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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눈물로 받아쓴 병명의 순간

2011.11.16 (2)

by 시니어더크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병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낯선 공간에 있는 것이 여전히 어색했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초겨울 저녁빛이 희미하게 병실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병원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살짝 매콤한 고깃국과 쌀밥이 환자식으로 나왔지만, 아내는 손도 대지 못했다. 차려진 음식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도 많이 먹지 못하던 아내였지만, 그날은 유독 기운이 없어 보였다. 대신, 낮에 처형이 정성껏 준비해 온 잣죽을 겨우 몇 숟가락 떠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나는 남은 환자식을 억지로라도 먹으려 했지만, 마음이 무거워 젓가락질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더 강해져야만 한다고, 우리 둘 다 무너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한 숟갈씩 넘겼다.


식사를 마칠 즈음,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가 딸을 데리고 병실로 돌아왔다. 딸은 간식거리를 사 왔지만, 아내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몇 번 맛만 보고 다시 침대에 누운 아내의 모습은,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힘겨운 것이었다.


병실 문을 나서 빈 그릇을 배선실에 갖다 놓고 돌아오는 길에 담당 의사를 마주쳤다. 의사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눈이 반쯤 감긴 채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 과중한 업무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는 나와 함께 병실로 들어와 여느 때처럼 차분하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단어는 다발성 골수종, 혈액암의 일종이라는 말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병명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혈액암’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공포였다. 병명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이 병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그런데 아내는 의외로 침착하게 반응했다. 아내가 가장 먼저 한 질문은, “머리카락이 빠지나요?”라는 것이었다. 외모의 변화를 걱정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그 순간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의사는 그저 웃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아마도 항암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그보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더 큰 문제들이 맴돌기 시작했다.


의사는 아내의 가슴과 어깨 통증, 신장 기능 저하, 심한 빈혈까지 모두 다발성 골수종의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지난 몇 달간 아내가 겪었던 통증과 체력 저하가 모두 이 병의 징후였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더 일찍 이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았더라면, 적어도 몇 개월간의 암 진행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병원에 오기 전, 우리는 다른 대학병원에서 5개월 동안 심장병인 줄로만 알고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날의 검사 결과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의사는 아내의 병이 이미 많이 진행된 단계라며, 약물 치료와 항암제를 포함한 화학요법을 곧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통제 역시 더 강한 것으로 바꿔야 하며, 필요시 마약성 패치도 지금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이미 진통제 부작용으로 심한 변비를 겪고 있는 아내에게 앞으로 더 고통스러운 나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의사는 설명을 마치고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나는 그 순간에도 애써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그 끝에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저녁이 깊어가던 그때, 아내는 잣죽을 조금 더 먹었다. 하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마약성 패치를 붙이고, 진통제를 두 대나 맞고 나서야 겨우 통증이 완화됐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또다시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그렇게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고, 깊은 밤 잠에 들었다.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병이라는 것은 단지 환자 한 사람만의 싸움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가족 모두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이 싸움에 맞서야 했다. 아내가 겪는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아내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날 이후로도 많은 밤을 병실에서 보냈다. 치료는 시작되었고, 항암제는 아내의 몸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아내는 눈에 띄게 야위었고, 통증도 잦아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신앙의 힘이 우리를 버티게 해 주었고, 처형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작은 위로가 되었다.


어느 날 처형은 교회 집사님이 기도 중에 보았다는 환상을 이야기해 주었다. 치유의 천사들이 아내의 아픈 부위를 칼로 도려내는 동안 까만 벌레들이 도망쳤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는 아내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다시금 심어주었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반드시 이 싸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의 상태는 조금씩 달라졌다. 어떤 날은 더 나아진 것 같았고, 또 어떤 날은 다시 악화된 듯했다. 하지만 나는 한결같이 아내 곁을 지키며 그 모든 과정을 함께 견뎠다. 우리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믿음 하나만이 우리를 버티게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병이라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싸움이기도 했다. 그 싸움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아내 곁을 지키는 것. 아내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함께해 주는 것. 우리가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아내에게 힘을 주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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