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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행에 익숙해져 있다' 동의하시나요?

개구리 실험을 통해 배우는 익숙함

by 강준

나는 약사로서의 삶, 회사원으로의 삶, 작가로서의 삶 속에서 다양한 연령대, 성별, 직종들을 만난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친해졌을 즈음 그들은 아무래도 내가 '행복과 마음 건강'에 대한 책을 쓴 작가여서 그런지 '행복과 불행'에 관한 이야기들을 꺼낸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지금 행복하신가요?". 그 말을 들었을 때의 표정 변화와 대답 속에서 그 사람이 '행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이 감이 오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만 불행한 사람이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10에 7~8명은 '행복하진 않은 것 같다 혹은 불행한 것 같다'라고 답변했다. '~ 것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아직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장단점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익숙해지지 않도록 늘 상기시켜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대인 관계이고 마지막은 불행이다. 세 가지는 흔히 우리들이 소홀하기 쉬운 것들이지만 너무 방치하면 큰 화로 돌아올 수 있다. 또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다시 탄력적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임계치를 벗어날 정도로 방치해버리면 더 이상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치료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백신'이 필요한 단계이다. 익숙함을 빠르게 깨닫고 경계할수록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갈 지름길이 될 것이다.


Boiling frog syndrome (삶은 개구리 증후군)은 개구리가 싫어하는 온도의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바로 뛰어나오는 반면 찬물부터 아주 서서히 온도를 가열하게 되면 온도 변화를 모른 채 죽게 되다는 내용이다. 본 실험은 '환경 변화 적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많이 인용되었고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여 중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함을 역설할 때 자주 사용되는 비유이다.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실험'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실험 결과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끓는 물속에 넣게 되면 뛰어오기 전에 바로 죽는다 혹은 물을 가열하는 도중에도 개구리가 뛰쳐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에 대한 이의제기로는 재현 실험에서 '물의 온도를 올리는 속도'에서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험 조건이나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은 실험 이상으로의 의미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생명체의 성질(적응)을 설명해주는 의미가 되었다.

생명체에는 반응과 적응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존재한다. 우리의 신체도 다양한 반응에 서서히 적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간단하게 사람의 눈은 주변의 빛의 양에 따라서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여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조절하곤 한다. 갑작스럽게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게 되면 초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간상세포에서는 빛에 민감한 로돕신을 합성함으로써 서서히 보이게 되는 암 적응 과정이 일어난다. 다른 예시로,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산소가 희박하기 때문에 신체는 많은 적혈구들이 만들었고, 낮은 산소분압으로도 충분히 조직에 산소를 공급해주도록 적응하였다. 이처럼 생명체는 다양한 외부환경에 적응하도록 설계되어있고 각각의 삶에 원활히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익숙함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분명히 따라오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익숙함이 주는 장점

사람은 항상 같은 자극에 동일한 반응을 보일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은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잘 설명하고 있는데 첫 번째 먹는 사과의 맛과 10번째 먹는 사과의 맛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익숙함은 식사에서는 과식을 막아 비만을 예방해주고, 일에서는 숙련도를 높여 작업 속도를 향상해주고, 사람 관계에서는 어색함과 불안함을 줄이고 편안함과 신뢰를 쌓게 해 준다. 우리의 몸도 익숙함이라는 과정이 없었다면 모든 외부물질에 과민 반응하여 쇼크로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적응의 능력'은 짐승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한 인간이 변해가는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세대를 거듭하면서 지식을 남기고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현대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익숙함이 주는 부작용

인간의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문화도 예측할 수 없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익숙함이 주는 부작용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인간은 얻은 것과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익숙해지면서 '삶에 질에 대한 기준점'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삶의 기준점에 비해 인류가 발전하지 못하거나 퇴보를 하게 되면 인간들은 삶의 질에 만족하지 못하여 불행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시대의 발전과 함께 증가하는 자살률과 정실질환의 유병률도 이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모두가 알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갔고 편하게 친구들을 만나곤 했었다. 그렇게 편하게 누리던 것들이 결핍되고 나서야 쉽게 누렸던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 셈이다. 적합한 비유는 아니지만 과거의 조상들이 보기에는 지금의 코로나 상황도 배부른 소리일 것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개인이 꿈을 펼치기도 어려웠고 취미나 여행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끼니를 챙겨 먹기도 버거웠고 종전이라는 개념이 없어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를 불안에 떨면서 살아왔다. 의약품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가벼운 상처에도 항생제가 없어 패혈증으로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아니, 그러면 매일 하루 세끼 챙겨 먹고 숨 쉬고 사는 것만으로도 아구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수준으로 사는 것에만 만족하고 감격하면서 살라는 것이냐?"라고 되묻는 경우도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고 지쳐있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 혹은 '나의 수준에 만족하는 것'이 마치 '나의 삶이 이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 혹은 '앞으로 나는 발전이 없이 살아가야 되는 것'이라고 혼동된 상태이다. 어디까지나 삶에 대한 감사함은 남을 위한 행위가 아니며 사회가 만든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에 갇히는 행위도 아니다. 본인의 마음, 즉 정신 건강을 챙기기 위한 첫 단계일 뿐이다. 앞서 말했던 익숙함으로 인해 삶의 기준점이 높아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불행은 조금 다르다

앞선 두 가지(대인관계와 건강)는 누구나 인지는 하고 있으나 잘 실천하지 못하는 성질을 지닌다면, 불행은 그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팩트 폭행'에 가까운 제목으로 첫 번째 책을 쓰게 된 것도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불행하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마음을 수련했고, 주변에서 '보살', '인생 2회 차'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나 조차도 현대사회에 만연한 불행의 요소를 모두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불행의 요소들은 시시각각 복합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공격해오고 있다. 우리가 항상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속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고,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과 관련된 기사들이 수도 없이 쏟아진다. 모두가 획일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데 '뒤쳐지는 분위기', '비교',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외에도 당장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직장 생활, 연인관계, 가족관계, 교우관계 등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것들이 천지이다.


그래서 어떡하라는 거죠?

마음가짐을 익히는 것은 하루, 한 주, 한 달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세끼 밥(영양소)을 챙겨 먹듯이 매일 생각하고 풀어내고 다독여야 할 현대인들의 업보이다. 그 시작은 '익숙함의 부작용'을 끊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행복감/만족감의 기준점을 낮추는 것이고 생각의 전환을 체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어떤 일(사람 관계, 일, 시험, 도전, 건강 등등)에 대한 결과를 미루어 예상하고 지레짐작하곤 한다. 하나 인생은 참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가 예상한 것과 정반대로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작게는 개인의 성장과 도전이 될 수도 있고, 크게는 현재 누리고 있는 일상적인 삶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인생에 최선을 다하되 어떠한 결과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와 '비웠을 때 채워진다'와 같이 역설의 미덕을 담고 있기도 하다. 만에 하나 결핍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지금을 의미부여를 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갖춰보자.


인생을 잘 사는 것은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쌓고, 권력을 통해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스스로 후회 없이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하려는 것은 누군가를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뜨거워지고 있는 냄비 속 개구리'에게 빨리 나오라고 알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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