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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Sep 26. 2022

우울의 일지 3

사람은 물 밖에서도 질식할 수 있다

우울증에서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은 '우울' 그 자체보다 '불안'일지도 모른다. 불안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함'인데, 뜻이 그 감정을 무척이나 잘 설명하고 있다. 나는 불안감이 들면 언제나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고, 속 어딘가가 꼬이는 기분과 함께 마음이 절벽 한 모퉁이에 서있듯이 위태롭고 매 순간이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그 불안을 느끼지 않는 때가 없다. 매 순간, 불안은 공기처럼 내 주변에 떠돌아다니고 숨을 들이켤 때마다 피할 수 없이 불안의 가스를 들이마셔야 한다. 


보통의 하루 중에 불안이 가장 극대화되는 시간은 새벽에 눈을 뜬 직후이다. 앞선 우울의 일지 1에서 밝혔듯이 나는 잠을 길게 자지 못하고 누군가 꿈속의 나를 낚아채듯 새벽녘에 깨고는 하는데, 눈을 뜨자마자 닥치는 감정은 바로 불안이다. 내가 자는 사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서 큰일이 난 것 같고,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은데 의식이 바로 깨지 않아 어지러워한다. 가끔은 자는 사이 나의 존재가 사라졌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해 나를 빼고 온 세상이 흘러가고 있다는 공포와 불안이 닥친다. 그럴 때면 새벽의 나는 눈을 뜨자마자 나의 존재를 확인해줄 것부터 찾는다. 제대로 뜨이지도 않는 눈으로 핸드폰을 찾고 누군가의 연락이 와있는지, 내가 오늘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하며 이 세상에 내가 정상적으로 속해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연기처럼 두텁게 깔려있는 불안은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발 내 디기가 무섭다.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해도 다 틀린 일이 될 것 같아 연기 속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안에 있으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찝찝함, 빨리 어떻게든 무언가 해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답답함과 부담감이 느껴진다. 이 불안은 머릿속으로만 존재하는 감정 같지만 실제로 물리적, 신체적 변화를 동반할 수 있다. 


일례로 7월에 미국 여행을 갔었는데, 여권을 잃어버려서 그것을 잃어버린 내가 너무 한심하고 멍청해서 한탄스럽고, 이 일로 눈치를 주는 가족들 때문에 멘탈이 많이 나가 있었다.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도 이 나이에 그런 것 하나 간수하지 못하냐는 투로 나를 공격하는 말들이 심적으로 더 힘들었다. 그 와중에 예약한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는 신분증과 백신 확인증이 있어야 했는데, 그조차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백신 확인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 머리가 아찔하면서 심장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COOV 앱으로 어떻게든 해결해서 들어갔는데 가족들의 네가 그렇지 뭐 하는 시선이 등 뒤로 잔뜩 느껴지는 것 같았다. 뮤지컬이 시작하며 불이 꺼지고 나는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에 정말 숨이 막혀서 미쳐 돌아버리거나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감정, 관계들이 가슴을 죄어와서 물리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정신 나갈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다시 곱씹었을 때 그것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들에 느끼는 불안이었다. 잃어버리는 것도 준비를 하지 못한 것도 의지대로 생긴 일이 아니었고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기에 나는 모든 일련의 상황에 통제를 잃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더 무엇이든 일이 잘못될 것 같고 또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에 멀쩡히 뚫린 코와 입으로도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물에 빠져있는 것도 아닌데, 곧 질식할 것 같았다. 


새벽에 깨고 더이상 잠들지 못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어떤 감정에 대한 얘기를 풀어볼까 고민하곤 한다. 불안에 관한 글은 며칠에 걸쳐서 완성했는데 쓰면서도 힘들었던 상황들이 오버랩되며 그 때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브런치에서 글을 읽다가 한 작가님의 나를 힘들게하는 감정마저도 사랑하겠다는 말을 읽었다. 근 1주일간 그 말을 계속 생각하며 고민했던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지긋지긋한 우울과 불안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한심한 내 자신을 언젠가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스스로의 추함과 이기심, 한심함과 멍청함을 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도저히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지 않다. 감정들을 덜어내고, 살고 싶어서, 숨 쉬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이기에 글의 마무리는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느끼는 바를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저 부정적인 감정들에 빠져 질식해 죽기를 바라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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