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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Aug 04. 2024

방콕여행 1

내 인생의 여행들

해외여행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곳을 고르라면 방콕이다. 이것은 100프로 진심. 진심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사실 하와이가 제일 좋기는 한데요. 하와이는 3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만 체류했기에 말하기가 민망하다. ‘하와이 일 년 살기’ 한 다음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경제 상황으로 가능한 것은 ‘부곡 하와이 일 년 살기’ 정도...     


 헛소리는 접어두고, 방콕에 처음 간 것이 2015년 가을. 회사에서 2주간의 휴가를 계획하면서 도쿄-방콕-서울-도쿄의 스케줄로 찾아봤더니 의외로 항공권이 저렴한 것. 어차피 고국 방문은 해야 하니, 방콕 여행을 보너스로 끼워 넣게 되었다. 원래도 혼자 여행을 잘 다녀서 크게 두려움은 없이 방콕에서도 솔로 여행을 시작했다. 첫날은 밤비행기로 도착하니, 아속의 저렴한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에 ‘만다린 오리엔탈 레지던스’로 옮겨서 3박을 했다. 숙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인터넷에서 본 민트색 로비가 예뻤기 때문. 체크인 기다릴 때 오렌지 주스를 줬는데 상큼하고 달콤하고 비싼 맛이었다. 현실은 땀 흘리는 관광객 1인이었지만, 마음만은 민트색 공주님 코스프레를 하며, 우아하게 체크인을 진행했다. 올라가니, 방도 예쁘고, 혼자 쓰기에 넓어서 체류기간 동안 만족했다. 로비사진 보고 숙소 정했다는 이야기는 저도 처음 듣습니다만, 결과는 굿.    

 

 BTS 플런칫역에서 도보 7-8분 정도 거리에 위치했는데, 역으로 걸어가면 센트럴 엠버시라는 고급 쇼핑몰 이용이 가능했다. 체크인하고는 엠버시에 있는 쏨분 시푸드에 갔다. 대표 메뉴인 뿌빳뽕카레를 맛있게 먹고, 화장실 6번은 갔다. 맵고 기름져서 그런가 봐요. 태국 음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극적이어서 화장실이 확보되는 쇼핑몰이 아니면 움직이기 불안하다. 방콕은 BTS역에 화장실이 없어서, 긴급 상황에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다. 이 날도 만약에 내가 야시장 같은 데서 커리를 먹었다간... 네이버 태국여행 카페에 사진 올라올 뻔.  

     

 첫 번째 방콕여행에서 재밌었던 이벤트는 시암 쿠킹스쿨에서 반나절 클래스에 참가했던 일. 선생님 시범을 보면서 똠양꿍, 팟타이, 치킨샐러드, 그린카레, 망고찹쌀밥을 만들어먹었다. 또 장트라볼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날 만든 그린카레가 집에 가는 길에 엄청난 복통을 일으켰다. 그린 카레 만드는 것을 보니까, 청고추를 절구에 빻아서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이는 것이더라고요. 오 마이. 똠양에, 팟타이에, 그린카레를 한 번에 먹었으니 내 장은 다이너마이트. 주택가에 위치했던 쿠킹 스쿨에서 최선을 다해서, BTS 역 근처까지 왔다. ‘카페라도 하나 보이기만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피스 빌딩 1층에 위치한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후다닥 뛰어가고 싶었지만,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엉금엉금 걸어서 카페에 도착했다.      


 아니 그런데 카페에 왜 화장실이 안 보여!! 절망해서 나오는데 배가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아아.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요. 그때 눈앞에 건물 관리인분이 보이는 것. “미스터.. 토일렛 토일렛 플리즈.” 했더니 “쩨껀 쁠로어”라고 하시는 것. 쩨껀 쁠로어가 뭐야 태국말인가. 하고 또 “토일렛.. 토일렛..”했더니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키며 “쩨껀 쩨껀.” 아아. 2층에 화장실이 있다고!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니, 사무실들이 있는 빌딩의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종로 르미에르 오피스 빌딩에 있는 것 같은 화장실. 덕분에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관리인분께 100바트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조용히 감사의 마음만 마음으로 전하고, BTS를 타고 귀가했다. 역시, 방콕에서는 쇼핑몰 근처에만 있어야 해.      


 두 번째 방콕 여행은 2016년 7월이었다. 친구가 방콕 출장을 가는데, 방이 넓으니 비행기 표만 끊어서 오면 같이 지낼 수 있다고 하는 것 아닌가. 다니던 회사가 연차 내기가 쉬운 편이라서, 얘기가 나오고 삼일 뒤에 바로 방콕으로 향했다. 7만 엔을 주고 JAL항공 티켓을 끊었는데, 숙박비가 안 들었으니 합리적인 것으로 혼자 셈을 마쳤다. JAL은 기내 알코올 메뉴가 다양해서, 진토닉에 우메슈에. 맥주가 아닌 다른 술들을 즐기며 방콕에 도착했다. 비행기서 마셨던 진토닉 맛을 잊지 못해. 이코노미 좌석에도 이런 은혜를 주시다니. 비즈니스 타면 얼마나 더 좋을 것이야 정말.      


