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

불감증.

by 해피아빠

친구들과 농담 삼아 '지병 한두 개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현대인이라면 한두 개는 있어줘야지.' 말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이런 얘기를 농담으로 했을 때는 사실 이렇다 할 지병도 없을 때인데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네요.

작년부터 시작한 고혈압약과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영양제들이 점점 늘어만 가니 말입니다.


저에게도 많은 지병이 있지만 최근에 심각하게 고민한 지병이 있습니다.

바로 '불감증'입니다.

말 그래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다행히 성적으로 불감증은 아닙니다.^^)


저는 오랜 기간 가이드와 인솔자 생활을 했습니다.

해외에서 살기도 했었고 손님들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했었죠.

많은 분들이 저의 직업이 참 좋은 직업이라고 해주셨습니다.

'가이드는 좋겠어. 여행하면서 돈도 벌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가이드나 인솔자 직업은 참 좋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 직업군의 좋은 점은 손님들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예를 들면 같은 명동 거리에 있어도 명동을 찾은 관광객과 거리에서 일하시는 분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 것처럼요.

손님들에게는 여행이지만 가이드나 인솔자에게는 일일수밖에 없으니까요.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어느 순간부터 에펠탑과 나일강이 출근할 때 보는 롯데타워, 한강과 다를 바가 없게 된 거죠. 손님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그 순간은 제가 일하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도시를 가도 설레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증상은 꽤나 오래 지속이 되었는데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혹시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던 음악도 듣지 않고 날씨가 좋은 날 외출도 하지 않는 제 모습은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일에만 불감이 아니라 삶 자체에 감흥이 없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회사 일로 베트남 다낭을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지만 제게는 서울과 다름없는 일상일 뿐이었습니다. 회사 호텔 회사 호텔

정말 재미없는 나날이 었죠.


올해 1월 다낭에 워크숍을 갈 때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대로 회사와 호텔을 오갈 뿐이었죠.

게다가 감기까지 걸려 컨디션이 최악이었죠.


작년에 좋은 실적을 거둔 회사에서는 북유럽에 거주 중인 선생님들도 두 분 초청했습니다.

오랜 세월 북유럽에 거주하시는 선생님들은 따뜻한 베트남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보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체험하는 모든 것들에 정말 감동하고 계셨습니다.

옆에서 보는 제가 즐거워질 정도였으니까요.


워크숍 마지막날 우리는 회사의 배려로 호이안이라는 마을을 가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의 어린 직원들과 한국 직원들이 차량 2대로 나뉘어 출발했지요.

베트남 직원들은 서울과 북유럽에서 온 우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습니다.

호이안에 도착한 우리는 대나무 바구니 보트를 타게 되었습니다.

배 타는 입구부터 한국 나이트에서나 나올법한 음악이 나오고 뱃사공은 우리를 업시키기 위해서

갖은 기술을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흥 많은 오슬로 선생님은 시작도 전부터 예열을 하고 계셨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바구니배를 타고 호이안시내를 구경하는 동안 그동안 죽어 있던 느낌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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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불감증을 치료해준 호이안


지나가다 맛있는 게 보이면 뭔지도 모르면서 먹었고 이뻐 보이는 것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때로는 사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아가 촛불을 강에 띄어보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해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두 행복해지자고.


호이안의 추억으로 저는 지금 일본을 혼자 여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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