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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병원에서의 하루, 아내와 함께한 마음의 여정

2011.11.16 (1)

by 시니어더크


어젯밤, 아내는 오랜만에 통증 없는 평화로운 밤을 보냈다. 진통제를 맞고 겨우 잠이 들었고, 나는 아내의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며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이렇게 고통 없이 밤을 보낸 것이 얼마 만인가. 하지만 평온했던 밤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고, 아침이 밝자마자 병원의 바쁜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새벽 6시가 되기 무섭게 인턴이 들어와 아내의 피를 채취하고, 이어서 엑스레이 촬영을 준비했다. 그 후에도 연이어 각종 검사들이 이어졌다. 검사와 검사를 오가는 동안 아내는 거의 쉴 틈 없이 피곤에 절어 있었다. 아내의 고된 하루가 시작된 것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침대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건네는 것조차 아내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나 또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8시 50분경, 아내는 골수와 조직 채취를 위한 골수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전, 의료진은 골수 채취 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취를 했어도 그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검사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의 마음은 초조하게 흔들렸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검사실 문밖에서 지켜보며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의사들은 검사가 약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30분 만에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 왜 이렇게 빨리 끝난 걸까? 혹시 잘못된 게 아닐까? 검사가 너무 빨리 끝난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징조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검사를 마치고 나온 아내는 병실에서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검사 중 의사들이 나눈 대화를 들었는데, "뼈 상태가 좋지 않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전신마취가 아니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대화가 그대로 아내에게 들렸던 것이다. 아마 의료진은 환자가 그 말을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아내는 자신의 몸 상태가 나빠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의료진이 직접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그들은 단순히 진단과 의학적 소견을 이야기했을 뿐일지 몰라도, 그 무심한 말 한마디가 아내에게는 깊은 불안과 공포로 다가왔다.


검사가 끝난 후, 아내는 1시간 동안 지혈을 위해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대고 누워 있어야 했다. 똑바로 누워 있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아내는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냈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조심스러웠다. 내 손길이 아내에게 부담이 될까 봐, 그저 손끝으로 가만히 닿아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마침내 아내는 지혈을 마쳤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우리는 병원 지하에 있는 상점가를 잠시 산책하기로 했다. 병실에서만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거의 눈을 감고 있었다. 약물의 영향 때문인지 아내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매번 짧은 걸음을 걸을 때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무거운 침묵만 흘렸다. 아내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오후 3시쯤, 우리는 종양내과 병동으로 옮겼다. 이동하기 전, 병원에서 받은 동의서에는 6인실에 배정될 수 있으며, 입원 기간은 최소 7일에서 10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내의 상태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오래 머무르게 될 가능성도 컸다. 급작스럽게 장기 입원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다행히 우리는 2인실에 배정받았다. 처음 들어섰을 때 창가 쪽에 있는 침대를 배정받은 것을 보고 약간의 위로를 느꼈다. 창문 밖으로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보였고, 병원의 답답함 속에서 그나마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2인실의 하루 입원비는 다인실보다 16만 5천 원이나 더 비쌌다. 치료비 외에도 병실비가 추가되니 경제적 부담이 한층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내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힌 듯 보였다.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옆 침대에는 35살의 젊은 주부가 있었는데, 간병인이 나누는 대화가 아내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옆 침대 환자는 폐렴 진단을 받으러 왔다가 폐암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내는 그 말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였다. 한순간에 다가오는 두려움과 불안이 아내의 마음을 짓눌렀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간병인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조금 삼가해 주시겠어요?”라고 말이다.


이 공간에서 환자들이 얼마나 예민한 감정 상태에 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저 나누는 가벼운 대화조차 아내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암 환자에게 말 한마디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마음속에 큰 불안을 심어주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다시 깨달았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고된 시간이다. 나는 아내를 지켜보며,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말 한마디, 손길 하나가 그 어떤 약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병원 생활 속에서 환자들은 오로지 병과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 불안, 그리고 고독과도 싸워야 한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조금 더 세심하게 마음을 쓰는 것이다.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 깨닫는 하루였다.


아내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나는 아내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마음을 다해 아내를 위로하고 있는지, 진정으로 아내의 마음속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그날의 병원 생활을 통해,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육체적 치료만이 아니라 마음의 위로와 평안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날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병원이 주는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마음의 고통이 환자에게는 더 큰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호자로서 나는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의 마음속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내 몫임을.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는 아내의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았다. 지금부터라도 진심을 다해, 그리고 아내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며, 병실의 조용함 속에서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주변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고, 창밖으로는 한강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내는 비스듬히 누워서도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이미 아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에 무뎌진 것 같았다. 아내의 눈은 여전히 촉촉했고, 슬픔과 불안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흐르는 강물처럼, 아내의 생각도 끝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 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아내는 겉으로는 강해 보였지만, 그 내면은 너무나도 여리고 불안해 보였다.


"여보,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그 말이 정말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가만히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는 걸. 그런데도 이 고통이 너무 버거워. 마음이 계속 무너지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의 마음속 깊은 슬픔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막막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육체의 아픔을 치료하는 곳이지만, 마음의 고통까지 치유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그 부분은 나와 같은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더 세게 잡고 속으로 다짐했다. 아내가 이 병원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내가 함께 나누겠다고.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내의 곁을 지키며 매 순간 마음으로 안아주는 일이 내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내는 눈을 감았지만,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나는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계속 곁에서 지켜보았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환자에게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길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 속에서 환자들은 단지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도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그 무엇보다 힘겨울 수 있다.


아내가 병실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은 단순히 약으로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였고, 보호자인 나에게는 그 마음을 지탱해 주는 것이 중요한 책임임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비록 육체적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는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내의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작은 시간이 아내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단지 치료의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의 힘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결국, 아내와 나의 이야기는 단순한 병원 생활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함께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말보다 마음이 더 깊이 닿는 밤이었다. 병원의 창밖으로 흐르던 한강처럼, 아내의 마음속 고통도 천천히 흘러가길 바랐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기도했다. 오늘보다 더 따뜻한 내일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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