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한 것 같은데
기분 장애란?
기분과 생각과 의욕과 감각이 함께 변화하는 병으로, 조을증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분 장애에서 '삽화, 에피소드'란 기분 기복이 서로 다른 기간을 말합니다. 우울한 증상이 두드러지는 시기를 우울 삽화라고 하고, 들뜬 증상이 두드러지는 시기를 조증/경조증 삽화 라고 합니다.
<우울증 삽화>
기분이 우울하고 흥미가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거의 매일 우울하고, 체중 변화가 크며 매일 잠을 못 자거나 너무 많이 자기도 합니다. 무력감에 시달리며 자신이 가치가 없다는 생각, 죄책감, 죽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며 머릿속이 흐리멍덩하고 일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경조증 삽화>
환자는 쾌활하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활동적입니다. 심각한 대인관계의 문제나 극단적으로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의 경우 더 생산적인 시기를 보내기도 하고, 에너지가 많으며 창의적이고 자신감 있고, 종종 사회적 상황에서 기능을 잘합니다. 종종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거나 어떤 일을 시작한 후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경조증의 기간은 짧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기간에 생활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경험한 경조증을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들뜬 기분이 때로는 일주일 이상 지속되고 몇 달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짧게 며칠 동안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겨내려고 노력하면서 들뜨기도 합니다. 스스로는 기분이 들뜬 것을 느끼지 못하고, 때로는 우울증이 나았다거나, 자기 모습을 찾았다거나, 노력을 해서 성격을 바꾸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소 같지 않고 부적절해 보일 수 있습니다. 조금 들뜬상태가 나타나면 하던 일도 잘되고 좋아진 것 같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이런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기분기복이 심해지거나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분이 들뜨는 시기에 자신에 대해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하다가, 우울해지는 시기에 그런 이상적인 자기 모습과 실제가 너무 다르다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혼재 삽화>
우울증 및 경조증이 한 번에 나타나면, 경증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눈물을 흘리거나 우울증 중간에 생각이 빠르게 변화하기도 합니다. 종종 우울한 상태로 잠자리에 든 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분이 상승되고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을 느낍니다. 기분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에 환자가 느끼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출처
1. MSD 매뉴얼 일반인용 - 양극성 장애
2. 분당 서울대 병원 기분 장애 책자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가장 대표적인 조울증의 증상들을 정리하고, 조울증 환자인 내가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을 강조해 두었다. 파란 부분은 그냥 내 모습 그 자체를 설명한 것과 다름없다.
경조증 삽화에 들어가면 본인은 잘 모른다는 말이 정말 맞다. 확실한 건 우울증 삽화에 들어서면 그때가 경조증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경우에는 그 당시의 행동을 무척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한다. 사실 우울이라는 늪에 빠져 정체되어 있는데, 경조증의 나는 스스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떠한 이상적인 모습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 한다. 또 유난히 주변 사람들에게 쾌활하고 밝게 굴며 매우 사회적인 사람이 된다.
그런 시기가 끝나면 그 당시 자신감 넘치고 실제와 다르게 지나치게 밝았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당장 며칠 전에 올린 글만 해도 너무 부끄러워 당장 내려버리고 싶다. 며칠간 학교를 나가지 않은 동안 친구들이 날 기다려주고, 걱정해 준 것에 기분이 한껏 들떠버렸다. 뭐든 잘 풀릴 것 같고 내가 나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하루아침에 무척이나 희망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9/19 나를 안타까워 여겨 노력하겠다는 희망적인 다짐을 적은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여전히 한심하고, 우울하고, 절망적이다. 왜 그날 죽어버리지 못했을까 슬펐다. 예전에도 표현했듯이 우울은 나의 코밑까지 가득 찬 물과 같아서 숨 쉬기가 어렵고 수압이 나를 짓눌러서 편히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기분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 그냥 눈물이 난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서 수업 중에도 나는 조용히 콧물을 닦고 있다. 평온하고, 행복하게,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역시나 나만 이상하고, 비정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도망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동시에 나도 그 세상의 정상적인 일부면 좋겠다고 바란다.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만 조증의 일지 1 을 지우지 않는 이유는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록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또 본인이 조울증인지 의심 가는 분이 있다면 글을 읽고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질" 이란 개인 별로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감정의 특성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생각, 감정, 인지, 행동, 사회성에 영향을 주며 같은 기분 장애를 가지더라도 기질에 따라 증상이 상이할 수 있다고 한다.
<기분 조절이 어려운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 정서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거절이나 비판에 민감하고, 정서적으로 타인에게 의존도가 높으며, 질투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도 매우 달라져 어떤 때에는 자신감이 들다가도 어떤 때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충동적으로 폭음, 폭식이 반복되며 물질 남용의 위험이 높습니다. >
MBTI의 설명이 모두 나와 들어맞는다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위의 설명을 읽으며 아 내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 설명대로라면 나는 기분 조절이 어려운 기질이지 않을까? 나는 어떨 때에는 내가 항상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떨 때에는 어떠한 노력을 해도 달라지지 못할, 너무 망가지고 고장 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충동적으로 과음을 하고 기분을 풀려고 돈을 쓴다.
이렇게나 질병에 대한 설명이 맞다면, 치료에 관한 내용도 해당되어야 하는데. 며칠 전 글을 쓰다가 나는 브런치를 시작한 게 딱 1년 전, 2022년의 9월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어떻게든 내 우울을 털어내고, 조금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자살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다. 내 '기분 장애'는 전혀 나아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나빠지기만 할 것이다. 매일 내가 나를 위해 하는 것은 빨리 잠들기 바라며 약을 먹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