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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r 11. 2021

남편에게는 안 들리는 그 소리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4년 첫째 아이가 생후 17일에 집에 온 날부터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명분으로 거실에서 잤다. 그리고 일주일 넘게 밤마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도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반면 나는 밤마다 우는 아기를 달래고 젖을 물리고 다시 우는 아기를 달래는 무한반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기는 집이 낯설어서, 젖을 못 빨아서, 먹은 젖이 역류해서, 금세 배가 고파서, 기저귀가 찝찝해서, 이유 없는 영아산통 때문에도 밤새 울었다. 


남편은 다음날 아침에야 방문을 열고 "잘 잤어?"라고 묻곤 했는데 남편의 그런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내 안의 폭력성이 자꾸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무서웠다.

나는 어차피 밤사이 일을 설명할 기력도 없거니와 말해도 알아들을 리 없는 것을 알기에 입을 다무는 날이 많았다.  


2주가 지나 아기와 한 방에 같이 자게 되었을 때도 남편은 밤에 일어나는 모든 일(수유, 트림시키기, 달래기, 재우기)에 관여하지 않았다. 

아니, 남편은 아기 우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에...... 그 소리가 안 들린다고?





어느 날, 남편과 크게 다투고 거실에서 자겠다며 아기를 재우고 나온 나는 아기가 울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선잠을 자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그러다 새벽에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고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5분도 되지 않아 남편이 아기를 안고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말로 소름! 뭐지? 들리는 건가? 들렸던 거네? 

기가 차서 다음 날 물어보니 자신이 아기를 돌봐야 된다고 생각했더니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은 자신이 아기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건가? 왜지? 아빠잖아? ('아빠라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반성하시길.) 

그동안 남편이 울음소리를 정말 못 들은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남편에 대한 미운 감정은 배가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도 남편은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들으려 하지 않았거나, 들려도 '알아서 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다시 잤거나. 아마 그랬을 것이다.


심지어 아가 며칠을 고열에 시달려 아플 때조차 체온 측정을 알리는 알람 소리도 듣지 못했다. 며칠을 제대로 못 잔 나에게 "오늘은 내가 밤에 아기를 볼 테니 걱정 말고 자"라고 해놓고 알람이 울리건 말건 코를 골고 있었다.


정작 나는 쉬이 잠을 못 들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체온계를 들고 대기 중이었는데. 결국 언젠가부터 나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밤에 남편과 함께 아이를 돌보는 일을.



잠이 많고 깊이 자는 편이라 그렇다고 이해하려 노력해 보아도 '사실 남편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비단 밤 시간 육아만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본인에게 필요한 건 엄청나게 잘 기억하는데 유독 집안일이나 육아에 있어서는 열 번을 가르쳐줘도 잘 기억하지 못했고 자주 실수했다.


나는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를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 나는 지쳐갔고 서운했고 화가 났다.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까지 화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자주 다퉜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첫째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의 시간은 그야말로 우리 부부의 전투기였다.



             

                그러던 남편이 둘째 아이와 자기 시작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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