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로또 부부
(그러나 아직 대박 사건이 없음)
"저녁에는 생선구이 해놓을게요. 시간 맞춰 오삼"
퇴직 후, 취미생활로 수, 일요일마다 고교친구들과 정기적인 당구 모임을 갖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냄비 바닥에 싱싱한 무 조각을 놓고 그 위에 생선을 한 마리씩 눕혀 사이사이에 갖가지 양념을 바르고 자작하게 끓여 먹는 생선찌개를 좋아한다. 그러나 남편은 소금을 간간하게 쳐 두었다가 물기가 거의 말라 반건조된 생선을 깔끔하게 구워내는 구이를 좋아한다. 나는 생선찌개도 먹고 구이도 먹지만 남편은 오직 구이만 먹고 자기가 안 좋아하는 생선찌개에는 젓가락이 절대로 얼씬거리지 않는다. 방금 양념을 무쳐서 배추겉절이 같은 김치를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숙성된 김치를 좋아하는 남편이다. 과육이 단단한 복숭아, 샤인머스캣, 수박, 사과를 좋아하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약간 과육이 물렁한 복숭아를 좋아하고 보라색 포도만 좋아하고 단감, 귤, 참외, 배를 좋아한다. 직장 생활할 때 그러니까 남편이나 내가 둘 다 바쁘게 살 때는 좋은 것이 좋다고 남편에게 거의 다 맞추어 주었다. 그렇게 40년 다 되어가는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바닷가에서 살면서 우리 아이들도 회를 싫어하는 남편 입맛에 맞춘 나의 부엌 메뉴에 길들여져 회를 못 먹는다.
먹을거리는 그렇다 치고 일상생활 패턴도 비슷한 것조차 없다. 몸이 차서 여름을 좋아하는 남편과는 달리 열이 많아 여름이면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겨울만 오기를 기다리는 나, 그러다 보니 우리는 벌써부터 각방 생활이다. 일처리를 즉시 해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미루고 미루었다가 마지막날에 해내는 남편(그래도 실수한 적은 거의 없는 것이 이상하다), 기차 시간도 미리 30분 전 도착해서 기다리는 나와는 다르게 딱 맞추어 계산해서 도착하는 남편(이것도 기차 놓친 적은 없음), 월급이 얼마이고 통장 잔고가 얼마인지 완전 다 까발리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재정에 대하여 완전 소통불통이다(그래도 어차피 반반 내 거인데 하면서 정말 믿고 살았다). 그동안 아파트 관리비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생활비는 내가 다 지출하고 목돈이 들어가는 집안 경조사비는 남편이 부담했었으나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경조사는 다 끝나서 어느 날, 우리 함께 경제공동체를 구성하자고 하였더니 남편이 순간 화를 버럭 내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던 중에 TV를 보는데 어느 변호사가 말하고 있었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각각의 재정상태를 서로에게 다 밝힐 의무는 없지만 어느 한쪽이 불투명하게 하여 신뢰감을 무너뜨려 갈등이 생겨 가정생활 유지가 어렵게 되면 이혼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니 남편이 다음 달부터 생활비를 준다고 하였다(2024년 1월부터). 기대가 된다.
내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작은 이야기 조각들까지 남편에게 말하는 나와는 다르게 묻지 않으면 그냥 묵묵히 입을 닫고 있는 남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들과 둘레길 탐방을 하고 있는 나는 출발 이틀 전부터 미리 일정표를 줄줄 읊어댄다. 출발 시간에서부터 목적지를 비롯하여 점심 메뉴, 도착시간까지 남편에게 알려준다. 심지어 내가 말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시 말하면 알고 있다고 그만 이야기하라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대학친구들과 등산을 가면 바로 전 날 나에게 알려준다. 어디에 가는지 누구와 가는지 물으면 대답하고 안 물으면 그냥 간다. 이것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차이에서 오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적다 보니 진짜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정말 웃기는 것까지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학교 때 만나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연애를 하고 각자의 부모님께 부담 안 드리려고 둘의 각각 두 달간 월급을 모아 10평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내고 시작한 우리 결혼생활은 아들딸 낳고 별 탈없이 잘 유지해 왔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너무도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우리 둘이었는데도 싸운 적 없이 보고 싶어 하면서 연애하다가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파탄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점이 이상스럽다는 것이다.
집안의 장손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온 남편은 가부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이성적이라서 감정이 풍부하여 눈물이 많은 나에게 가끔 냉정할 때에는 서운해서 보기 싫을 때도 있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그 사람의 성향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다른 남편 성향을 파악하고부터 나는 ' 내 눈 내가 찔렀지"싶어서 내 자신 내가 책임을 져야지 싶었다. 그래 맞추어가며 살고 그러다가 남편이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면 지가 나에게 맞추어 주겠지 싶었다. 그런 날들이 반갑게도 요즘 퇴직하고부터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모임에서 내가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로또부부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모두가 정말 좋은 대박 사건이 터진 부부인 줄 알고 손뼉을 크게 쳐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종이 로또가 터지면 그야말로 대박이지만 로또가 잘 맞습니까? 하면서 되물으니 그때서야 이해를 하고는 모두 박장대소를 하면서 자기들도 똑같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모두 잘 안 맞지만 서로 맞추어가면서 파탄 안 내고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설거지라고는 모르던 남편이 자기가 먹은 그릇은 꼭 씻어서 건조기에 넣어두고 청소를 모르던 남편이 청소기를 돌려준다. 거기다가 세탁기 빨래가 다 되면 널어주기까지 한다. 마트에서 돌아오는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사 들고 온다. 여태껏 명품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고 생일날 남편 손으로 미역국 끓여 준 적이 없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힘없는 아내가 측은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살면서 여러 가지 아주 많이 다름에도 맞추어주며 살아 준 아내가 고마운 것인지 조금씩 달라져가는 남편이다.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
"내일모레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샤부샤부 먹으러 갈래? 내가 계산할게" 남편이 말한다.
"오카이" 그 말 다시 거두어들이기 전에 냉큼 대답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너무나 급하게 결정하고 쉽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깨트리는 것을 본다. 그리고 부잣집 여성이나 남성을 알게 되어 결혼을 하면 로또, 대박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려면 상대방과 나와의 다른 점을 당연히 이해해야 하고 서로 맞추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가 선택한 오름길 걷다가 힘들면 쉼이 기다리는 내리막길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의지가 필요하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한 가지라도 맞으면 감사하면서 그것에다가 초점을 맞추어 사는 것을 권장한다. 열이면 열 가지 어찌 다 맞겠는가? 이 세상 부부, 집집마다 문 열고 들여다보면 로또 부부가 어디 한 두 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