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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나남 Jan 14. 2021

도쿄 도립병원 새벽 응급실, 다시 살 수만 있다면

- 내 나이 서른 즈음에

내 나이 서른 즈음이었다. 

서른 즈음이라고 하면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라는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낭만과 청춘, 그리고 청춘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나는 내 나이 서른 즈음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었다.

나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았던 죽음이 나에게 닥친 것이다. 


서른은 죽음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할 수 없는 나이다. 

삶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모든 것에 분투할 나이인 것이다. 

인생의 파릇파릇한 황금기라고 할까?


그 서른에 나는 타국에서 죽음에 직면했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 '

'나도 죽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인생을 대하는 내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주었다.      

한일문화교류협회 초청으로 일본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부산 교사 열다섯 명이 7박 8일 동안 동경, 오사카, 교토에 가는 일정이었다. 


출발하기 전, 허리가 묵직한 것이 썩 좋은 몸 상태가 아니라서 신경외과에 갔다. 

하지만,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여행을 가는 데는 별 무리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출발하고 첫날, 버스로 도쿄 국립박물관을 견학할 때였다.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왜 이렇지? '라고 생각해도 꼭 꼬집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냥 몸이 이상했다. 


일행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많이 참았다. 

고통이 심해져 진통제를 물 없이 삼켰다. 그래도 별로 나아지지 않아 가이드에게 미안하지만, 몸이 좀 이상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내 상태를 말했다.


 가이드가 인솔책임자와 이야기하고 의논하는 것이 보였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이니 모처럼의 기회가 아깝다고 조금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 저녁 무렵이 되었다. 

몸 상태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가이드가 나와 함께 숙박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고마운 결정이다. 혼자였으면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사람의 도움과 가족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혼자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날 새벽, 그 일본인 가이드가 내 상태를 보고 도쿄 도립병원에 데리고 갔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오지마 가이드가 나를 살렸다. 

일본인 가이드 이름은 오지마였다.

아마 이름을 잘 기억하라고 재미있게 붙인 것 같다. 


병원 응급실에 가서 초음파 정밀검사를 했다.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자궁외 임신. 

난관이 파열되어 출혈이 심하다고 했다.

출혈이 장 전체에 퍼져 긴급한 상황이었다.

타국에서 응급수술을 해야 했다.  

새벽에 실려가 도쿄 도립병원의 예약된 수술보다 더 긴급하게 이루어진 수술이었다.


내가 주인공인 한 편의 드라마를 찍는 기분이었다.

 ‘아! 어쩌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이 5~6시간가량 걸렸던 것 같다. 

하반신 마취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수술하는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많이 떠니까 반신 마취를 해준 젊은 여의사가 시트 한 장을 덮어주었던 기억도 난다. 


수술실은 진공 상태와 같았다.

싸늘하고 차가웠다. 

타국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두렵게 했다. 

2박 3일 동안 간호사가 3교대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통제로 조금씩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한 달 동안 입원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모든 경비는 초청한 곳에서 들어둔 보험으로 충당되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경제적 부담까지 있었으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값진 경험을 한 것이다.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나는 매일매일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라는 자각을 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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