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지만 말고, 돌을 던지자!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유선애

by 김우진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읽었을 때,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를 보았을 때,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척 반갑고 대단해 보여 부러운 마음이 퐁퐁 샘솟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다음 세대인 90년대생 여성들의 이야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온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은 각 분야의 90년대생 여성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진솔하고 사려 깊고 그러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그들의 이야기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예지'라는 DJ 겸 프로듀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뮤지션이다. 아시아 여성이라는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외적 조건을 가진 채 뮤지션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생각들이 잘 드러난 인터뷰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더 나아가선 한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습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요. 대신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왜 그러는가' 그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예지 p.50)



한국 사회에서도 성별, 학벌, 직업, 경제력 등을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차별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누군가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과 규범에 의해 차별받아 것이라면 우린 그것에 따르거나 맞출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예지는 그런 질문과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을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아시아 여자인 것이 나의 모습이고, 그게 나인데 내가 뭘 어쩌겠어요. 나의 진짜 모습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무시하기로 결심한 이유예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로 한 거죠.(예지 p.51)



비슷한 맥락으로 배우 이주영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때때로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모습에 내가 틀린 건가? 하고 의문을 갖기도 했고,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 주지 않을까, 일이 더 잘 풀리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거든요. 헌데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구나 하고 납득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 거죠. 그러면서 편해졌어요. 내가 나대로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이주영 p.192)



나 역시 그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기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 '여자'가 되기 위해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의식도 못하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여자'로서의 차림과 말과 행동들. 그렇기에 이슬아의 말을 듣고 격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평생 남의 눈으로 나를 보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회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기 마련인데 사회의 시선이라는 것이 가부장제, 남성의 시선이니까요. 두 눈을 뺐다 다시 넣지 않는 이상… 내가 진짜 내 시선으로 나를 보는 순간이 있기나 했나 싶거든요. 너무 공기처럼 숨 쉬는 가부장제였으니까요.(이슬아 p.308)



사회가, 특히 '남자'들이 규정하고 요구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삶은 헛된 기준 때문에 상처 받지도, 상처 받을 필요도 없는 단단한 삶일 거라 생각해본다.


'너를 진짜로 상처 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최종적으로 네가 너를 상처 내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그 말을 한 건데 저 역시 저에 대해서 그렇게 믿고 싶거든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상처로 만들지 않을 힘이 나에게 있다고 말이에요. 회복의 힘이 내게 있으니까. 일단 잘 살아보고 싶어요.(이슬아 p.319)



우리가 받는 상처들의 대부분은 남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 놓은 잣대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상처를 상처로 만들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나를, 우리를 다시 일으켜줄 힘이 있다고 믿는다.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이슬아, 「심신단련」 중)







2016년 이후 많은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은 갑자기 여성들의 능력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감춰져야 했던, 혹은 가려져왔던 좋은 작가와 작품들이 이제야 세상 밖으로 더 많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흐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예를 들어 나혜석 선생님 비롯...) 노력해 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문득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냥……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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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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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p.380~381)



수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또 주워 던지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던질 돌 하나가 누군가에게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서 돌을 던지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소한 개인이지만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끊임없이 돌을 던지며 기꺼이 징검다리가 되어야겠다. 비록 무명의 한 인간일지라도.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라고 묻던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지구가 돈다는 걸 느껴?" 지구의 자전은 느낄 수 없지만 항상 돌고 있듯이, 내가 사는 동안 세상이 급변하진 않아도 세대를 지날수록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사는 동안 미비하게 느껴지는 변화들이 다음 세대에게는 큰 변화가 될 것이다. 이전 세대의 노력으로 지금의 내 삶이 변화한 것처럼.



변화는 다양한 형태의 물결로,
모양으로, 크기로 올 거예요.
변화들이 더 큰 변화를 이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변화를 지속시킬 열쇠라고 생각해요.
(예지 p.55~56)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90년대생 그들이 몹시 부러웠다. 아마 그다음 세대의 행보는 더욱 멋져서 아주 몹시 부러워지겠지.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은 부러워하지만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돌을 던지는 것이다.

다음 세대들을 위해 열심히 열심히 돌을 던지자!

아주 작은 돌이라도, 아주 짧은 거리라도.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유선애 / 한겨레출판사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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