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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리 Jan 07. 2021

이 드라마는 도대체 왜 입소문을 탔을까? <상견니>리뷰

드라마 리뷰 | 대만CTV <상견니> (2019)

* 지극히 주관적인, 오로지 제 시선에서만 바라본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 1998년으로 가게 된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별다른 드라마 홍보 없이 오직 입소문만으로 다른 나라까지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을까? 중국, 말레이시아, 홍콩,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까지 말 그대로 <상견니> 열풍이 불고 있다. (사실 이미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드라마를 다 본 후에도 드라마 해석을 검색하게 하고 배우를 찾아보게 하고 메이킹 영상을 보게 만든다. 이렇게 여운을 짙게 남기는 드라마는 오랜만이다. 도대체 왜 상견니는 입소문을 탔으며, 우리를 '상견니에 미친놈'으로 만드는 걸까?






로맨스+추리+스릴러, 장르의 복합


    요즘 드라마는 복합장르를 노린다. 하나의 장르로는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청자 연령층을 더욱 폭넓게 잡기 위해서 다양한 장르를 한 데 녹여낸다. 재작년 무려 23.8%의 시청률을 달성했던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도 복합장르 드라마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복합장르가 대세인 걸까? 대만 드라마 <상견니>에서도 복합장르가 눈에 띈다. 타임슬립을 통해 연인을 만나는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라 그 틈에 추리와 스릴러가 끼어 있다. 2019년 현재에서 1998년 과거로 타임슬립을 한 황위쉬안(가가연)은 천윈루의 몸속에 들어가 죽은 연인과 똑같이 생긴 리쯔웨이(허광한)를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윈루를 사이에 둔 리쯔웨이와 모쥔제(시백우)의 삼각관계 로맨스 플롯이 펼쳐진다. 타임슬립으로 맺어진 황위쉬안과 리쯔웨이의 인연은 2019년까지도 이어진다.


    운명적인 로맨스에 추리 플롯이 더해진다. 황위쉬안은 천윈루의 죽음을 막고 과거를 바꾸기 위해 범인을 찾는데, 그 과정에서 시청자도 범인을 궁금해하며 함께 추리하게 된다. 1999년 천윈루의 죽음은 2019년 리쯔웨이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시청자는 황위쉬안을 응원하며 범인을 찾는다. 드라마가 후반부로 치닫을수록 범인(안타고니스트)이 부각되고 스릴러 플롯이 눈에 띈다. 천윈루를 박제하려는 셰즈치의 계략이 밝혀지는데 황위쉬안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에 천윈루가 무사하길 기도하면서 숨 죽이고 드라마를 보게 된다.


     <상견니>의 포스터나 로그라인을 보면 타임슬립이 더해진 하이틴 로맨스물처럼 보인다. 하이틴 드라마는 등장인물이 10대이고 활동반경이 학교로 좁혀진다는 제약 때문에 참신한 이야기가 나오기 힘들다.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이기도 하며, 주 시청 타깃층이 10대~20대 초반 여성일 정도로 매우 좁다. 이러한 하이틴 로맨스물에 추리와 스릴러 플롯을 섞어 더 넓은 시청층으로 확장시킨 <상견니>의 똑똑한 전략이 돋보인다.







섬세하고 이유 있는 감정선


    <상견니>의 등장인물들은 감정 변화가 많은 편이다. 드라마가 전개되는 내내 등장인물의 감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예를 들어 리쯔웨이는 천윈루를 친구로만 생각하다가 황위쉬안이 천윈루의 몸에 들어온 이후에는 천윈루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천윈루를 향한 리쯔웨이의 마음이 변하면서 리쯔웨이와 모쥔제 사이에도 약간의 균열이 생겼다. 리쯔웨이의 오랜 친구인 모쥔제는 천윈루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리쯔웨이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에 따라 인물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 과정이 매우 섬세하고 자연스럽다. 마치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드라마 전개를 위해 억지로 짜 맞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렇듯 감정선이 섬세하고 시청자가 등장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리쯔웨이와 모쥔제가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서 외로움을 느끼던 리쯔웨이는 동생을 위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천윈루(몸에 들어간 황위쉬안)를 보고 마음을 키운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괴롭힘을 당했던 모쥔제는 자신과 똑같이 고립되어 살아가는 천윈루(진짜 천윈루)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를 좋아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리쯔웨이와 모쥔제가 천윈루에게 마음을 접는 순간에도 명확한 '이유'가 존재한다. 리쯔웨이는 천윈루(리쯔웨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황위쉬안 흉내를 내는 진짜 천윈루)가 비를 맞으며 불편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자 황위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다. 지난날, 빗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황위쉬안이 리쯔웨이의 마음속에 깊이 박혔기 때문이다. 모쥔제는 천윈루(몸에 들어간 황위쉬안)가 자신이 그린 낙서를 보고 박장대소를 하는 모습에 천윈루에 대한 마음을 접는다. 밝고 명랑한 황위쉬안은 모쥔제의 고독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굉장히 사소한, 어떻게 보면 별 일 아닌 사건이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와 만나 '개연성 있는 섬세한 감정선'을 만들어냈다.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가 잦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모두 이해할 수 있기에 더욱 몰입하여 드라마의 전개를 따라간다.


