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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응급실로 가던 날

2011.11.12

by 시니어더크


수많은 혈액암 환자들이 오늘도 생사의 기로에서 병과 싸우고 있다. 대학병원에 가면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제 아내였다. 아내는 13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치열하게 싸워왔다.


아내의 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고통과 희망, 절망과 의지를 오가는 시간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아내는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끝까지 함께 힘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투병 생활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매일같이 변화가 있었다. 좋은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내의 상태에 따라 우리의 일상은 끊임없이 바뀌었고, 때로는 평범한 하루처럼 보이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아내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아내의 투병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삶의 소중함과 작은 행복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힘이었다.


나는 아내의 투병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시작하려 한다. 이 기록은 시간이 흘러도 아내를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함께한 순간들을 간직하기 위해 쓰려는 것이다. 또한,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2011년 11월 중순,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우리는 집 안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아내는 그날따라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마치 가슴을 찢는 듯한 통증이 아내를 짓누르고 있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역시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나는 큰처남에게 도움을 청할지 고민했다. 병원으로 데려갈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 오후의 도로 정체가 걱정되었다. 큰처남의 차를 이용했다간 길에서 시간을 허비할 게 뻔했다. 결국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는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우리는 급히 아내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도로는 심하게 막혀 있었지만, 사이렌을 울리는 구급차는 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동하는 시간에도 아내에게는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구급차 안에서 아내는 누울 수도 없었다. 가슴을 찌르는 통증 때문에 상체를 세운 채 옆자리에서 버텨야 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지만, 고통에 찬 얼굴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몸을 움찔하며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아내의 모습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내는 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애써 고통을 숨기려 했지만, 얼굴에 드러난 아픔의 흔적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마침내 우리는 강남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아내는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긴장 속에서 버텨온 시간이 끝나자, 비로소 마음이 풀렸나 보다. 나는 아내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고, 간호사들이 신속하게 응급 처치와 검사를 진행했다. 피검사, 심전도, 심장 초음파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아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검사 하나하나가 큰 고통이었고, 응급실 안에는 아내의 신음이 가득했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에 빠졌다. 다행히 진통제가 투여되면서 아내의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심장 CT와 엑스레이 촬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촬영을 위해 반드시 똑바로 누워야 했지만, 아내에게 그 자세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심장 문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결국 아내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촬영을 마쳐야 했다. 나는 그저 옆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내가 이 고통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앞으로의 치료 과정이 얼마나 가혹할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날 밤, 아내는 계속된 검사와 처치 끝에 겨우 잠에 들었다. 진통제 덕분에 오랜만에 통증에서 해방된 첫날밤이었다. 나는 병실의 작은 의자에 앉아 아내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지, 아내가 그 긴 싸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러나 그날 밤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낸 아내의 강인한 모습이, 지금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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