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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Oct 17. 2021

할머니의 무대

일상 이야기

왜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제사를 기어코 떠맡으셨는지 이해가 안 갔다. 괜한 돈과 시간, 노력이 드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조상 덕 본 사람들은 제사 안 지내요. 놀러 다니지."


내가 그럴 때면 할머니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며 야단치시곤 했다. 할머니의 부모님 제사도 아니고 할아버지도 이제 안 해도 된다는 시부모님 제사를 왜 하시는 걸까. 꽉 막힌 할머니가 답답했다.


오늘 할머니는 제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옆에서 전을 주워 먹으며 할머니의 깊게 파인 주름들을  바라보다 문득 할머니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 입고 날아다니는 젊은이들처럼 송골송골 땀이 흐르는 할머니 얼굴이 환해 보였다. 생기가 느껴졌다.


그때 퍼뜩 깨달았다. 할머니에게 제사는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의 재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무대라는 걸. 어떤 의무감도, 죄책감 때문도 아니라는 걸.


"요새 누가 제사를 지내. 너도 이제 편하게 하고 살아라 좀"


며칠 전, 할머니 친구분들께서 오셔서 담소를 나누실 때, 할머니에게 어떤 친구분께서 하셨던 말이었다. 그때 할머니는 아무 말 않고 희미하게 웃기만 하셨다.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에게 있어서 제사는 아무도 찾지 않고 기대하지 않게 된 자신에게 매년 찾아오는 숙제였다. 반가운 숙제.


나는 오늘 이후로 할머니의 무대를 뺏지 않기로 했다. 지금 시대가 어떻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할머니가 그렇게 무언갈 즐겁게 하는 모습을  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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