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수에 대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때
오늘도 나는 작은 실수를 했다. 옛 상사의 승진이 있었고, 축하 의미로 떡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유명 떡집에서 떡을 주문했고 사무실로 택배 배송을 시켰다. '직원들과 맛있게 드시겠지?' 이후의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채 혼자 뿌듯해했다.
배송이 이틀 정도 걸려서 꽁꽁 얼려서 배송해드렸다는 판매자의 설명을 듣고 뭔가 찜찜했다. 보통 사무실로 들어오는 축하 떡들은 항상 갓 만든 듯 따뜻했었는데... 그리고 깨달았다. 판매처에 따로 전화주문을 해서 일반 배송이 아닌 퀵배송을 요청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집에서 먹을 떡을 배송받는 것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바로 먹을 건데 어느 세월에 해동시켜 먹겠는가. 내 생각이 짧았다. 게다가 딴 것도 아니고 상사에게 보내는 축하 떡이었는데!
바보 같은 실수를 깨달은 이후로 땅파기의 연속이다. '난 왜 늘 이렇게 실수를 하나. 이런 자잘한 실수들 안 하고 살 순 없나. 이 나이 먹도록 배운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다른 직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책감들이 끊임없이 나를 좀먹는다. 급기야 지구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제발 이런 생각들 좀 안 하고 살 순 없을까. 단순하게 살고 싶다. 실수해도 당당하게 웃어넘기는 사람들처럼, 나도 조금은 뻔뻔해지고 유연해지고 싶다.
물론 이런 성격을 고치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넘치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운동이나 집안일 등 몸을 움직이는 일에 집중도 해봤고,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라며 그냥 흘려보내고 무시해보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실수에 대한 기억들은 내가 무방비한 때 일상의 작은 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유튜브로 정신과나 심리상담 선생님들의 조언도 들어보고, 인터넷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사례나 나름의 해결방법들도 찾아봤지만, 여전히 작은 실수 뒤 쓰나미처럼 나를 강타하는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인간이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지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강렬하고 집요하게 나를 괴롭혀야만 하냐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시도들이 다 수포로 돌아간 지금, 이제는 죄책감에 민감한 이런 나를 그냥 받아들이려고 한다. 물론 그때 그때 떨쳐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근본적인 성격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 나와의 타협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나의 실수만 기억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실수로 인해 받았던 자책과 상처까지 기억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러워질 수 있기를. 나처럼 너무 큰 죄책감에 괴로워하지 않도록, '그럴 수도 있지'라고 작은 일은 작은 일로 넘겨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죄책감이 나를 향한 채찍질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위로가 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죄책감을 정당화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