않고, 산성 주변 푸른 숲과 상당히 어울린다. 왜 화산산성은 짓다 만 채로 오늘날까지 이어졌을까?


풍차전망대와 화산산성이 있는 해발 700여 미터 화산마을로 가보자.


해발 700여 미터 화산마을


화산마을은 상주영천고속도로 신녕 나들목에서 가깝다. 의성 방향으로 28번 국도를 타고 삼국유사 교차로로 내려오면 바로 오른쪽 편에 화산산성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화산산성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험난하다. 커브가 상당히 심하게 꺾이는 길인 데다가 차선도 사실상 1.5차선에 가까워서 반대편에서 차가 오는지 확인하며 운전해야 한다. 6km 정도 조심히 운전하며 가다 보면 마을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데, 우선 오른쪽으로 꺾어서 화산마을 하늘전망대로 가보자.


하늘전망대에서는 화산마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를 오르기 전 7언 절구로 이뤄진 한시가 새겨진 바위가 보이는데, 서애 유성룡이 화산을 찾아와 옥정의 맑은 샘물을 마시며 쓴 시다. 여지도서에 수록되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誰向華山欲問田(수향화산욕문전)

仙源從此有因緣(선원종차유인연)

諸君借我雲梯路(제군차아운제로)

玉井秋風採碧蓮(옥정추풍채벽연)


누가 이 화산에 밭을 일구려 하는가?

신선의 근원은 여기에서 비롯된 인연이 있구나

여보시게 내게 구름사다리 빌려주시구려

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을 캐리로다.


서애 유성룡이 군위 화산 옥정 샘물을 방문하여 지은 한시

화산에 밭은 누가 일구기 시작했을까? 서애 사후(1607) 350여 년이 지나서야 정부 산지개간 정책으로 180여 가구의 화산마을이 들어서게 된다. 서애가 꿈꿨던 구름사다리이자 내가 올라왔던 구불구불한 길도 예전에는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 차량으로도 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초창기 마을 주민들은 기나긴 산길을 수 시간 동안 걸어 내려가 영천 신녕장에서 마을 곡물을 쌀로 바꿔야 했다고 한다. 게다가 수도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마을에서 우물을 길었어야 했다.


하늘전망대 북동쪽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바로 앞을 보면 고랭지 채소밭들과 채소밭 중앙에 태양광 패널이 눈에 띈다. 마을 사람들은 유성룡이 말한 옥정 샘물의 푸른 연꽃 대신에 고랭지 작물인 배추, 무, 양배추와 상추를 심고 있다. 개간 초창기에는 감자와 옥수수를 재배하기도 했다고. 보통 고랭지 채소 하면 강원도 산간을 떠올리는데, 좀 더 남쪽인 경상북도 군위 화산 일대에도 재배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게다가 최근 마을 활성화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5월에 접어드는 때라 노란색이 물든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대신 7월 말에 군위를 올 기회가 있다면 화산마을에서 해바라기 축제를 하니 잊지 말고 보러 오자.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산마을


화산산성과 풍차전망대


하늘전망대를 봤으면 다음 코스인 화산산성으로 내려가 보자. 화산산성은 덕천천을 건너가면 볼 수 있는데, 건너가자마자 화산양수장이라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옛날에는 화산마을 주민들이 이곳의 물을 호수관으로 길러갔는데, 오늘날은 여기서 각 집집마다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다. 화산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상당히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양수장 주변 하천 폭이 넓어서 그런지 산중에 있는 저수지처럼 보인다.


양수장을 지나 올라가면 드디어 옛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문을 만들다가 공사를 중단한 느낌이다. 원래 이 산성은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조선 숙종 35년(1709) 병마절도사 윤숙이 병영을 건설하기 위해 축조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흉년과 역병이 만연해서 더 이상 이곳 백성들에게 부역을 시킬 수가 없어 중단되고 말았다.


자연돌을 다듬은 산성이었기에 도시의 콘크리트 흉물과 달리 오히려 이곳의 숲과 잘 어울린다. 특히 성문의 미완의 무지개형 구조가 상당히 도드라지는데, 오히려 이 모습 때문에 조선 후기 축성 기법과 공사의 순서를 잘 보여준다고 한다. 성문에서 정동쪽 하천으로 자연석과 그 틈에 돌을 넣어서 만든 성벽구조와 2층으로 된 수구문이 보이는데, 상당히 드문 형태라고 한다.


18세기 초 병마절도사 윤숙이 축조하려 한 화산산성. 흉년과 전염병으로 오늘날 미완으로 남아 있다.
2층으로 된 수구문.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형태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날 화산산성 근처에는 화산유격장이 있다. 게다가 임진왜란 시절 영천과 군위에 걸쳐 있는 화산 일대는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한양으로 가는 진로가 되고, 한국전쟁 시절 북한군의 입장에서 화산 남서쪽 신녕면을 점령하면 대구와 영천 중심지, 나아가 경주와 부산과 직결되기에 이 일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장 중 하나였다. 비록 흉년과 역병 때문에 산성 구축이 좌절되었어도, 오늘날까지 군부대가 있는 걸 보면 윤숙이 산성을 구축하려고 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화산산성을 보고 마을 언덕에 있는 풍차전망대로 가는 것을 잊지 말자. 전망대의 붉은 지붕과 노란색 몸체가 매우 강력하다. 그리고 5월로 접어드는 무렵이어서 그런지 분홍빛 꽃잔디들과도 잘 어울린다. 마을 전경과 바로 앞에 있는 군위호가 양쪽으로 시원하게 탁 트여 있어서 전망대를 만든 이의 혜안이 느껴진다. 코로나가 서서히 풀리고 있어서 그런지 풍차 주변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행렬로 가득했다.


화산마을의 명물 풍차전망대


풍차전망대 근처에서 잊지 말고 사진을 찍어야 할 곳은 바로 두 곳이 있다. 하나는 갈색 나무 테두리가 담고 있는 군위호. 프레임 너머 보이는 군위호 주변의 산자락들이 인상 깊다. 군위호는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 지은 군위댐 때문에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군위호와 호수를 호위하고 있는 400여 미터의 산자락의 조화가 관광객의 눈을 사로 잡지만, 호수 아래에는 삼국유사면의 옛 이름인 고로면사무소와 마을 일대가 수몰되었다는 슬픔도 있다. 나머지 한 곳은 나무 테두리 옆에 작은 나무들인데, 친구들과 같이 여기에 온다면 나무 옆에서 군위호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하자.


풍차전망대 사진명소1 : 나무 테두리 너머로 군위호가 보인다.
풍차전망대 사진명소2: 나무 옆에서 군위호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찍어보자.


서애 유성룡이 극찬했던 군위의 화산. 18세기 초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성이 축조되었지만 흉년과 역병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현대에 들어서 산을 개간해 고랭지 채소들을 재배하면서 이제는 화산에 밭을 일굴 수 있게 되었다. 구름사다리 대신 화산으로 가는 길이 서서히 포장되어 이제는 접근도 이전보다 쉽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주민들이 마을을 활성화하기 위해 해바라기도 심었다. 또한 군위호를 바라보고 있는 풍차전망대도 알려져서 2020년 ‘국가균형발전 우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아름다운 광경으로 화산마을이 신선의 근원으로 유지될 수 있을는지? 아름답고 화사하게 느껴지는 풍차전망대처럼 마을이 산뜻함이 영원하길 기원하며 이곳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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