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타지에서 부산 대표 관광지를 꼽는다면 해운대를 언급한다. 여름만 되면 해운대는 파라솔과 함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작년 6월 2일부터 8월 31일까지 코로나19가 완전히 가시지 않음에도 총 방문객 수는 무려 881만 명에 육박했을 정도다. 이는 전국 해수욕장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럼 2023년 새해 1월의 해운대는 어떨까? 3년 만에 열린 해맞이 행사도 수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에 모여 소원을 빌었다. 그럼 해맞이 행사로 끝일까? 겨울에도 따뜻하게 해운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먼저, 2022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고 옛 동해남부선을 새롭게 단장한 해운대 블루라인을 타고 부산 동해 바다를 천천히 즐긴 다음 해운대시장으로 돌아와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파라솔 대신 빛으로 가득한 백사장에서 아름다운 조명을 만끽하면 된다.
겨울의 해운대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한 번 알아보자.
달맞이재터널의 사연
점심시간 전후로 해운대에 도착했다면, 먼저 미포에 있는 블루라인을 먼저 가보자. 블루라인 정거장은 미포교차로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데, 만약 부산역에서 오는 경우 급행버스 1003번 버스를 타고 하차하면 된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은 2호선 중동역인데, 도보로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자차로 오는 경우 부산울산고속도로 또는 광안대교를 지나 장산로 대천램프 교차로에서 해운대 신시가지로 들어가자. 그러다가 양운고등학교에서 우회전 한 다음 순환로를 따라 미포교차로까지 온 다음 부산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인 엘시티 왼편으로 보면 정거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정거장으로 들어가기 전 중앙에 보도블록과 좌우로 조형물들이 가득하다. 보도블록이 깔린 곳은 실제 옛 동해남부선 철도가 지나간 자리다. 무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개통해서 2013년 해운대 신도시 북쪽 장산을 관통하는 노선으로 이설 할 때까지 무려 78년 동안 열차가 다녔다.
해방 후 1974년에는 포항-부산을 이어주는 통일호 통근열차가,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기장 장안읍 월내역에서 부산역과 구포역을 이어주는 통근열차가 운행했는데, 후자는 최근 울산까지 완공된 동해선 광역전철이 역할을 이어받았다.
해운대 블루라인 미포정거장 앞에 놓인 조형물들. 중앙 회색 보도블럭이 옛 동해남부선 철로다. 2013년 장산으로 이설할 때까지 단선이었다.
해운대 블루라인 열차. 열차 좌석은 전부 바다를 바라본다.
미포역 블루라인 승강장에 도착하면 송정으로 가는 관광열차를 탈 수 있다. 관광열차는 좀 특이한 구조인데 좌석이 모두 바다를 바라보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려면 청사포역까지 느리게 운행하는 스카이캡슐을 2층 승강장에서 타도 된다. 또한 체력이 좋고 추위를 버틸 수 있다면 송정역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는데, 기차 철로 옆에 나무데크길을 따라가자.
관광열차를 타고 미포역을 출발하면 첫 정거장이 하나 보이는데, 옛 열차터널이 보인다. 이름은 달맞이재터널. 터널 외부를 무지개색으로 장식한 게 인상 깊다. 터널 아래를 보면 간이전망대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는데, 전망대에서 오른편을 바라보면 동백섬-마린시티-해운대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그리고 터널에서 청사포역까지 걸어가야 볼 수 있는 풍경도 있다. 해송으로 가득한 길을 따라가면, 옛 군 초소들이 보인다. 초소 중에는 큰 바위 앞부분을 뚫어 네 소총걸이가 있는 초소를 만든 곳도 있는데, 터널부터 청사포까지 1985년 북한 간첩선 침투사건 때문에 30년 동안 해안철책이 있던 군사제한구역이었기 때문이다. 해변열차가 다니는 요즘에는 초소 아래에 있는 몽돌해변을 바로 감상할 수 있다.
무지개 색 터널 조형물로 장식한 달맞이재터널. 그 위에 노란색 케이블카처럼 생긴 것이 청사포까지 가는 스카이캡슐이다.
달맞이재터널 아래 바다 위 간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운대 전경. 왼쪽부터 동백섬-마린시티-해수욕장-엘시티가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바위로 이뤄진 옛 초소. 달맞이재터널부터 청사포까지는 1985년 북한 간첩선이 침투해서 30년 동안 군사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청사포, 구덕포와 송정해수욕장
옛 군사지역을 지나면 보이는 곳이 청사포다. ‘푸른 모래의 포구’라는 의미인데, 오늘날에도 두 등대 아래에는 어선들로 가득하다. 청사포하면 조개구이와 장어구이집으로 유명한데, 재미있게도 청사포는 부산에서 1997년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한 조상들도 이곳에서 조개잡이를 하면서 살았을까?
