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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Sep 11. 2022

우울의 일지 1

4년 차 우울증 환자에게 잠이란


글을 시작하기 앞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재를 할 건지 소개하는 게 순서에 맞다. 처음 브런치에 소개글을 낼 때, '누군가가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기보다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쓰고 싶다'라고 적었다. 앞선 글 '글을 써야만 했던 이유'에서 밝힌 것처럼, 내 감정과 생각을 덜어내고 그것을 누군가 읽어주기 바라는 마음이 주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겟층과 방향성이 명확한 계획서를 선호하는 브런치 입장에서 이런 소개를 통과시켜 준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나 또한 사이트의 특성에 맞춰 연재되는 글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우선 쓰고 싶었던 것은 힘들어진 이후 내가 느끼는 것과 드는 생각, 감정이나 수면의 조절을 잃는 증상,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병에 끌려가는 나날의 일기이다. 이 글들은 우울증의 증상이 어떠한지 궁금한 사람들, 내가 느끼고 있는 게 우울증의 전조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에게 지표가 될 수도 있고, 병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공감이, 감정의 폭풍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혼자가 아님에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최종적인 목적이 그렇다는 것이고, 지금은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익명으로 나를 외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동안은 4년간 내가 썼던 일기 조각들을 다듬어서 한 편의 일지로 완성하려고 한다. 




정확히는 '양극성 장애'로 병명이 판단되고 이후부터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수면의 조절이다. 양극 장애라 함은 우울증과 경조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 질환인데, 나의 경우 스스로 경조증 증상을 찾는데 오래 걸렸고 우울증의 증상들에 더 집중하여 관찰하고는 하였으니 오늘 글에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잠이 얼마나 질 떨어지는지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해가 떨어지고,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나는 다시 해가 뜰 때까지 왜 사람은 잠을 자야 하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의 법칙에 투정한다. 신기한 것은 타이머가 설정된 시계처럼 매일 아침 6시에 눈을 뜨는 것이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시각도 7시이다. 잔잔히 흘러가던 의식을 누가 강제로 잡아끌어 찬물에 밀어 넣은 듯 번쩍하고 잠에서 깨면 그 이후로는 다시 자는 게 자는 게 아니다. 의식과 수면의 애매한 경계에서 몸의 긴장은 풀리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흐르고, 깊은 수면을 하지 못한다. 잠에 살짝 들었다가도 어느새 다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억지로 깨워지는 그 느낌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차라리 정신이 완전히 깨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은 채 집안을 방황하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간신히 목으로 넘길 때에야 이 세계에 존재하는 나의 몸과 의식을 제대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우울증에 동반되는 불면증 중 하나라고 한다. 불면증의 유형으로 일찍 깨는 입면 장애, 자다가 자꾸 깨는 수면유지 장애, 얼마 못 자고 일찍 깨는 조기 각성 장애가 있다.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렵지만 수면 유지가 힘들거나 조기 각성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그즈음부터 잠이라는 과정이 너무 싫었다. 하품 하나부터 쉬운 게 없다. 하품은 큰 들숨으로 시작해 목구멍이 크게 열어 몸에 부족한 산소를 아무리 들이마셔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품이 끝날 때는 온몸의 졸림과 피로를 쥐어짜는 기분으로 그 기분이 너무 불쾌하고 힘들어서 가끔은 들이마쉼에서 하품이 끝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꿈은 또 어떠한가. 

어느 날 서점에서 새로 읽을 책을 구경하던 중 한창 베스트셀러였던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프로모션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작은 종이에 내가 사고 싶은, 꾸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적어서 제출하면 랜덤하게 몇 명을 뽑아 선물을 주는 행사였다. 깊게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꿈을 꾸고 싶지 않다'라는 다소 취지에 맞지 않는 대답을 적었다. 


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를 괴롭히는데, 첫째로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바라고 그리워하는 것을 마음대로 끄집어낸다. 무례하게, 그 어떤 동의도 없이 잊고 싶은 것들을 영화처럼 재생하고, 달콤하게 몰입하게 한다. 그러다 눈을 뜨면 그 꿈들은 깨져 없어지고 부재의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무책임하게 모든 것은 사라지고 어지러운 나의 감정들만 길을 잃고 방황한다. 꿈에서 다시 보지 않았더라면 묻고 살았을 것을, 잠시 소유의 환상을 보여주고 더 잔인하게 절망하게 한다. 꿈에서 끌어내진 후에 그리워하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느끼는 박탈은 오래도록 나의 하루를 지배한다. 


두 번째로 꿈은,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투영하여 생생하게 고문한다. 한 밤의 꿈에서 나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교실에 있었다. 내 책상 안에는 1학년 교과서가 얌전히 들어있었고, 영화처럼 학교 생활의 장면들이 촤르륵 펼쳐지며 반장 선거, 수업, 방과 후 활동, 친구들과의 수다 등이 몇 배속으로 재생되었다. 어느 순간 칠판에 적힌 글씨는 2학년 1학기였다. 손을 넣어 책상 속 교과서를 만지자, 어느새 헤져있었고 이를 꺼내서 아직 1학년 교과서임을 본 순간, 나는 이 꿈이 철저히 나를 빼고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칠판을 보내 어느새 2학년 2학기였고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며 새벽을 알리는 푸르스름한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곧이어 느껴지는 감정은 외로움에 가까운 씁쓸함이었다. 꿈속의 출연진들은 나를 빼고 모두 하루하루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고 나만이 그곳에서 따라가지 못해 뒤처진 사람이었다. 남겨지는 것, 뒤처지는 것, 소외되는 것- 그것은 내가 가장 불안하고 두려워해 하는 감정이다. 그런 감정을 잠시 잠드는 꿈에서조차 상황으로 재연될 때 나는 결국 울면서 깨고 만다.  


이런 잠을 자면서 몸상태가 괜찮은지 궁금할 것이다. 해결 방법은 알코올이긴 하다. 술을 먹으면 잠드는 어려움은 건너뛸 수 있다. 더 많이 먹으면 새벽에 깨는 것도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 많은 흑역사와 실수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는 한다. 그것도 조증의 일지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아무튼 나에게 잠드는 일은 휴식이 아니며, 나의 무의식과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워 부딪히는 일이다. 나 말고도 수많은 우울증, 불면증 환자들이 공감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힘들어지면 결국 언제쯤 아무런 불안의 방해 없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을지 그 막막함에 더욱 우울의 늪에 빠지고는 한다. 


그럼에도 이 긴 이야기를 쏟아내어 글로 정리한 오늘의 나에게 스스로 작은 칭찬을 보내도록 하겠다. 오늘도 숨 쉴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었어서. 또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잠이 휴식이 되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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