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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박 Jun 02. 2024

엄마의 외출

엄마는 80대 초반까지도 자가운전을 했다. 한 해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지고 병증이 나타나면서 운전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요즈음은 걷기도 쉽지 않아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 것도 큰일이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쉽게 피곤해지며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하니 여행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런 엄마가 기다리는 외출이 있다. 양지 삼촌댁에 가는 것이다. 몇 해 전 외숙모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삼촌은 엄마보다 다섯 살 아래인 동생이다. 숙모가 살아 계실 때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양지에 갔었다. 그때는 엄마도 건강해서 직접 운전해서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하루 자면서 텃밭 농사도 짓고 이야기도 나누며 놀다 왔다. 


10여 년 전에 삼촌은 엄마를 양지로 불렀다. 남편을 잃고 힘들어하는 엄마가 딴생각을 못하게 흙을 만지고 풀을 뽑도록 했다. 매주 양지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엄마는 점차 건강해졌다. 아빠를 간병하면서 15킬로 이상 체중이 빠졌던 엄마는 밭일을 하고 소출을 내는 건강한 생활을 하면서 생기를 얻었고 근력이 붙었다. 


그 시절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기억한다. 숙모가 엄마한테 참 잘했다. 엄마가 암진단을 받고 한참 아팠을 때 숙모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갔다. 그때 엄마가 슬퍼하며 말했다. 숙모에게 참 많이 의지했노라고. 

다른 외출은 힘들어하는 엄마가 유독 양지에 가는 것은 반긴다. 그곳에는 삼촌도 있고 숙모와의 추억도 있고 흙도 있고 꽃도 나무도 바람도 있다. 


올 초에 엄마가 입원하면서 나는 양지에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좋아하는 양지에 엄마가 다시 못 갈 수도 있겠구나 겁이 났다. 내가 바쁘고 힘들까 봐 양지에 가자는 소리를 못하는 엄마였다. 

삼촌은 혼자 살면서 정원을 가꾸는 멋진 할아버지다. 올해 요양등급 4등급을 받아 요양보호사가 매일 방문한다. 어지럼증이 심해 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꽃을 가꾸고 잡초를 뽑으며 열심히 살고 있다. 엄마와 나는 4월, 5월에 꽃구경을 갔었고 6월에 오디를 보러 갈 예정이다. 


작년 6월 양지 농막에서. 불과 1년 전인데 엄마는 허리도 꼿꼿하니 훨씬 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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