청사포 동쪽 끝에는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다릿돌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를 올라가면 좌편으로는 송정과 구덕포를, 가운데에는 동해바다를, 우편으로 청사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전망대 바닥 일부는 투명유리로 되어 있는데, 바다가 깨끗해서 그런지 안쪽이 훤히 보인다. 운이 좋으면 해녀가 물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청사포 전경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전경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상부. 왼쪽과 중앙 투명유리 아래로 바닥이 훤히 보이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왼쪽으로 보이는 구덕포와 송정해수욕장
전망대를 구경하고 나서 대다수는 마지막 종착역인 송정으로 간다. 하지만 중간에 구덕포 정거장이 있는데,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즐기고 싶다면 이곳에 내리는 것을 추천한다. 원래 양식업과 미역 멸치 조업을 주로 하는 어촌 마을이었는데, 경관이 좋아서 최근에는 대형카페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구덕포를 지나면 이제 열차의 종점인 송정역이다. 역에서 내리면 오른편에 집 모양과 같은 건물이 보이는데, 1940년대부터 80년 가까이 이어진 국가등록문화재 제302호 송정역사다. 역사를 나오면 해수욕장도 볼 수 있는데, 겨울에도 서핑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하다. 만약 추운 바닷물도 괜찮다면, 해수욕장에서 서핑보드 강습과 대여도 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구덕포 정거장 주변에는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동해바다를 감상하며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면 어떨까?
국가등록문화재 제302호 송정역. 1940년대 역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서핑으로 유명한 송정해수욕장. 차가운 겨울 바닷물에도 자신있다면 한번 도전해보자.
해운대 빛 축제
열차 자유이용권을 발권했다면, 송정에서 다시 바다를 감상하며 미포로 돌아갈 수 있다. 미포정거장 입구에서 왼쪽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면 해운대 백사장과 마주할 수 있다. 내가 말한 블루라인의 모든 코스를 즐겼다면, 날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만약 저녁시간이 다되어서 출출하다면, 그랜드조선호텔까지 내려간 다음, 해운대 문화광장으로 건너가자. 그러면 오른편에 해운대 전통시장이 있는데, 곰장어, 떡볶이와 꼬치집 등의 맛집들이 즐비하니 참조하자.
오후 6시쯤 되면, 해운대는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문화광장은 가지각색의 빛기둥과 장식들로 가득하다. 차가운 겨울밤을 밝게 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가 이미 2주가 지났는데도 거대한 트리는 그대로다. 하긴 정교회 크리스마스가 사실 1월 초쯤 되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축제가 끝나는 날까지 함께해도 좋을 것 같다.
해운대 빛 축제. 해운대 문화광장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여전히 있다. 2023년 이곳에서 새해 겨울밤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크리스마스트리를 지나 다시 백사장으로 돌아가면 해수욕장에 수많은 전구들로 가득하다. 서로 다른 색깔의 빛의 파도가 백사장을 휘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추운 겨울에는 여름의 수많은 파라솔을 대신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느낌이다.
빛의 파도구간을 지나면 푸른 조명 위에 수많은 조형물들이 놓여 있는데, 여러 가지 아기자기한 조형물들로 가득하다. 특히 가운데에 있는 빛의 나무들이 인상 깊었는데, 앞으로 보이는 마린시티와 뒤로 보이는 달맞이고개와 잘 어우러진다. 해운대의 겨울은 어느 바다처럼 쓸쓸하지 않고 새해를 위한 희망의 빛으로 가득하다.
해운대 빚 축제. 해수욕장에 있는 수많은 전구들이 파라솔을 대신한다.
빚의 향연으로 가득한 해운대 해수욕장 야경. 조명 나무 좌측 뒤로 보이는 곳이 해운대 블루라인이 다니는 달맞이 고개다.
부산의 대표 여름 휴양지 해운대. 해운대는 겨울여행에도 안성맞춤이다. 해운대 블루라인을 타면 따뜻한 열차 안에서 동해안 절경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각기 다른 정거장마다 각양각색의 다른 풍경과 매력을 선사하는데, 깊이 즐기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겨울밤 해운대도 물론 빠져서는 안 된다. 해운대 문화광장과 백사장들이 주는 새해 희망의 빛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혹시 소중한 사람과 새해에 부산에 올 일이 있다면 겨울의 해운대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