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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빈 밥상을 바라보며

부부의 시간과 정성이 담긴 공간

by 시니어더크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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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오래되면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부부의 시간과 정성이 담긴 공간이 된다. 신혼 때는 함께 요리하며 서로의 입맛을 맞춰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많아졌고, 나는 익숙하게 아내가 차려 준 따뜻한 밥을 받아먹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아프고 누워 있게 되면서 그 당연함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닫게 됐다. 이제는 내가 매 끼니를 챙겨야 했다. 하지만 어려움은 단순히 요리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아내가 차려 주던 밥상에는 사랑과 배려가 담겨 있었다. 반찬 하나에도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스며 있었고, 아내는 늘 내 건강과 입맛을 고려해 음식을 준비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자주 올라왔고, 국물의 간도 언제나 딱 맞았다.


그런데 이제 내가 밥을 차리는 입장이 되니, 그 마음을 온전히 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 많았다. 국 하나를 끓이는 일조차 어색하고 서툴렀다.


어렵게 만든 음식을 내밀었을 때, 아내가 힘없이 몇 숟갈 뜨다가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더 먹이고 싶어도, 더 건강한 음식을 차려주고 싶어도 아내의 입맛은 점점 사라져 갔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오늘은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주부들은 하루 세 끼를 챙기면서도 늘 새로운 음식을 고민한다. 가족이 질리지 않도록, 영양을 고려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신경 쓴다. 하지만 나는 매번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면서도 답을 얻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냥 아무거나.”

아내가 이렇게 말할 때면 더 막막했다. 겨우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만들어도, 정작 아내가 많이 먹지 못하면 허탈하고 슬펐다. 그렇게 매일 밥상을 차리면서 깨달았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 끼를 준비하는 데에는 사랑과 정성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야 수십 년 동안 아내가 가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진짜 요리였다는 것을.


비록 서툴렀지만, 나는 아내를 위해 밥을 지었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입맛이 없어도 한 숟갈이라도 더 뜨도록 정성을 다했다. 그것이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따뜻한 쌀밥 한 공기를 차려 주고 싶어도, 이제는 차려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아직 사랑하는 아내가 곁에 있는 남편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아내가 차려 주는 밥 한 끼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빈 밥상을 바라보며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 하루만이라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정성껏 차려 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곧 부부의 삶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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