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책길에서
며칠 전부터 문밖을 나서면
가장 먼저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여름의 무게가 사라지고, 서늘한 공기 속에서
햇살의 따뜻한 기운이 얼굴을 스친다.
산책길을 감싸는 공기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계절의 부드러움이 스며 있다.
하늘은 한층 맑아지고,
햇살은 나뭇잎 위에 고요히 내려앉아
세상을 부드러운 단풍빛으로 물들인다.
눈길 닿는 곳마다
하얀 구절초와 보랏빛 개미취가 한창이고, 코스모스는 바람결에 살랑이듯 춤을 춘다.
발끝에 밟히는 낙엽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계절의 변화를 속삭인다. 익숙한 길이지만,
오늘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걸어 들어온 듯하다.
자연은 절기를 정확히 알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옷을 갈아입는다.
그 변화를 지켜보고 있으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호흡처럼 느껴진다. 조급함도, 요란함도 없이
모든 것이 자기의 시간을 따라 흐르는
자연의 변화는 늘 신비롭다.
나는 그저 그 곁을 걷고 있을 뿐인데,
마음은 어느새 차분해지고
계절의 변화에 물들어가듯
내면의 감정들도 서서히 변해가는 듯하다.
가을이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따스한 색감이 마음을 감싸고,
서늘한 공기가 복잡했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한다. 무심코 올려다본 높고 푸른 하늘은
오래전 잊고 지냈던 감정을 불러낸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는 미처 들리지 않던
마음의 소리가 이 계절이 되면 또렷하게 들린다. 낙엽이 땅으로 조용히 내려앉듯,
나 역시 고요히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숨을 고른다.
가을은 교향곡의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다음 악장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숨 고르는
여백 같은 시간의 계절이다.
그런 가을이,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치열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숨을 고르며 내 안의 나와 마주하기를.
소란스러운 마음과 생각들을 정돈하고
쉼을 통해 다가올 계절과 시간들을 맞이할
힘을 얻기를.
계절은 그저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담담하게 메시지를 전한다.
다시 걸음을 뗀다.
어깨를 감싸는 햇살의 온기가 느껴지고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살며시 감싸 안는다.
꽃들은 고운 얼굴로 다정한 인사를 건네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고 숨을 고르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선물하는 계절.
사소한 풍경마저도 특별하게 빛나는 계절.
모든 것이 여유로워지고 아름다움은 더욱더 깊어져 마음을 조용히 흔드는 계절.
오늘도 나는, 가을이라는 이 계절을 사랑한다.
사진. 글 몽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