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전, 1921년 엄마의 삶도 똑같았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4부 모성과 육아(1)

by 김우진



우연히 SNS에서 살롱드마고 라는 북카페를 알게 되었다. 먼 곳이라 가볼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진행되는 독서모임에 선정된 책들을 눈여겨보며 멀리서나마 같이 책을 읽고 있다. 물론 내가 너무 게을러서 그 모임의 진행 속도를 따라가고 있지는 못하지만 양서를 소개해주는 살롱드마고에 항상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 책도 그곳의 4월 #월간서가 공지를 통해 4부 '모성과 육아'부분을 읽게 된 것이다. 1923년 그녀가 엄마로서의 삶을 적은 글은 마치 지금 시대의 엄마가 썼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책장을 덮으며 1920년대의 엄마 나혜석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혜석 선생에 대해서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며 가정사 고백으로 화제가 되었다는 것 정도밖에 몰랐는데 실제 그녀의 글을 읽어보니 왜 그녀가 페미니스트의 기수인지 알 수 있었다. 4부 '모성과 육아'에는 총 세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번째 글이 '모(母) 된 감상기'이다.


글의 첫 장부터 나를 사로잡는 통에 친구들에게 책을 공유해준 시간을 빼고는 단숨에 읽어 내려간 그녀의 육아기.





이러한 심야 아까처럼 만사를 잊고 곤한 춘몽에 잠겼을 때 돌연히 옆으로 잠잠한 밤을 깨뜨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벼락같이 난다. 이때에 나의 영혼은 꽃밭에서 동무들과 끊임없이 웃어 가며 '평화'의 노래를 부르다가 참혹히 쫓겨났다. 나는 벌써 만 1개년간을 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에 이러한 곤경을 당하여 오므로 이렇게 "으아." 하는 첫소리가 들리자 "아이고, 또." 하는 말이 부지불각중에 나오며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어서 속히 면하려고 신식 차려 정하는 규칙도 집어치우고 젖을 대 주었다. 유아는 몇 모금 꿀떡꿀떡 넘기다가 젖꼭지를 스르르 놓고 쌕쌕하며 깊이 잠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시원해져 돌아누우나 나의 잠은 벌써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 인도)으로 속거천리(速去千里)하였다.〔속히 멀리 갔다.〕
p.235


글의 첫 장을 읽으며 내가 첫째 키울 때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듯하여 놀랐는데, 특히 '이맛살이 찌푸려졌다'라는 평범한 문장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나 역시 갓난아기에게 이맛살을 찌푸렸던 것에 대한 모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떨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 년 전 엄마들도 그랬구나'하며.






실로 나는 재릿재릿하고 부르르 떨리며 달고 열나는 소위 사랑의 꿈은 꾸고 있을지언정 그 생활에 사장(私藏)된〔사사로이 간직한.〕 반찬 걱정, 옷 걱정, 쌀 걱정, 나무 걱정, 더럽고 게으르고 속이기 좋아하는 하인과의 싸움으로부터 접객에 대한 범절, 친척에 대한 의리, 일언일동이 모두 남을 위하여 살아야 할 소위 가정이라는 것이 있는 줄 뉘가 알았겠으며, 더구나 빨아 댈 새 없이 적셔 내놓은 기저귀며, 주야 불문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깨깨 우는 소위 자식이라는 것이 생기어 내 몸이 쇠약해지고, 내 정신이 혼미하여져서 "내 평생 소원은 잠이나 실컷 자 보았으면." 하게 될 줄이야 뉘라서 상상이나 하였으랴!
p. 236


결혼을 하고 싶었을 때 상상했던 결혼 생활과 실제 결혼 생활이 너무 달랐던 날들, 아기를 임신했을 때 상상해보던 아름다운 장면들은 온데간데없고 출산 후 아이 젖 주고 기저귀 가는 데 온통 하루를 쓰던 날들, 이 모든 시간들이 나혜석의 글에 압축되어 있는 듯하다.


'일언일동이 모두 남을 위하여 살아야 할 소위 가정이라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우리 사회가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강조하느라 그것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누군가를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각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누구도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은희경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문장이 있다.


