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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리 Feb 21. 2021

잘 빚은 캐릭터의 힘,
<철인왕후> 리뷰

드라마 리뷰 | tvN <철인왕후> (2020)

* 지극히 주관적인, 오로지 제 시선에서만 바라본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대한민국 대표 허세남 영혼이 깃들어 '저 세상 텐션'을 갖게 된 중전 김소용과 두 얼굴의 임금 철종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혼가출 스캔들


    <철인왕후>는 유머가 제대로 녹아든 드라마다. 대한민국에서 살던 남자가 조선시대 중전의 몸에 빙의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웃음이 나는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독의 센스와 작가의 유머가 담긴 장면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여러 유머 코드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캐릭터'다. 뚜렷한 사건 없이 '캐릭터 플레이'만으로도 1시간을 볼 수 있을 만큼 캐릭터의 힘이 대단하다. 개인적으로는 신원호 사단의 드라마(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시리즈)도 캐릭터 플레이에 굉장히 특화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철인왕후>도 그에 못지않게 캐릭터의 매력이 아주 강하다. 20부작이라는 꽤 긴 호흡의 드라마를 보고도 자꾸 캐릭터가 떠오른다면 말 다했다!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캐릭터


    <철인왕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개성이 뚜렷하지만, 역시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 '김소용(신혜선)'이다.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소용은 중전이 되기 위해 한 평생을 바쳐 노력하고 많은 것을 자제하며 살았다. 그런 소용의 몸에 허세 가득한 대한민국 남자 장봉환(최진혁)의 영혼이 들어가면서 소용은 180도 변한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것은 기본이고, 치마를 들어 올린 채 궁궐을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걸쭉한 욕이 입에 붙어 중전으로서 하면 안 되는 행동까지 서슴없이 한다. 


    사는 시대도, 성별도, 성격도 어디 하나 닮은 점 없는 두 사람의 괴리는 김소용이라는 캐릭터를 독보적으로 만들었다. 김소용과 비슷한 캐릭터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말 그대로 김소용은 유일무이하다.



    김소용(몸에 들어간 봉환)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좇는다. 신분 때문에 벌어지는 부정부패?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중전이라는 높은 직위를 즐긴다. 본인 때문에 타인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거? 어차피 봉환은 곧 자신의 진짜 몸을 찾아서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니 '오리지널 소용'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용이 화진(설인아)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나서는 때가 있다. 당연하게도 진실을 바로잡기 위한 정의 때문은 아니고, 그저 본인의 이상형인 화진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은 소용을 틀에 박히지 않은 캐릭터로 만들었다. 


    소용의 매력은 다른 조연 캐릭터와 붙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앞에서는 죽음이 무서워 벌벌 떠는 허수아비 왕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개혁을 준비하는 이성적이고 차가운 캐릭터, 철종(김정현)은 소용 앞에만 서면 은근히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케미를 돈독하게 만든다. 소용의 오른팔과도 같은 최상궁(차청화)과 홍연(채서은) 또한 항상 붙어 다니며 티키타카를 통해 웃긴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토록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에 비해 평면적인 캐릭터도 있었다. 바로 철종의 정인이자 후궁인 화진이다. 철종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중전은 되지 못한 화진은 철종이 소용에게 흔들리기 시작하자 왕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점점 흑화 하는 인물이다. 비중이 적지 않은 화진이라는 캐릭터가 판에 박혔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조선시대의 규율을 마음대로 깨버리는 대범한 소용으로 인해 화진에게도 변화가 생긴다든지, 화진도 소용에게 빠진다든지 하는 변주를 주어서 색다르게 만들어도 좋지 않았을까.


    Cf) 화진을 보면서 <백일의 낭군님>의 세자빈, 김소혜(한소희)가 떠올랐다. 세자(도경수)와 애정이 없는 쇼윈도 부부임에도 사랑을 갈구하거나 집착하지도 않았다. 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심 기뻐하기도 했으며 세자가 홍심(남지현)과 사랑을 하고 있는 걸 알고서도 흑화 하지 않았다. 사실 소혜도 세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을 사이에 둔 중전과 후궁의 삼각관계만 보다가 왕이 아닌 다른 남자, 그것도 살수를 좋아하는 세자빈이라는 캐릭터가 독특해서 기억에 남았다.






