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복직 한 달 전부터 곧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며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했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지난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데에나 역시 동감했다.
그래도 1년 사이에 3.51kg으로 태어났던 둘째가 이제 어엿한 10kg이 되었고 잘 걷고, 밥과 반찬을 먹는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잘해왔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남편이 복직이 두려운 만큼 나도 독박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의 모든 관절이 일제히 알려주었다. '독박 육아가 시작되었다!' 손목, 어깨, 무릎을 비롯 허리까지 다시 아프기 시작하는데 3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 발을 다친 첫째 아이를 업고 둘째의 유아차를 밀며 하원 시키던 날 이후, 등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려니 했는데 3일째 되는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등이 아픈 경험은 처음이었다. 앉아도 일어나도 누워도 아팠다. 숨만 쉬어도 아팠다.
결국 일요일 오전, 간신히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았다.그 후로도 종종 등이 아프다. 이제 만성통증을 일으키는 몸의 부위가 한 군데 더 늘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독박 육아는 첫째 때 2년 6개월이나 해보았는데도 다시 혼자 육아를 하는 시간이 너무낯설다.아마 지난 1년간 남편과 하루 종일 지내다가 혼자가 되니 더 허전하고 지루한 것 같다. 게다가 부실한 점심 식사도 약간의 우울감을 더한다.
남편이 휴직인 동안, 점심 메뉴는 늘 다양했고 커피도 곁들이는 여유로운 식사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 미리 만들어 놓은 김치찌개나 마파두부 양념에대충 밥을 비벼 한 그릇 식사를 한다. 그것조차도 서서 먹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10분이 채 안 걸리는 식사를 하는 나와 달리, 요새 이유식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한 둘째는 40~50분씩 밥을 먹는다.아이 밥 먹이다 하루가 다 가는 기분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퇴근 후 지쳐 돌아오지만, 그래도 첫째 때와 달리 퇴근 후 가사와 육아에 열심히 동참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이 저녁을 먹이던 남편은 꽤나 고전 중이었는데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회사 다니는 게 덜 힘든 거 같아."
복직 전, 자기는 육아가 더 낫다며 복직 생각에 괴로워하던 남편이었는데, 몇 주만에 회사가 더 낫다니. 옛말에도 '애보느니 나가서 밭맨다'라고 했던가. 나는 밭매러 가려면 아직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나도, 밭매고 싶다...
아침에 첫째 아이 등원시키고 둘째와 한참을 놀아도 시계를 보면 겨우 10시라 좌절하고 만다. 처음 며칠은 너무 심심해서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실시간으로 말을 걸었지만, 아무래도 방해가 될 것 같아 이제가족 단톡 방에 주저리주저리 혼잣말을 한다. 답장은 안 해도 된다는 처연한 말과 함께.
어른 사람과 이야기가 그리워 팟캐스트를 좀 들어보려 해도 엄마 귀에 꽂힌 블루투스 이어폰은 빼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때문에 그 또한 쉽지 않다. 결국 스피커로 동요를 틀어놓는데, 뮤직 앱 이용권 없이 1분 미리 듣기만 해도 동요는 짧아서 거의 다 들을 수 있다는 게 위로라면 위로랄까.
그러나 막상기다리던 남편이 와서 대화 좀 하려 하면 그전까지 주로 '멍멍, 냐옹, 짹짹, 꿀꿀' 같은 의성어로 아이와 이야기해서 인지 문장으로 말이 잘 안 나온다는 슬픈 사실.
남편이 복직 후 달라진 건 우리 부부만이 아니었다. 둘째를 데리고 첫째를 하원 시킨 뒤. 놀이터에있으면 남편이 퇴근 해 놀이터로 바로 온다.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는 아빠와 달리 둘째는 내 가랑이 사이에 몸을 파묻고, '아빠, 저리 가.'라는듯 팔을 매우 휘젓는다. 때로 엄청 크게 울기도 한다.
아빠 껌딱지이던 둘째가 남편 복직 1주일도 안돼 보인 이런 모습에 남편은 배신감에 슬퍼하고, 나는 둘째도 엄마 껌딱지가 될까 봐 두렵다.나에겐 이미 큰 껌딱지하나가 붙어있어서 더 이상은 곤란한데.
그래서 일부러 남편 퇴근 후나 주말엔 둘째가 아빠와 시간을 보내게 하고, 나는 첫째를 데리고 나간다. 동생 때문에 늘 힘들어하는 첫째 마음도 달래줄 수 있어 서로서로좋은 일이다.
처음 남편이 육아휴직을 시작했을 때는 '어디 한 번 고생 좀 해봐라'라는 못된 심보가 컸는데 1년 동안 둘째를 잘 키워준 남편이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잘하는 것과 별개로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1년이었다.
남편은 인생 첫 육아휴직 동안육아의 지난한 과정과 끝없는 집안일을 체화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덕분에 스스로에게도 부부관계에도, 아이들과의 관계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그렇다. 결혼 후, 양가 문제와 첫째 아이 육아로 늘 다투며 서로에게 날이 서있던 우리는 이제야 둥그스름해졌다. 때로는 너무 차갑고 때로는 너무 뜨거워 서로 상처를 주던 우리가 서로의 온도를 느끼고 맞춰가며 상처를 보듬어주게 되었다.
코로나 19의 해에 행복했다고 말하는 게 너무 조심스럽지만, 감히 말할 수 있다면 나의 결혼 생활 중 지난 2020년이 가장 행복한 1년이었다.
남편은 복직 후 휴직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육아휴직을 하셨었다니 대단하세요. 훌륭하시네요." 같은 소리를 여전히 듣고 다닌다. 1년 더 휴직 예정인 '엄마'에 대한 칭찬은 당연히 없다.
대신 남편이 퇴근 후 늘 나를 보며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것에 만족한다. 2020년 이전의 "고생했다"와 지금의 "고생했다"는 너무도 다른 결을 품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된 독박 육아가 힘들지만, 더 이상 육아로 인한 고립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온몸의 관절들이 아프다고 소리치지만, 불같던 마음은 고요해졌다. 10분 만에 먹는 한 그릇 밥이지만, 남편의 손맛이 느껴져 서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