서로 사이가 좋아서 가족이 행복한 게 아니라, 각기 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가족이 사이가 좋아지는 법이야.(p.213)


가정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 희생한다면, 특히 확률적으로 그 누군가가 엄마임이 높을 지금 사회에서 (백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놀랍고 씁쓸하지만) 그런 가정을 진짜 행복한 가정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달 29일 오전 2시 25분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갖은 병 앓아보던 아픔에 비할 수 없는 고통을 근 10여 시간 겪어 거진 기진하였을 때 이 세상이 무슨 그다지 볼 만한 곳인지 구태여 기어이 나와서 "으앙으앙" 울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몇 번이나 울었는지, 산파가 어떻게 하며, 간호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도무지 모르고 시원한 것보다 아팠던 것보다 무슨 까닭 없이 대성통곡하였다. 다만 서러울 뿐이고 원통할 따름이었다. 그 후는 병원 침상에서 스케치북에 이렇게 쓴 것이 있다.
p.250~251


아프데 아파
참 아파요 진정
과연 아픕데
푹푹 쑤신다 할까
씨리씨리다 할까
딱딱 걸린다 할까
쿡쿡 찌른다 할까
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찌르르 저리다 할까
깜짝깜짝 따갑다 할까
이렇게나 아프다나 할까
아니다 이도 아니라.

박박 뼈를 긁는 듯
쫙쫙 살을 찢는 듯
빠짝빠짝 힘줄을 옥죄는 듯
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오장이 뒤집혀 쏟아지는 듯
도끼로 머리를 바수는 듯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다 이도 또한 아니라.

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높은 하늘 낮아지며
낮은 땅 높아진다
벽도 없이 문도 없이
통하여 광야 되고
그 안에 있는 물건
쌩쌩 돌아가는
어쩌면 있는 듯
어쩌면 없는 듯
어느덧 맴돌다가
갖은 빛 찬란하게
그리도 곱던 색에
매몰히 씌워 주는
검은 장막 가리우니
이내 작은 몸
공중에 떠 있는 듯
구석에 끼여 있는 듯
침상 아래 눌려 있는 듯
오그라졌다 퍼졌다
땀 흘렀다 으스스 추었다
그리도 괴롭던가!
그다지도 아프던가!

차라리
펄펄 뛰게 아프거나
쾅쾅 부딪게 아프거나
끔벅끔벅 기절하듯 아프거나
했으면
무어라 그다지
10분간에 한 번
5분간에 한 번
금세 목숨이 끊일 듯이나
그렇게 이상히 아프다가
흐리던 날 햇빛 나듯
반짝 정신 상쾌하며
언제나 아팠는 듯
무어라 그렇게
갖은 양념 가하는지
맛있게도 아파야라.

어머님 나 죽겠소,
여보 그대 나 살려 주오
내 심히 애걸하니
옆에 팔짱끼고 섰던 부군
"참으시오."하는 말에
"이놈아 듣기 싫다."
내 악 쓰고 통곡하니
이내 몸 어이타가
이다지 되었던고.

- 1921년 5월 8일 「산욕(産褥)」중에서

p.251~254



첫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수많은 출산 후기를 찾아 읽었지만 이토록 적확한 후기는 처음이었다. 출산의 고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거니와 그에 맞는 단어를 찾아내기도 어려운데, 나혜석 선생의 글은 나를 출산하던 그 상황으로 다시 데려다 놓았다. (너무 생생하고 실감 나는 글이라 전문을 싣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는 이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 했건만, 둘째를 낳느라 또다시 저 고통 속에 들었으니 누굴 탓하랴. 다만, "참으시오." 하는 남편이 아닌 것에 족할 뿐.


몇 년 전 모 스포츠 선수가 아내가 출산할 당시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라고 했다는 일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나혜석 선생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이놈아 듣기 싫다." 하셨겠지.


나 역시 때를 놓쳐 무통주사를 맞지 못했을 뿐, 맞을 수 있다면 맞았을 것이다. 그 주사를 맞기 전후의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괴롭기 때문이다. 이러니 남자가 출산을 하는 몸이었다면 임신, 출산에 관한 의료기술이 훨씬 더 발전했을 거라는 세간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혜석 선생은 출산 후 아이를 기르며 느낀 감정들을 계속해서 솔직하고 과감 없이 서술하는데, 급기야 자식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게 된다.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나혜석 저 / 장영은 편/ 민음사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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