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유선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더 나아가선 한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습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요. 대신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왜 그러는가' 그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예지 p.50)
하지만 아시아 여자인 것이 나의 모습이고, 그게 나인데 내가 뭘 어쩌겠어요. 나의 진짜 모습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무시하기로 결심한 이유예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로 한 거죠.(예지 p.51)
때때로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모습에 내가 틀린 건가? 하고 의문을 갖기도 했고,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 주지 않을까, 일이 더 잘 풀리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거든요. 헌데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구나 하고 납득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 거죠. 그러면서 편해졌어요. 내가 나대로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이주영 p.192)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평생 남의 눈으로 나를 보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회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기 마련인데 사회의 시선이라는 것이 가부장제, 남성의 시선이니까요. 두 눈을 뺐다 다시 넣지 않는 이상… 내가 진짜 내 시선으로 나를 보는 순간이 있기나 했나 싶거든요. 너무 공기처럼 숨 쉬는 가부장제였으니까요.(이슬아 p.308)
'너를 진짜로 상처 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최종적으로 네가 너를 상처 내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그 말을 한 건데 저 역시 저에 대해서 그렇게 믿고 싶거든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상처로 만들지 않을 힘이 나에게 있다고 말이에요. 회복의 힘이 내게 있으니까. 일단 잘 살아보고 싶어요.(이슬아 p.319)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이슬아, 「심신단련」 중)
"그냥……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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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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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p.380~381)
변화는 다양한 형태의 물결로,
모양으로, 크기로 올 거예요.
변화들이 더 큰 변화를 이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변화를 지속시킬 열쇠라고 생각해요.
(예지 p.5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