 숙소는 아속에 있는 레지던스였는데, BTS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방콕은 인도가 좁고 블록이 깨진 곳이 많아서 걷기가 험난한 편이다. 그래도 방이 넓고 빌트인 세탁기도 있어서 만족했다. 게다가, 공짜잖아요. 히히. 친구는 출장으로 온 것이니, 주중에 일을 하고, 혼자서 한가롭게 방콕 거리를 걸어 다녔다. 작년에 한 번 왔었다고 친숙한 도시가 되어버린 방콕. 주말 하루는 힙스터가 되어보자며 (이 시점에서 이미 힙하지 못한) 미켈러 방콕에 택시를 타고 갔다. 녹음이 푸르른 민트색 단독 주택에서 마시는 수제맥주. 맥주잔에 태국 특유의 ‘사와디카~’ 손동작을 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 한동안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진만 봐도, 정원의 풍경과 시원한 맥주 맛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이런 찰나의 기억이 그 여행의 컬러를 정하는 것 같다. 16년 방콕 여행의 컬러는 민트색. 생각해 보니, 작년에도 민트색 로비를 보고 방콕에 왔었잖아. 내 안의 방콕 = 민트색으로 결정한다.      


 이날 저녁으로는 유명 레스토랑 ‘블루 엘레펀트’에 예약을 하고 갔다. 드레스 코드가 있다고 해서, H&M에서 앞코가 막힌 신발까지 사서, 신고 갔건만 쪼리 신은 사람들도 잘만 입장했다. 무엇을 위한 쇼핑이었단 말이냐. 여행 오기 전에 봤던 박명수가 나온 여행프로그램에서 이 레스토랑의 ‘마사만 커리’가 천상의 맛이라 하는 것이다. 친구가 무료로 숙박을 제공해 주었으니, 이날 저녁은 내가 대접했다. 양고기로 만든 커리라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으나, 우리나라 갈비찜처럼 야들하니 얼마나 맛있던지. 사이드로 시킨 새우 바질 볶음은 이름부터 맛있고, 레스토랑 가면 항상 시키는 공심채 볶음도 불 맛이 제대로. 밥도 재스민 라이스 백미, 흑미 선택이 가능했다. 재스민 라이스도 흑미가 다 있구나. 별 일이야. 가격대가 있었던 만큼, 만족스러운 분위기와 맛이었다. 작년은 혼자서 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었는데 일행이 있으니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서 좋구나.      


 하루는 작년에 가보지 않았던 촌농시와 실롬 지역을 구경했다. 친구인 케이코가 추천한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태국 음식점에 가서 항정살 구이와 텃만꿍을 시켰다. 잘 먹기는 했는데, 여기가 왜 유명한 걸까 생각을 하며 케이코에게 인증샷을 보냈는데      

 “체크야. (케이코가 부르던 내 별명이 check였다. 일본 사무실에서 건강검진 예약을 하는데, ‘che’라는 내 성의 발음을 계속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영단어 check의 che 라구요.”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사무실 사람들이 다 웃었다. 그날 이후로 내 별명은 체크상이 되었다. 길고 길었던 tmi) 그 가게는 똠양 볶음밥이랑 쏨땀이 유명한데...” 생각해 보니, 케이코가 사진으로 보여줬던 메뉴도 무슨 볶음밥이었던 것 같다. 미리 메모해서 올 것을.      


 그렇게 맛있는 가게에서 보통의 메뉴를 먹고 나와서는 걷다가 눈에 띄던 발마사지 가게에 들어갔다. 발마사지 시세가 300바트였는데, 이곳은 250바트라고 적혀있었다. 가격에 이끌려 들어갔는데, 남자 마사지사가 배정되었다. 보통은 여자분이 해 주셨어서, 약간 위화감이 들었는데, ‘뭐 남자면 마사지압이 좋겠지.’라며 오케이오케이. 왼쪽 발바닥에 티눈이 있어서 그 부분은 ‘노터치’ 해 달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는데, 마사지사 분이 ‘흥’하며 코로 웃는 것이었다. 이 애송이가 지금 내가 그것도 안 보이는 것 같냐는 뉘앙스로..!! ‘아니, 어떤 실력이길래 이렇게 콧대가 높으신 것인가’ 라며 발과 종아리를 내드렸는데, 세상에. 그때까지 받아 본 동남아 발마사지 중에 최고의 개운 함이었다. 혈 자리를 알고 딱딱 집어주는 느낌. 거기에 파워까지 겸비한. 지금은 가게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인생 최고의 발마사지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운명적인 발마사지는 이렇게 우연처럼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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