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J Oct 05. 2022

우울의 일지 4

오늘도 숨 쉬고 싶어서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서 나는 내가 느끼는 바가 무엇인지 객관적인 말로 표현하려고 애써왔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노력해왔다. 그것이 충분하지 않았을지언정. 2019년 겨울, 우울증의 시초에서 나는 겪고 있던 우울을 다음처럼 표현했다. 


우울은 나의 기저에 깔린 어두운 액체와 같다. 그 위에 서있는 나는 계속 젖어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매 순간에 나는 내가 흠뻑 젖어있어 춥고, 외롭고 괴로움을 깨닫는다. 다른 감정들이 느껴지는 순간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어디선가 우울은 항상 뒤에 붙어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조금씩 가라앉으며 젖어가고 있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다 한가운데의 태풍 속에 있었다. 처음에는 파도가 나를 덮칠 때마다 저 심해까지 곤두박질치다가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오지 못할까 봐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숨을 쉬려고,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고 가라앉는 일의 반복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나가려는 의지를 잃었다. 나는 항상 잠식하고 있어 축축하고, 어둡고, 어찌할 수 없다. 더 이상 우울은 내가 조절할 수 없으며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잡아먹히고 있다. 몇 달간은 우울에 깊게 빠져버려 숨 막히는 날과 숨 쉴 수 있었던 날들이 번갈아 나타났다면 이제는 우울이 턱 끝까지 차있는 기분. 아슬한 기분으로 매 순간을 버텨낸다. 어쩌면 버텨낸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버틴다는 것은 그 밑으로 더 가라앉지 않으려 수영하려 애쓰는 것일 테니. 나는 이제 온몸에 힘을 빼고 파도가 다시 덮치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것이 왔을 때 내가 다시 올라오지 못하게, 깊숙이 나를 끌어내렸으면 하고 바란다. 지붕을 찾아 나섰는데, 여전히 비가 내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은데. 


당시 나는 Jack Stauber라는 사람이 만든 영상 중 rain이라는 영상을 하루 종일 돌려보고는 했다. 30초 남짓의 짧은 영상 속에서 주인공은 비를 피하려 지붕 밑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비를 맞고 있다. 그는 억울한 듯 대사를 내뱉는다. 

'Why is it still raining? I did what I was supposed to.'

마지막 말을 내뱉는 그의 표정은 체념에 가깝다. 

'That's not fair.'


감정을 다스리는 것과 내가 선택한 일들에 책임을 지는 것,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 나의 삶을 영위하는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조절하지 못하는 감정의 풍파에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학업도, 관계도, 건강도 그 무엇 하나도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의지를 굳게 먹고 노력하면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덮쳤고 무력하게 휩쓸려 가면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한 것 같은데 왜 여전히 비가 내리는지. 나의 심정을 읽은 듯이 그려낸 영상을 수백 번 돌려보며 많이 울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휴학을 하고, 강박적으로 청소한 어두운 원룸에서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생각에 잠겨있던 시간이 있었다. 어찌 보면 뻔뻔하게도 억울해했던 것이다. 그저 내가 살아오며 선택하고 생각한 것들이 우울로 도달하게 했음을 깨닫지 못해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아무것도 나아지지 못했고, 아슬하게 잠겨있는 나는 하루하루 내가 느끼는 바를 문장으로 적어 뱉어내며 입과 코로 흘러 들어오는 우울을 토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의 일지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