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처음 항암치료를 시작하던 날

2011.11.21

by 시니어더크



오늘은 아내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오랜 시간 몸을 불편하게 했던 여러 개의 주사기들이 모두 제거되었다.

간만에 조금은 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오늘은 아내가 생애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 우리 인생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면, 이 길을 다시는 걷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우리는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담담히 마주할 수밖에 없다.

서로를 부여잡고, 이 시간을 함께 견뎌야 한다.


아침부터 병원은 분주했다.

간호사가 병실로 와서 다발골수종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받게 될 항암치료 계획도 차근차근 짚어주었다.


그 말들을 들으며, 이 싸움이 얼마나 복잡하고 긴 여정일지 실감이 났다.


곧이어 약사가 방문했다.

치료에 사용될 약물의 이름, 효능, 예상 부작용, 복용 방법까지 차분히 설명했다.

그 조용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 싸움의 무게를 다시금 느꼈다.


항암치료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길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더 어두운 터널 같았다.


빛이 어디쯤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터널을

지금 우리는 함께 걸어가고 있다.


치료 시작 전, 병원 1층 원무과로 내려갔다.

중증 환자 등록을 신청했다.

산정특례 덕분에 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은 안도했다.


며칠 전 납부한 심장초음파 비용도 환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절차들을 밟는 동안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건 단순한 서류 절차가 아니었다.

이제 아내가 ‘암환자’로 분류되는 현실의 선언이었다.


오후가 되어, 아내의 언니가 병실을 찾아왔다.

나는 잠시 병실을 비우고 외부 업무를 처리했다.


보험사에 전화하고, 진단서와 골수검사 결과지를 신청했다.

병원 안팎을 오가며 마음은 늘 병실에 있는 아내에게 가 있었다.


지금 아내는 얼마나 불안할까. 얼마나 무서울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아내를 지켜주는 방식이라 믿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약이 병실로 들어왔다.

첫 번째 항암제는 덱사메타손이라는 스테로이드제였다.


한 달에 4일, 하루 20알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숨이 막혔다. 하루에 스무 알이라니.


스테로이드가 암 치료에 사용된다는 것도 낯설었다.

그 강한 약이 아내의 몸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우리 삶에 닥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어 더 두려웠다.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며 다시금 생각했다.

아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그 발걸음은 지금껏 걸었던 어떤 길보다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불안과 두려움이 번갈아 밀려왔다.


우리는 이 여정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아내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너무도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해줄 수 없는 순간들이 안타깝고, 슬펐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아내의 곁을 지키는 것.

묵묵히 함께 이 시간을 버텨내는 것.


불안과 공포를 아내에게 보일 순 없다.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건

내 흔들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용기다.

그리고 따뜻한 지지다.


오늘의 이 아픈 시작이

언젠가는 아내의 회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에

반드시 빛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나는 다시 아내 곁으로 돌아간다.


그 빛이

아내의 건강과 웃음을 비추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이 싸움을 함께 시작한다.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이 고난이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의 이 모든 아픔이

아내의 평안과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화 |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