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있을 때, 앞을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10년 지난 지금, 뒤를 돌아보니 그 점들은 정말 명확히 연결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들은 미래의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래의 점들은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 믿음이 자신감이 될 것이고 인생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 중에서 (2005)-
해당 연설을 처음 접한 것은 2009년 겨울이었다. 그 순간에는 연설이 어떤 의미인지 막 와닿지는 않았지만 '해당 연설'을 스터디 플래너 맨 앞장에 적어두고 틈틈이 보곤 했었다. 해당 글귀를 수차례 되뇌면서 자연스레 내 사고관에 베어 들었고 어느샌가 막연한 불안감을 이겨내는 내력이 생기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을 즈음 우연히 예전 플래너를 꺼내 보다가 해당 연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제야 그 의미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한창 20대 초반에는 이 길이 맞을까? 혹은 잘 못 선택했다고 생각한 선택들이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보니 모두 의미가 있던 점들이었고, 그 당시 실패한 결과물이라고 후회했던 것들도 지금 들여다보면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원석처럼 보인다. 1개의 점만 있을 때에는 방향성이 생기진 않지만, 2개의 점을 이으면 직선이 된다. 점의 개수가 늘어나면 경향선을 그릴 수 있고, 점의 개수가 많아지면 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처음 점을 찍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불안하지만 점들이 채워지면 흐릿하더라도 나의 방향성을 어렴풋이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점을 잇는 경험을 조금씩 해보면 앞으로의 5년이나 10년도 불안감보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을 안다고 해도 20대 시절을 불안감을 완전히 털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헤쳐갈 수 있었다.
'나의 청춘은 왜 이렇게 불안하고 늘 막막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내 마음을 조금 들여다보니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내가 삶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고,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은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이 길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남보다 뒤처지진 않을지?', '실패를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닌지?'와 같은 걱정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냈다. 지나친 걱정은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를 돌며 새로운 불안감으로 재생산되었다. 나는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괜히 뒤처질까 봐 걱정하고, 앞서가더라도 되려 무너질까 불안해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깨달은 사실은 불안감은 절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의외로 내게는 위로가 되었고 다행이라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어차피 누구나 불안한 거라면 '쪼는 사람이 지는 거잖아?' 그러면 그냥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묵묵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인생이란 역설적으로 가지려 하면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집착이나 욕심을 내려놓은 것이 부담을 줄여주어 뭐든 잘 풀리는 비결이 되었다. 그 후로 나의 좌우명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내가 찍어가는 점들이 그 시점에서는 남들이 보기에 별로이고 실패라고 생각될지라도, 먼 미래에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는 점으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믿음은 덤이었다.
인생에서 내비게이션은 없었다.
사춘기 시절을 떠올려봐도 불안한 마음들이 가득했던 순간들이 그려진다. 중학생 때에는 성적과 고등학교 진학이 큰 문제였고, 고등학생 때에는 교우관계와 대학 진학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다. 전혀 모르는 학과를 이리저리 고민하면서 가능한 직업군을 검색해보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당시 친구들은 본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인정받을 학과나 대학의 네임벨류를 높이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가끔 앞선 생각을 하는 친구들은 대학보다는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대학 네임벨류보다 과를 우선적으로 택했던 친구들이 취업도 잘하고 직업 만족도도 높은 것 같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친한 친구와 집 앞에서 밤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뭐해먹고살지?를 매일 같이 고민하곤 했었다. 과연 10년 뒤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는 1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물론 지금은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차에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아버지는 늘 지도를 보면서 이리저리 먼 길을 찾아다녔다. 길을 잘못 들게 되면 빙빙 돌아서 다시 가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어 새로운 목적지를 가더라도 빠른 길로 쉽게 갈 수 있어 전혀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인생에 내비게이션이 있었다면 우리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있었다면 모두 한 방향으로만 가기 때문에 길이 계속 막히지 않았을까? 내비게이션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인생이 다채롭고 주체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인생에는 오직 지도만 존재한다. 물론 그 지도가 올바른지 잘못된 것인지는 끝까지 가보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으나, 같은 지도를 가지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고 다른 목적지를 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겁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실제 운전과는 다르게 우리는 처음 목표로 한 목적지를 굳이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가 가는 방향에 대해 끝까지 믿고 가다가 어딘가에 도착하더라도 그곳도 의미가 있고 충분히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도착지인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가다 보면 인생은 불안감보다는 긴 여행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서른이 된 시점에서 몇 가지 사건들의 점을 이어본 적이 있었다. 특정 순간, 나의 선택들이 주변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으나 나중에 점들을 이어 보면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 꼭 필요했던 점들이었다. 또한, 내가 했던 다양한 학업 외 활동들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무의미했던 것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나의 가치관을 형성해나가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런 경험들이 모여 인생을 설계해가는 데에 큰 자양분이 되어주기도 했다. 본인이 쌓아가는 점들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이른 시기에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날 수도 있도 누군가는 조금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점을 찍어나가는 현재의 순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모든 점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순간들이 오게 된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보면 다시금 새로운 점들을 찍어나감에 있어서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질 것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빨->주->노->초-> 파-> 남-> 보) 찍어본 점어린 시절 결정했던 선택들이 당시에는 주변으로부터 잘못된 선택으로 평가받거나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었다. 이공계를 가고 싶었으나 영어 공부를 위해 어쩌다 외고에 진학했다. 그리고는 재수하면서 다시 이공계로 전향하여 수능을 보기도 했다. 이공계 전향에 실패했을 때 많은 이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점을 찍어나갔다. 초기에는 우려의 시선으로 보였으나 꾸준히 찍어가다 보니 나의 선택들이 어느 순간 강점이 되어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키워주었다. 모든 점들 중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것들은 있으나 분명 미래에 이어지는 선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