유머로 비튼 클리셰


    캐릭터가 독보적으로 매력이 있는 것에 비해 플롯은 상투적이다. 타임슬립이나 영혼 빙의는 이미 많이 소비된 설정인 데다가 소용이가 조선에 간 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다. 드라마를 끌고 나가는 주된 내용인 로맨스 서사와 권력 싸움이 굉장히 뻔하다. 


    소용에게 애정이 없고 정인이 따로 있는 철종. 왕은 화진을 후궁으로 앉히는데, 소용의 몸에 들어온 봉환과 엮이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이 때문에 벌어지는 소용-철종-화진의 삼각관계도 모두가 예상 가능한 전개다.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철종과 외척세력과의 싸움도 새롭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유머 코드로 클리셰들을 모두 비틀어버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음 화를 찾게 만든다.



    뻔해 보이는 로맨스 서사에 유머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냈다. 본체가 남자인 소용은 철종에게 한 톨의 관심도 없다. 오히려 철종의 곁을 지키는 화진에게 추파를 던진다. 그런데 철종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끌리기 시작하더니 하룻밤까지 같이 보내버린 사이가 됐다. 소용, 아니 봉환은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까지 한다. 한 마디로 이 로맨스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삼각관계가 아니라, 한 남자를 향한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다. 



    권력 싸움 또한 캐릭터의 웃긴 면을 강조하여 클리셰를 은근히 비튼다. 권력 싸움의 주축이 될 순원왕후(배종옥)와 조대비(조연희)의 캐릭터는 정말 신선했다. 노화를 피하기 위해 리프팅을 하는 순원왕후와 거침없이 19금이 섞인 말을 하는 조대비 캐릭터는 자칫 지루하게 만들 뻔한 상투적인 플롯의 단점을 가려 자꾸 다음 화를 찾게 만들었다.





피해 갈 수 없는 역사 왜곡 논란


    기상천외한 설정과 센스 있는 유머 코드로 무려 17.4%라는 최고 시청률을 찍으며 막을 내렸지만, 그 뒤에는 여러 가지 논란이 숨어 있었다. 먼저, 작가의 혐한 논란이다. <철인왕후>는 중국의 소설 <태자비승직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원작의 작가가 집필한 다른 작품 <화친 공주>에서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고 드라마 <대장금>의 OST를 조롱하듯 부르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작을 알고 있는 시청자는 <철인왕후> 방영 전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욱 논란이 된 건 '역사 왜곡' 문제였다. <철인왕후>는 정통 사극이 아니라 유머를 가미해 판타지와 사극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퓨전 사극을 지향하고 있는데, 과도하게 유머를 넣다 보니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지라시'라는 소용의 대사부터 왕에게 칼을 겨누는 의금부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했다.


    드라마 방영 중간에 설정이 수정되기도 했다. <철인왕후>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과장된 희화화가 실존인물들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논란 때문이다. 결국 안동 김 씨와 풍양 조 씨의 반발로 인해 드라마 방영 중에 가상의 가문 안송 김 씨와 풍안 조 씨로 수정했다.



    드라마는 웃음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정작 시청자는 이런 논란들 때문에 마음 놓고 웃을 수가 없었다. 웃음은 나는데, 그렇다고 웃자니 마음 한 편이 찝찝했다. 차라리 아예 가상의 왕과 가문으로 설정해서 허구의 측면을 강조했다면, 역사왜곡 논란엔 휩싸이지 않고 더욱 웃기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퓨전 사극을 기획하면서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김소용'을 닮은 캐릭터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온 캐릭터 중에서 그 누구와도 겹치지 않고 비슷할 수조차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진부한 플롯과 허술한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강력한 캐릭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주 잘 빚은 캐릭터가 얼마나 잘 먹힐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tvN <철인왕후>
2020.12.12~2021.02.14 / 20부작
최고 시청률 17.4%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STUDIO PLEX, 크레이브웍스 / 연출 윤성식, 장양호 / 극본 박계옥, 최아일

*티빙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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