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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r 13. 2021

남편이 둘째와 자기 시작했다

둘째를 아빠 품 안에



작년 2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1시간 만에 의사가 와서 말하길, 해당 산부인과를 퇴원한 아기 중에 호흡기세포융합 바이러스(RSV) 감염 아기가 있어서 당일부터 신생아실을 폐쇄한다고 하였다. 그날 오전에도 병원에 내원했었기에 그 이야기를 출산한 뒤 저녁에 알렸다는 것이 내심 찜찜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국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이 아닌 분만 한쪽에서 이틀을 지냈고, 덩달아 산후조리원도 폐쇄한다는 소식에 아기는 출생 65시간 만에 집으로 오게 되었다. 


나 역시 온전치 못한 몸으로 퇴원하여 바로 첫째의 수발을 들어야 될 형편이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급하게 산후도우미분을 모셔서 2주간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남편은 산후도우미분께아기 돌보는 법을 유심히 보며 배우려 애썼다.


아기는 열 달 동안과는 너무 다른 낯선 환경이라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흔히 말하는 영아산통 때문에 특정 시간 (저녁 8시~10시)만 되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첫째 아이에 비하면 약과였지만 남편은 안고 있어도 집이 떠나가라 울기만 하는 아기 때문에 하루 만에 충격에 빠진 듯했다. 남편은 안절부절못하고 물었다.


"왜 그러지?"
"원래 그래"


나는 '이제야 알겠니?'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걱정의 내색을 감춘 채 대수롭지 않은 듯 거실로 나와 첫째를 재우러 갔다.






밤 10시가 지나서야 나온 남편이 나에게 건넨  첫마디.


미안해... 미안했어.


남편은 지난 4년 전 일을 이제야 사과했다. 물론 그때도 미안하다고 자주 말했었지만, 스스로의 깨달음이 있는  지금의 사과가 나에겐 마치 처음 하는 사과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역지사지로 생각 한다한들,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첫째 때 느꼈던 감정들을 이제 남편이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어디 한 번 고생 좀 해봐라'하는 속 좁은 마음과 '이 서로의 삶을 진짜 이해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남편은 이제야 육아의 문턱을 넘는 중이어서 여러 실수가 잦았다. 산후도우미님이 퇴근하신 첫날 남편이 아기 기저귀를 간다기에 가보니 밴드형 기저귀를 팬티형처럼 입히고 있는 게 아닌가?(일부러 그렇게 하기도 어려울 듯) 

남편은 첫째가 팬티 기저귀를 차던 기억만 남있었나 보다. 가장 기본인 기저귀 갈기부터 이런데, 앞으로 시시콜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산후조리는 왠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 배냇저고리 묶는 것도 속싸개 하는 것도 몇 번이나 가르쳐줘도 이상하게 해 놓는 솜씨란...


그나마 분유 타는 법은 아예 크게 적어서 분유통 옆에 붙여두어서 수월히 이루어졌으나, 문제는 분유를 먹이는 데 있었다. 신생아들은 먹다가 자버리기 때문에 깨우면서 먹여야 한다. 둘째는 잠이 많은 편인지 분유 40ml를 먹는데 20분은 족히 걸렸다. 양이 늘어 60~80ml를 먹게 되었을 때도 잠드는 일이 많아서 40~50분 걸리는 적도 많았다. 그 길고 무료한 시간에 남편이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은 역시 잠이었다.


낮 시간 수유 텀에 아기를 얼르고 깨우는 소리가 안 나서 가보면 젖병은 기울어져 아기가 빨지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졸고 있었다.(물론 둘째도 같이 자고 있고) 양이 늘어날수록 조는 시간과 횟수도 늘어났다. 

심지어 아기를 안고 트림시키거나 재우면서도 조는 남편이 아기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나는 늘 노심초사였다.


밤 중 수유는 더 문제였다. 처음 2주간은 아기가 초저녁에 심하게 울어서 일찍부터 기진맥진한 남편이 새벽에 아기 울음소리를 빨리 듣지 못했다. 다른 방에 있는 내가 가서 남편을 깨우고 분유를 타서 젖병을 넘겨주고 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2주가 지난 뒤 둘째는 놀랍게도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그러자 남편은 아예 수유 텀을 놓치고 아기와 같이 아침까지 자버리 지경이 되었다. 한 달도 안 된 아는 아빠에게 밥도 못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고.


남편이 자책 끝에 찾은 해결책은 넷플릭스였다.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남편은 아기가 분유를 5분 만에 먹게 된 8~9개월이 되기 전까지 수유 시간을 이용해 수 편의 드라마를 완주했다. 드라마를 보느라 졸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수유가 끝나도 트림시키기를 명분으로 1시간씩 방에서 나오지 않고 드라마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선 자신이 본 드라마 이야기를 육퇴 후 맥주 안주 삼아 신나게 해 주었다. 어쨌든 넷플릭스 덕택에 남편은 졸음의 늪에서 헤어. (이렇게 쉬운 해결책이라니 조금은 허탈했지만)






하루 8번의 수유와 재우기의 시간 동안 아빠 품에 안겨 산 둘째는 아빠 껌딱지가 되었다. 졸릴 때는 무조건 아빠가 안아야만 잠을 잤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낯을 가려 울다가도 아빠만 보이면 금세 방긋 웃었다. 밤 시간에 피곤한 남편을 대신해 내가 재우려 하면 더욱 심하게 울었는데 그러면 남편은 "애기 나 줘"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남편은 이런 상황을 매우 흡족해했다. 자신에게 딱 붙어 엄마가 오라고 해도 아빠 옷깃을 꽉 쥔 채 가지 않는 둘째를 보며 정말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남편은 자기만을 필요로 하는 작은 존재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았고 그 결과, 밤에 아기가 뒤척이기만 해도 바로 일어나 아기를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둘째는 자기를 돌보아주는 아빠를 신뢰하고 그 신뢰를 받 아빠 더욱더 아기에게 사랑을 쏟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크나큰 변화다. 편에게 그렇게도 들리지 않던 그 소리 이제 천둥처럼 들리기라도 하는 걸까.

https://brunch.co.kr/@skysea1620/24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통념은 완전 거짓이다. 여자에게 모성애가 애초에 탑재된 것처럼 말하는 것도 거짓이다. 아기는 그냥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의지하고 전부를 내맡긴다. 그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는 정작 그 아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엄마가 애 키우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걸까. 모성애든 부성애든 아기를 직접 키워봐야 생기고 커지는 것인데.


아빠 껌딱지가 된 둘째를 보니 남편의 육아휴직은 성공적인 것 같다. 남편은 아이를 잠시라도 울리고 싶지 않아 한 팔로 안고 집안일도 하고 심지어 볼일도 본다. 그러면 나는 보다 못해 경험자로서 무심히 말한다.

"좀 울려도 돼."

하지만  안 가 또 둘째를 안고 있는 남편을 보며

육아에 필요한 건 결코 '엄마'가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과 사랑'임을 확신한다.


남편이 둘째와 자기로 한 과정은 아래 글에...

https://brunch.co.kr/@skysea1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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