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24-4
<에필로그>
생애 첫 마라톤 대회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전이 대회였는데, 그 들뜬 기분이 하루종일 지속됐다. 뭔가 에너지를 소진하고 난 후의 멍한 기분과 몸의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밤새 그 흥분감에 잠을 설쳤다. 누웠지만 잠은 안 오고 오전의 대회 생각, 앞으로 마라톤 대회 나갈 생각 등 마라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잠이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새벽까지 지새운 기분이다.
그러다가 일요일 아침 일산호수공원을 뛰러 나가지 말까 고민이 됐다. 대회에서 빠르게 달려서 그런지 왼쪽 발목과 양 발바닥에 살짝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아주 못 뛸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잠을 설친 것이 고민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5시 50분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러닝화 끈을 조여매고 나섰다.
"그래. 오늘은 천천히 한 바퀴만 달리자."
역시 일산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정신이 들었다. 잠에서 깨며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찬 공기에 기분이 개운하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달렸다. 그래도 전날 대회를 달리며 크게 무리한 느낌은 없었다. 평소보다 속도가 높긴 했지만,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도 골반과 허벅지에 근육통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볍게 달리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호수공원에 들어서자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워밍업이 되자 평소처럼 속도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워밍업이 9.0km/h였다면, 호수공원에 접어들어 10km/h~11km/h로 올랐다. 그래도 10km/h 속도를 유지하고자 애썼다.
문뜩, 이 정도 속도면 평소에도 편하게 달리는 속도였다. 컨디션도 다시 나아지는 것 같은데 연 이틀을 10km 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5km가 넘어가자 몸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근육통이 온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쉬지 않고 운동을 강행한 다음날의 무거움이었다. 온몸에 5kg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7km까지 천천히 달리라가 나머지 3km를 걷다가 천천히 달렸다. 확실히 대회는 대회였다. 몸이 무거운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던 것 같다.
첫 대회를 마치고 나니 고민이 생겼다.
'10km 대회를 다시 나가 기록 단축을 목표로 할 것이냐, 아니면 하프마라톤을 목표로 할 것이냐?'
대회 전이었다면 10km를 무난하게 달렸으니, 이제 하프마라톤을 준비해 봐야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10km를 달리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러너는 세 가지 길에서 고민한다고 한다. 더 강도 높은 풀코스 마라톤인지, 100km의 울트라마라톤인지, 아니면 철인 3종에 도전하는지의 갈림길에서 서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풀코스 마라톤-울트라 마라톤 이후에 철인 3종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감히 비교하긴 그렇지만, 나의 새로운 고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10km를 45분에 달린 P 과장을 보니, 그래도 10km를 50분 안에 달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는 10km를 나름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달렸다. 하지만 P 과장과 K 대리는 10km를 45분, 5km를 30분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 세웠던 목표 중 하나는 죽을힘을 다해 모든 것을 다 쏟아내서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페이스 조절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그래서 결심했다. 올해는 10km 대회를 몇 번 더 참가해 보자고! 한번 죽을힘을 다해 달려보자고!
<이모저모>
나중에 K 대리에게 들었다.
하프마라톤, 10km 참가자들이 다 달리고, 5km 참가자들만 남았을 때, 행사 진행자가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처음 대회 참가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남은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손을 들더란다.
그러더니 진행자가 참가자들에게 신신당부하기를 "저얼때 오버 페이스 하지 마세요! 그러다 큰 일 납니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연습은 설렁설렁해도, 막상 대회를 참가하면 의욕과 전투력이 치솟는 것 같다.
그리고 대회라 해서 무작정 쉬지 않고 빠르게 달리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달리다 보면 1km 구간부터 옆으로 빠져 걷는 참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벌 달리기를 하듯이 걷다가 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거리마다 제한된 시간 안에만 들어오면 된다. 예를 들면 5km는 1시간 30분 안에만 들어오면 된다고 들었다. 힘들면 걸어도 된다. 어떤 이에겐 기록이 의미 있지만, 다른 이에겐 완주했다는 자체가 의미가 될 수 있다. 느리지만 남들 눈치 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페이스로 목표한 거리를 묵묵히 가는 이들도 응원하고 싶어 졌다.
대회 다음 날, 여자친구가 모델 한혜진 씨의 SNS를 캡처해 보내줬다. 모델 한혜진 씨도 '제29회 바다의 날 기념 마라톤 대회'에 하프마라톤에 어머니와 함께 참가했다는 내용이었다. 진작에 알았으면, P 과장의 하얀색 나시랑 한혜진 씨를 찾아봤으면 좀 덜 괴롭게 달렸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에필로그(Epilog) - 소설이나 연극, 영화, 만화 등 작품의 줄거리가 끝난 후에 덧붙인 보충된 부분을 말한다. 후일담으로 번역된다. 반대말로는 프롤로그(Prolog)가 있다.(출처: 나무위키)
대회를 마치고 왼쪽부터 K대리, 견뚜기, P 과장이 완주 메달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10km 완주하고 받은 상품들. 완주 기념메달, 멸치, 호떡, 과자, 음료, 물을 받았다. 꿀호떡이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