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2
아내가 병원에 입원한 지 어느덧 열하루째.
어제는 처형에게 병실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집은 마치 시간을 멈춘 듯 고요했다.
나는 오랜만에 고무장갑을 끼고 먼지를 털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재활용 쓰레기까지 분류해 내다 버렸다.
곧 돌아올 아내를 위한 작은 준비였다.
몸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청소였다.
안방과 거실, 화장실은 특히 더 신경을 썼다.
겨울 바람이 스미지 않도록 암막커튼을 새로 달았고,
햇살 드는 창가엔 방석과 담요를 조심스레 펴 놓았다.
누운 채로라도 햇빛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청소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묵직했다.
밤새 통증은 없었을까. 잠은 좀 편히 잤을까.
걱정이 구름처럼 따라붙었다.
병실 문을 열자, 아내는 침대에 앉아 처형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온한 얼굴에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 안 아팠어?”라는 내 물음에 돌아온 “괜찮았어”라는 말은,
오히려 가슴을 아리게 했다.
언제나 자신보다 나를 먼저 걱정하는 사람.
그 말 너머에 숨은 아내의 마음이 보여서였다.
아침엔 건강보험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산정특례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안내.
요양급여의 5%만 부담하면 된다는 말이었지만,
비급여 항목은 여전히 큰 부담이었다.
혈액암 치료 대부분이 그 범주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단 하나,
아내가 고통 없이 치료를 잘 받는 것이었다.
돈은 나중 문제다.
덜 아파야, 덜 힘들어야
삶을 견딜 힘도 생기는 법이니까.
그러던 중, 한 줄기 희망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10여 년 전, 교회 권사님의 권유로 가입했던 생명보험.
그 특약 덕분에 진단금 수령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연락이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부해 온 아내의 선택이
지금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점심 무렵, 아내는 병원 식사 대신
처형이 가져온 찰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
정월대보름이면 늘 해 먹던 찰밥.
쫀득하고 고소한 그 맛을 아내는 특히 좋아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온 처형의 손맛.
그 속에 담긴 기억과 그리움이
아내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병문안을 온 다섯째 형님 내외 앞에서
갑작스러운 통증이 밀려왔다.
아내는 가슴을 움켜쥐며 숨을 몰아쉬었고,
급히 비상벨을 눌렀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가 주사는 어렵다는 설명.
결국 알약으로 통증을 견뎌야 했다.
진정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도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을 약에만 의존해 넘겨야 하는 현실은
참담했고, 무력했다.
내일은 퇴원하는 날.
저녁엔 탈리도마이드 캡슐이 병실로 들어왔다.
이제 아내는 이 항암제를 집에서 복용하게 된다.
보험 설계사와 만나 서류를 전달했고,
진단금과 입원비 청구 절차도 마쳤다.
남은 건, 무사히 일상을 이어가는 일뿐이다.
오늘도 병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작게, 아주 작게 기도해 본다.
내일은 오늘보다 덜 아프기를.
그리고 함께할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