    두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드라마를 많이 봤다. 그들의 감정 변화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좋아한다'는 대사로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처리해버린다. 그럴 때마다 시청자는 어리둥절, 이유도 모른 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쟤네가 언제 사랑을 키웠지..?'라는 생각을 하며 점점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로맨스 드라마는 마치 '나의 사랑 이야기'인 것처럼 시청자를 설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감정선이 매우 중요하다. 시청자가 감정선에서 멀어지는 순간 로맨스 드라마는 '남의 사랑 이야기'로 전락하면서 흥미를 잃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상견니>는 리쯔웨이가 내 첫사랑이라고 착각을 할 만큼 '나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드라마였다.






사두용미 드라마


    용두사미, 어쩌면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를 두고 하는 말일지 모르겠다. 1~2회까지는 정말 재미있다가도 뒤로 갈수록 클리셰 범벅이 되고 힘이 빠져버린다. 그러나 <상견니>는 그 반대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드라마에 더 빠져들고, 다 본 후에는 여운이 진하게 남아 시청자를 중국어 OST까지 찾아 듣게 만드는 '상친놈'으로 만들어버린다. 수 십 년에 걸친 리쯔웨이와 황위쉬안의 운명적인 찐사랑을 보고 나면 한동안 상견니를 앓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바로 '사두'라는 점이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4회 이전까지의 <상견니>는 뻔하고 루즈하다. 우리가 이미 많이 소비한 타임슬립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첫 회는 '황위쉬안의 연인, 왕취안성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과거의 일 하나만 던져줄 뿐, 사건의 진전도 후킹 포인트도 없다. 50분 내내 연인을 잃은 황위쉬안의 슬픈 감정 상태만 반복된다.


     4회에  걸쳐 우울한 황위쉬안의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타임슬립 후의 황위쉬안 모습이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타임슬립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직면한 황위쉬안은 슬픔은 잠시 접어두고 천윈루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황위쉬안의 밝고 긍정적인 원래의 성격이 나타나는데, 시청자는 쾌활한 황위쉬안이 초면이라 당황스럽다. 더군다나 이 시점을 기준으로 드라마의 톤도 바뀐다. 이전에는 감성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의 톤이었다면, 타임슬립 이후에는 드라마 톤이 시트콤처럼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게 변한다.


    초반부에는 불필요한 씬도 많이 보인다. 황위쉬안이 힘들어하는 씬을 아무거나 하나 빼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 연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니까 초반부 감정 상태를 짧게 보여주고 메인플롯을 전개했다면 황위쉬안 성격의 차이와 드라마 톤의 괴리를 조금이라도 보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굉장한 '용미'다. 뒤로 갈수록 전개가 탄탄해지고 속도감이 빨라서 조금이라도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초반부에 뿌려둔 무수히 많은 복선과 떡밥을 깔끔하게 회수한다. 완성도 있는 짜임새에 안타까운 열린 결말이 더해지면서 여운을 남긴다.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여러 가지가 모두 합쳐져 내 취향에 맞으면 좋아하는 거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주관적인 기준인데도 <상견니>는 그 기준을 달성하고야 만다. 입소문이 날 만큼 많은 시청자의 취향을 저격했다. 여러 나라가 <상견니> 판권 구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과연 상견니가 갖고 있는 장점과 대만의 분위기를 잘 녹여내서 원작만큼 흥행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대만CTV <상견니>
2019.11.17~2020.02.16 / 21부작
연출 황천인 / 극본 간기봉, 임흔혜
*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티빙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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