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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전에, 나로 살고 싶은 노년의 삶

손주 육아에 지친 시니어 세대

by 시니어더크


요즘 많은 노년층, 특히 어머니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있다. 은퇴 후 여유로운 노후를 꿈꾸던 그들은 정작 손주 육아에 매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손주를 돌보고, 밥을 차려주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하원을 책임지고, 저녁에는 맞벌이 자녀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돌본다.


이러한 일상은 주 5일, 때로는 주말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자녀를 키울 때도 힘들었던 육아를 환갑이 넘어서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체력적으로도 버거운데, 현대의 육아 방식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서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스마트폰 사용, 새로운 교육 방식, 달라진 육아 문화 등 배워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역할 이전에 한 명의 개인이다. 평생을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살아왔고, 이제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을 시작하고 싶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한다. 등산 동호회 활동을 하고 싶거나, 자원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그저 조용히 책을 읽으며 오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 해외여행을 꿈꾸는 이도 있고, 평생 미뤄뒀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욕망과 꿈은 손주 육아 앞에서 자꾸만 뒷전으로 밀린다. "자식이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어"라는 마음에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다시 한번 헌신의 시간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선택이 진심으로 기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다. 한국의 높은 보육비용, 부족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맞벌이 부부를 지원하는 시스템의 부재 등이 결국 조부모 세대에게 육아의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육아 지원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국가가 육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보육시설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육아휴직 제도도 잘 정비되어 있어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가족'이 육아의 1차 책임자로 여겨지고, 그 가족 안에서도 조부모, 특히 할머니들이 육아의 실질적 담당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여성에게 육아의 책임을 지우던 과거의 관습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것이다.


노년은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후에도 20~30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노년기는 자아실현의 시기가 될 수 있다. 직장 생활의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다.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고, 인생 경험도 풍부하여 더 깊이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다.


WHO도 '활동적 노화'를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참여, 자기 계발, 건강 관리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손주를 돌보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관계는 적절한 경계를 가질 때 가능하다.


성인 자녀들도 부모에게 육아를 전담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도움은 '감사해야 할 선물'이지 '당연한 의무'가 아니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봐주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들의 시간과 건강을 배려해야 한다.


일부 가정에서는 손주 육아에 대한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하기도 한다. 이것이 가족 간의 정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부모의 시간과 노동을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인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자신의 노년을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미안하지만 나도 내 삶을 살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손주 육아를 전부 거절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주되, 자신의 시간도 확보하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 2~3일만 손주를 돌보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협의할 수 있다. 또는 특정 시간대만 돕고, 저녁 시간이나 주말은 자신의 시간으로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전체가 변해야 한다. 정부는 보육 시설을 확충하고, 육아 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직장은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또한 노인을 위한 문화센터, 평생교육 시설, 여가 프로그램 등을 확대해야 한다. 이미 많은 지자체에서 노인 대학, 문화센터, 스포츠 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접근성과 프로그램의 다양성 면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특히 농촌이나 소도시의 노인들은 이러한 시설 자체가 부족하여 문화생활을 누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찾아가는 문화 서비스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노년은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황금기가 될 수 있다. 평생을 살아온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시기다. 이 시기를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할 권리가 모든 노인에게 있다.


손주 사랑과 자기 사랑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에게도 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은 그런 조부모를 보며 나이 들어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할머니도 하고 싶은 게 있어", "할아버지도 친구들이랑 여행 가고 싶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세대 간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노년의 삶은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축복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전에 '나'로 살 권리를 찾아야 할 때다. 당당하게, 행복하게, 자신답게 노년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노후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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