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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Feb 26. 2021

남편은 육아휴직 중입니다

저도 육아휴직 중입니다


2020년 2월 둘째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남편은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첫째 딸아이는 세 살 무렵 한 살 어린 사촌동생을 만나고 온 부터 지속적으로 동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2년 6개월의 긴 독박 육아를 마치고 복직한 지 겨우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엄마로서가 아닌 나라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임신과 산을 반복하고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육아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나는 2년 6개월 동안 혼자라는 느낌을 수 없이 받았다.

 나는 그 외로운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딸의 요구가 계속되자 남편과 나는 고민에 빠졌다. 둘 다 찬성하거나 둘 다 반대하거나, 한 명씩 찬반을 왔다 갔다 하며 매일 밤 다른 결론을 내리길 반복했다.

결국 어디선가 가임기 임신 확률이 25% 라는 소리를 듣고 딱 네 번만 시도해보고 운명에 맡기자고 했는데..  마지막 네 번째에 정말로 둘째가 찾아왔다.

복직한 지 겨우 10개월 만이었다.


나는 기쁘면서도 불안하고 행복하면서도 암담했다. 

그래서 남편과 둘째 육아에 대해 미리 몇 가지 합의를 했다.


첫째, 분유 수유를 한다. 

(첫째 아이 출산 후 나는 모유 수유를 하느라 어깨에 병을 얻, 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도 팔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둘째, 밤에는 남편이 아기를 돌본다. 

(남편은 출근을 명분으로 단 하루도 밤에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아가 집이 떠나갈 듯 울어도 눈꺼풀 한 번 어보 않았다.)

셋째, 산후 도우미의 도움을 받는다. 

(조리원 2주와 일주일의 친정 엄마 찬스를 뺀 나머지 날들 동안 혼자 첫째 아이를 돌보느라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는 너무 황폐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2020년 2월부터 부부 동반 육아휴직이 가능하게 되었단 뉴스를 보고 우리 부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동반 휴직을 하게 되면 빚은 또 늘어나겠지만 남편이 둘째를 전담하여 돌보면 엄마 껌딱지인 첫째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라고 생각했다.


또한 남편은 남편대로 첫째 아이 육아에 '동참'이 아닌 '조력'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고 나는 나대로 독박 육아를 하며 남편에게 쌓인 분함이 있었다. 우리는 동반 휴직이 그 감정들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여겼다.



남들이 생각할 땐 저 정도 고생 안 하고 애 키우는 엄마가 어디 있겠냐고 하겠지만, 그러니까 "왜! 엄마만 저 정도 고생하며 애를 키워야 되는가"가 우리 부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즈음 나도 남편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오는 순간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역할에 갇혀버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 모순과 부당함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누 있었기 때문이다.


복직 준비를 할 때 우연히 읽게 된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된 후 내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 / 민음사 / 2017


 "만약 육아를 동등하게 분담했다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거야. 네가 화가 나지 않을 테니까. 진정한 평등이 있는 곳에는 분노가 존재하지 않아."
(「엄마는 페미니스트」 p.23)


 문장을 읽던 때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공감을 넘어서는 일체감,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그 순간 이후, 나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남편 역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나에게 일어난 변화도 깊이 공감해주었다. 결국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부부의 삶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고 둘째 아이를 남편이 도맡아 키워보기로 하여 동반 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르기에 우리는 여러 지점들에서 서로 다르게 느끼는 온도차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상을 페미니즘으로 읽어내면 할 말은 무수히 많았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할 이야기는 산처럼 쌓였다.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는 거의 같은 온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함께하는 경험은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데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동반 육아 휴직이 아니었다면 우리 부부는 지금의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혼자 하는 경험은 기억이고 함께하는 경험은 추억이라 했던가. 첫째 아이를 키운 2년 6개월은 나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았지만, 둘째 아이를 키운 1년은 우리 부부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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