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9
며칠 전부터 아내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자주 호소해 왔다. 밤이면 더욱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옆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일이 많아졌다.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결국 위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했다. 병과 싸우는 삶 속에서 새로운 고통은 또 다른 불안의 시작이기도 하다.
아내가 처음 혈액암 진단을 받았던 날, 우리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싸움은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일상이란 것도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병원 방문과 끊임없는 검사들, 언제 또 무슨 증상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이 우리 삶의 배경이 되었다.
오늘은 위내시경 검사 날이었다. 의사들은 식도에서 십이지장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혹시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조직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이전에도 몇 차례 이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큰 문제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통증이 워낙 심한 탓에 우리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원인을 꼭 찾아야 했다.
검사를 위해 아침부터 금식을 해야 했다. 사실 아내는 요즘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했다. 겨우겨우 한두 숟가락 떠보지만, 금세 내려놓기 일쑤다. 오늘도 금식을 견디고 오전 10시 40분경 진통제 주사를 맞은 뒤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는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 우리는 큰 이상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검사가 끝나고 병실로 돌아온 아내는 여전히 지쳐 있었고, 여느 때처럼 물 한 모금 외에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했다. 나는 묵묵히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끝의 체온만으로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잠시 후 작은 형님 부부가 병문안을 오셨다. 작은 형님은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먼 길을 와주셨다. 그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고,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오랜만에 나눈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병을 잊을 수 있었고, 아내의 표정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이어 처형과 동서도 찾아왔다. 손위 동서는 교회의 장로님이시라, 늘 올 때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아내는 그 기도가 큰 위로가 된다고 자주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신기한 것이, 말 한마디, 손을 얹어주는 그 따뜻한 순간만으로도 다시 버틸 힘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방문이 끝나고 나니 아내는 더없이 지쳐 보였다. 가슴 통증은 여전했고, 마약성 진통제 패치로도 그 고통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다시 진통제 주사를 맞아야 했다. 더 큰 걱정은 아내의 허리 아래에 생긴 작은 상처였다. 욕창의 초기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호사에게 알렸고, 곧 거즈를 붙여주었다. 우리는 아내가 한 자세로 오래 누워 있지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 했다. 욕창은 생각보다 더 위험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내가 머문 병실은 2인실이었다. 옆 병실에 있는 환자의 남편이 우리에게 뜻밖의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셨다. 암 환자가 중증 질환자로 등록되면 ‘산정 특례’가 적용되어 진료비 중 본인 부담률이 5%로 낮아진다는 이야기였다. 지정된 카드로 결제하면 마일리지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 정보 하나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니 감사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친지들이 찾아와 주셨고, 모두 따뜻한 말과 기도를 아내에게 건넸다. 하지만 아내는 하루 종일 거의 먹지 못한 상태에서 문병객들을 맞이하느라 더욱 지쳐 있었다. 통증, 검사, 방문…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아내의 지친 얼굴을 보며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조금만 더 견디자. 오늘 하루도 잘 버텨줘서 고맙다.’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이 병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겹다. 환자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가장 괴롭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때로는 작은 정보 하나가 큰 도움이 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오늘처럼 긴 하루에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다.
아내가 싸우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고된 여정인지 매일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여정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함께 있는 것, 손을 잡아주는 것,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 그 모든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내가 다시 웃는 날이 오기를, 그 날까지 나는 오늘도 아내의 곁에서 조용히, 묵묵히 함께 걷고 있다.
암과의 싸움은 끝이 없지만, 사랑의 힘은 그 싸움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