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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Nov 26. 2021

무제

창작 단편소설

 현수는 오늘도 콧속으로 사탕 하나를 집어넣었다. 알루미늄 통에 가득 담긴 민트맛 사탕은 병원에서 지어주는 약처럼 조그맣다. 한통에 4000원으로 비싸지만 의사 선생님이 준 약보다 더 효과가 있다. 민트맛 사탕은 콧속으로 들어가면 곧장 알싸하고 매운 내를 코 안에 퍼트린다.  코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구간은 출입금지 지역에 무언가 침입한 듯 사탕을 힘껏 제지한다. 그때 코를 한 번 세게 들이마시면 살갗이 찢어지는 듯 아프지만 사탕은 목구멍으로 완전히 넘어간다. 잘 도착했겠지, 현수는 명치 부분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현수는 집에 들어가기 전, 하늘에 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반지하 집은 현수 방 하나와 사람 두 명이 겨우 누울만한 주방이 붙어있는 거실이 있다. 아버지는 거실벽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시고 있었다.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푸른색이 조금 섞인 회색 연기들은 바닥부터 깔려 집 안 전체를 떠다니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보았던 모습이다. 해괴하지만 어떤 것보다 안전해 보이는 방독면을 쓰고 뿌연 연기 속에서 숨을 참던 군인들. 아니 연예인이었던가 아무튼 그 사람들은 방독면에서 한 부분을 떼어내고 안으로 들어오는 연기에 괴로워했다. 못 참고 튀어나가기도 했다. 부러웠다. 나도 그럴 수 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입 안으로 손을 넣어 몸속에 폐를 뜯어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제일 괴로운 건 아버지와의 식사시간이다. 담배를 피우시지 않아도 아버지 곁에만 있으면 담배 냄새가 생생하게 났다.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말하던 아버지 얼굴에 그릇을 던질 뻔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사탕을 권하고 싶었다. 아버지도 코로 사탕을 먹기 시작하면 나처럼 더 이상 담배 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다. 사탕은 담배 냄새를 정화시켜줬다. 입으로 먹는 것보다 더 강력했다. 내 코와 입 , 피부에서 나던 역한 냄새들이 알싸한 민트 향으로 바뀌었다. 거무튁튁해졌던 피부도 많이 맑아졌다. 아마도 사탕이 하얀색이라 그런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곧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주머니 속에서 사탕 통을 꺼냈다. 어제 새로 사서 가득 찬 사탕을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았다. 아니 이러면 아마 평생 살 수도 있을지 몰라, 현수는 콧 속으로 사탕을 밀어 넣었다.

 며칠 안 지났는데 사탕이 벌써 반이나 사라졌다. 현수는 사탕 통을 한 손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의사 선생님이 입원을 해야 된다고 했다. 폐가 더 안 좋아졌다고 했다. 아버지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를 병원에 오게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아버지는 온 병원에 병을 퍼트릴게 분명하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면서. 현수가 서 있는 곳 바로 밑에는 하수구가 있었다. 바닥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멓고 더러운 하수구는 마치 현수의 폐 같았다.

 몸이 나은 줄 알았다. 사탕을 코로 먹기 시작 한 건, 입으로 먹을 때보다 나에게서 나는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 들어간 사탕은 목구멍을 타고 분명 폐에 도착했을 거다. 녹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 사탕은 더 이상 폐가 썩지 못하게 해줬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나랑 처음 병원에 갔을 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병원 인간들은 다 순 사기꾼들이야. 다 돈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나쁜 새끼들’ 아버지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더 이상 나한테 냄새가 안 나는데 나 멀쩡한데..

 그때 갑자기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꽉 막혀있던 괴로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이 기침을 하다가

“우웩”

토가 나왔다. 사탕이 우수수 쏟아졌다.

“우.. 우웩”

토는 멈추질 않았다. 폐에 들어있던 사탕이 모두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하필 바로 앞에 있던 하수구에 사탕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안돼’

쭈그려 앉아 눈앞에 사탕들을 손으로 주워 담기 시작했다. 폐가 시렸다. 곧 죽을 것 같았다. 사탕이 다 쏟아져 나왔는지 이제 맑은 눈물, 콧물, 침이 흘러나왔다.

‘아.. 안돼’

맑은 물이 다 나오면 시커먼 구정물이 나올 터였다. 하수구는 시커맸다. 내 폐 같기도 했던 하수구가 이젠 아버지 같아 보였다. 내 사탕마저도 다 가져가 버린 아버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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