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아내의 퇴원 날,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일상

2011.11.23

by 시니어더크


아내가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반 병실로 옮겨진 지 꼭 열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통증을 억제하기 위해 독한 모르핀 주사와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했고,

그마저도 부족해 몸에 붙이는 패치형 마약성 진통제까지 사용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 아내는 각종 힘겨운 검사를 견뎌냈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검사 결과가 나왔다.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이라는 진단이었다.


백혈병, 다발골수종, 림프종—이 세 가지는 3대 혈액암이라 불린다.

그중 다발골수종은 특히 예후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재발이 잦고, 아직은 희귀병으로 분류되어 국내 환자 수도 많지 않다.

하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다행히 지난밤, 아내는 큰 통증 없이 비교적 편안히 잠을 잤다.

이런 상태만 유지된다면,

앞으로의 치료 과정도 무난하게 이어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고통이 몰려올지 모른다.

우리는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창밖에는 초겨울의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늘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병마로 인해 더욱 예민해졌고,

그 추위를 몇 배나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아침이다.

병원에서 나온 환자식은 간신히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양치질을 하고 퇴원 준비를 하긴 했지만, 약 기운 때문인지 계속 졸린 눈을 떴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오늘은 퇴원일이다.

교회 목사님이신 큰처남이 차를 가지고 양주의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아내를 위해 이리저리 수고가 많은 큰처남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이다.


아내가 말했다.

“배가 고파. 지하상가에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고 가면 안 될까?”


그때 큰처남이 말했다.

“양주에 수타 짜장면 잘하는 집 있어. 조금만 참자고.

거기서 먹는 게 낫지.”


나는 그 사이 병원 1층 원무과로 내려갔다.

퇴원 수속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병원비는 총 850만 원이 나왔다.


하지만 산정특례자 적용이 되어 최종 부담 금액은 290만 원으로 줄었다.

수납을 마친 후, 8층 병동 간호사에게 영수증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처방된 약이 조제되는 대로 병실로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들어온 간호사가

하나하나 친절하게 복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짐을 먼저 차에 실었다.
그리고 병원 지하 마트에 들러 양말과 마스크를 사서 아내에게 신겼다.


큰처남 차를 타고 양주 집으로 가는 길은 예상보다 한산했다.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수타 짜장면 집으로 향했다.


배고픈 상태에서 먹는 음식은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아내가 잘 먹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젓가락을 몇 번 들더니 곧 내려놓고 말았다.


몸이 허약하고 기력이 많이 떨어져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한 그릇 뚝딱 비울 줄 알았기에,

마음이 더 안쓰러웠다.


배가 고프다면서도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아내.
집에 돌아가서라도 뭔가 다시 만들어 먹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쇼파에 기대어 앉았다.
눕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게 낫다고 했다.


큰처남은 조용히 돌아갔고, 나는 서둘러 짐을 풀었다.

무엇보다 급한 건 아내가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구수한 배추 된장국을 심심하게 끓였다.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국물용 큰 멸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멸치 다시다로 대신했는데, 어딘가 느끼한 맛이 나는 듯도 했다.

아내 입맛에 맞을까 걱정이 되었다.


마침 수요일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농산물 시장이 열리는 날.


주민이 적다 보니 규모는 작았지만,
계란과 김, 청국장, 두부, 귤, 도토리묵 등을 사서 반찬을 준비했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송이버섯도 볶았다.


병원에 열흘 넘게 있다 보니 냉장고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딸은 그 사이 뭘 먹고 지냈을까.
말로는 잘 챙겨 먹었다고 했지만, 냉장고 안을 보니 그 말이 미심쩍었다.


이른 저녁을 차려주었지만,

아내는 고작 4분의 1 공기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배는 고픈데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서 겪은 고통과 스트레스 탓에
입맛도 떨어졌을 테고, 무엇보다 기운이 없으니 먹는 것도 버거웠을 것이다.

이럴수록 더 잘 먹어야 항암약과 싸울 힘이 생기는데,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앞으로는 과일이나 떡처럼
조금씩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자주 준비해 틈틈이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무렵, 생명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본인 확인을 위한 통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내와 짧은 통화를 마친 뒤, 진단금과 입원비가 계좌로 입금되었다.


우선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돈으로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치료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기에,
장기적인 병원비 마련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결국,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앞길을 인도하시는 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다.

앞으로도 말씀을 붙들고, 세상의 근심에 매이지 않도록
마음을 바로 세우기로 다짐했다.


아내와 나는 결혼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겨왔기에,
앞날이 아무리 험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약을 챙겨 준 아내는 여전히 몸이 불편해 보였다.

침대에 눕게 하려 했지만, 오히려 눕는 것이 더 괴롭다며 앉아 있겠다고 했다.
병원에 가기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아내 곁을 지키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투병일기 #간병일기 #아내와의기억 #다발골수종 #신앙으로사는삶 #브런치에세이 #일상글쓰기 #에세이추천 #가족이야기 #희망의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