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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고관절 Dec 29. 2020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6) 탐정놀이 즐거우셨나요

생활치료센터에서는 회복에만 전념하자, 고 생각하고 들어왔다. 계속 먹고 자고 먹고 자는데도 최근 몇 일 사이의 변화가 너무나 큰 탓에 몸도 마음도 충격을 떠안은 것 같다. 처음에 고열이 날 때는 불안했고 열이 가라앉고 시작한 몸 곳곳의 통증은 불편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강력한 스트레스는, "너 확진자라며"하는 낙인인 것 같다.



브런치를 익명으로 운영하는 것도 그런 두려움 때문이다. 

물론 회사나 가까운 지인들은 내가 확진자라는 걸 알고 있다. 우연히 내가 꿈에 나왔다며 연락한 오랜 친구에게, 매일 같이 안부를 묻던 동창들도, 그리고 일터에서 자주 교류했던 이들도 내가 코로나19 확진자라는 걸 알고있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처했는지를 잘 알고 내 안위를 걱정해줄 가까운 사람들이 내 신변에 대해 아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야기 한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이웃 주민들이 제일 무섭다. 


항균필름이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버튼. 

소문은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을 통해 퍼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 시국에도 아이를 맡겨야 했던 워킹맘으로서, 정말 내 발등 내가 찍었다는 말밖엔.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나는 일을 할 수 없는데,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의 신상이 털릴 일이 없었을까? 뭐. 조용히 지나갔을 수도 있겠다. 


어느 반 아이래? 누구집 애래? 우리 애하고 같은 반이야? 학부모들의 불안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게다가 아이도 확진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나머지 원아들도 검사를 받아야했다. 그 어린 아이들이 추위에 줄 서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너무 미안했다. 애들이 무슨 죄인가........그래서 내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한, 많은 이들에게 사과했다. 어린이집이 멈추고 급히 돌봄 펑크를 막아야 하는 상황. 학부모들이 화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카톡으로 전화로 미안하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나머지 원아 전체가 음성판정을 받기 전까지 피가 마르는 듯한 심정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그래서였는지(?)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탐정이 되려 하진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오히려 같은 반 엄마들은 확진을 받은 우리 아이의 건강을 염려해줬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전혀 교류도 없고 그저 '피상적' 이웃일 뿐인 다른 이들이 가장 무섭게 굴었다. 단지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익명으로 입주민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들어와 있던 나는 고스란히 그들이 나를 향해 던지는 말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OMG...저는 소심한 사람이라고요 ㅠㅠㅠ 이런 식으로 면전에다 대고 욕 쳐먹는 일 잘 못함)


어느 집이래? 몇동 몇호라인? 그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온데 다 퍼뜨리고 다녔다며? (재택근무 기간과 겹쳐 어디 나갈 일이 없었음에도....) 빨리 어느 집인줄 알려줘요 화장실로, 환기구로 우리 다 죽을지 몰라! 아직도 집에 있는거? 왜 관리실은 동호수 이야기 안해요? 방송을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하면 어떡해 나는 회사에 보고해야 한다고! 이웃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무조건 보고해야 하는데 관리소장은 왜 입다물지? 이 사람들 일은 하는거야 마는거야. 엘리베이터 같이 탔으면 어떡해! 그 사람들이 문제네. 등등등. 




나중에는 가족들하고 떨어져 먼저 생활치료센터로 가는 내 모습을 보고 "이제 구급차 탔네요. 몇동인거 같아요"까지 친절히 중계하시고..... 너무 신이 나셨던 거 같다 다들. 호호호호 다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겠지? 재밌으셨나요 탐정놀이? ^____^ 덕분에 인류에 대해 갖고 있던 최소한의 믿음은 조각조각 나버렸다. 어린 아이가 확진판정 받은 것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웃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저것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에 꽂혀서 그 말과 손가락질에 누가 죽어나가는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인간들.........이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씁쓸했다. 그리고 내가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아마, 이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ps. 대한민국 최초 확진자 분께, 이 자리를 빌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던 그 시절 우리는 광기에 휩싸여 누군가의 동선을 신문에서 방송에서 접하고 또 그게 화제가 되었죠....야만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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