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는 시간

2011.11.20

by 시니어더크


병원에 들어온 지도 벌써 9일째다. 시간이 이곳에서 멈춘 듯하다. 바깥세상은 분명 흐르고 있겠지만, 병실 안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조차 희미하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나가지만, 아내의 병상 옆에서 모든 감각이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다. 몸은 끈적거리고 찝찝한데, 내 몸을 돌볼 여유는커녕 병실 옆 샤워실에서 간단히 씻어야겠다는 생각조차 실현하기 어렵다. 이곳은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고, 내 시간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듯하다. 지금은 오직 아내만을 위한 시간이다.


평일엔 면회가 제한되기에 주말이 되면 가족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위로를 건넨다. 오늘은 일요일, 다행히도 특별한 검사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였다. 아내는 계속 병실에만 머물다 보니 점점 더 답답해했다. 나 역시 보호자 침대에 쪼그려 앉아 있다 보니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복도를 함께 산책했다. 길고 휑한 복도를 몇 바퀴 돌다 보면 시간도 금세 흐른다. 아내는 바람을 쐬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고, 우리는 다시 병실로 돌아와 그녀는 조용히 침대에 몸을 눕혔다.


오후에는 셋째 형님 내외가 병문안 오셨다. 연로하신 형님 부부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오히려 내가 그 걱정을 덜어드리려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저녁엔 큰 처남 내외가 찾아왔다. 목사님이신 처남은 매번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다. 오늘도 아내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조용히 간절히 기도하셨다. 기도의 울림은 병실의 고요를 깨지 않고 우리 가슴에 잔잔히 번졌다. 나는 그 기도가 아내의 몸과 마음 깊은 곳에까지 닿아 치유의 힘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오전에는 담당 의사와의 면담이 있었다. 어제 받은 위내시경 검사 결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약간의 역류성 식도염이 있지만, 약물로 조절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더 큰 소식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항암제를 복용하며 암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메스꺼움, 구토, 피로감이 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기에 치료 중에도 잘 먹어야 하며, 퇴원 후에도 식생활을 철저히 관리하라고 당부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항암제 부작용이 아내의 마음까지 약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특히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다는 말이 아내의 불안감을 더 키울까 염려되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고비를 견뎌온 아내이기에 이번에도 이겨낼 것이라 믿지만, 내심 그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나라도 더 단단해져야 한다.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몫이다.


내일은 잠시 병원을 비우기로 했다. 처형에게 간호를 부탁드리고, 나는 건강보험과 실업급여 신청 등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아내는 몸이 아픈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회사를 다니며 힘겹게 버텼다. 그 책임감이 오히려 병을 키운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저녁에는 딸이 병원을 찾았다. 혼자 집을 지키고 있어 마음이 쓰였는데, 멜론과 식빵을 들고 온 딸의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가슴 저리던지. 함께 간단히 저녁을 대신하며 딸과 눈을 마주쳤을 때, 우리 가족이 이 시간을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위로를 느꼈다. 아직 항암제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벌써 메스꺼움을 느끼며 구토했다. 마음의 긴장과 병실 특유의 공기가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항암 치료.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치료가 아내를 회복시키는 길이 되리라는 믿음만은 놓지 않는다. 우리는 이 긴 싸움에서 사랑으로 버티고, 신앙으로 견디고 있다. 매 순간이 불안하지만, 서로를 마주 보며 손을 잡고 버티는 그 사랑이 우리를 지탱한다.


오늘 들은 또 다른 소식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작은 처남이 일하다 머리를 다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내의 투병에 이어 또 한 명의 가족이 병상에 누웠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왜 이렇게 아픈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하늘이 야속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아내의 치유, 가족 모두의 회복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기도한다.


한편, 병원에서는 암환자 산정특례 신청을 진행했다. 간호사는 퇴원 시 중증 환자로 등록될 거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신청을 부탁드렸다. 병원비는 언제나 현실적인 걱정거리였기에, 이 제도가 적용된다면 적어도 금전적인 부담은 조금 덜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주 작은 안도감이라도 찾는 일이다.


병원 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사랑'이었다. 가족의 위로, 친구의 격려, 그리고 신앙의 울림은 고통 속에서도 빛을 만들어낸다. 아내의 회복을 위한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녹록지 않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함께하리라는 그 약속 하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이 고된 여정 속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삼 느낀다.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상의 헌신 속에 깃들어 있고, 그 사랑은 결국 고통을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어떤 일이 앞으로 더 기다리고 있든, 나는 아내의 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가 걸어온 길이 기적의 여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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