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4부 모성과 육아(2)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다.
-뮤리얼 루카이저, 「케테 콜비츠」
나는 어쩐지 몹시 선뜻했다. 냉수를 등에다 쭉 끼치는 듯하였다. 나를 낳고 기른 부모도, 또 골육을 같이 한 형제도, 죽자사자하던 친구도 아직 내 젖을 못 보았고 물론 누구의 눈에든지 띌까 보아 퍽도 비밀히 감추어 두었다. 그 싸고 싸둔 가슴을 대담히 헤치며 아직 입김을 대어 못 보던 내 두 젖을 공중 앞에 전개시키라는 명령자는 이제야 겨우 세상 구경을 한 핏덩어리였다.
이게 왠일인가?살은 분명히 내 몸에 붙은 살인데 절대의 소유자는 저 쪼끄만 핏덩이로구나! 그리하여 저 소유자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으레 제 물건 찾듯이 불문곡직하고 찾는구나. 나는 웃음이 나왔다. "세상 일이 이다지 허황된가……." 하고. 그리고 "에라 가져가거라." 하는 퉁명스러운 생각으로 지금까지 맡아 두었던 두 젖을 쪼그만 소유자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 하회를 기다리고 앉았었다. 그 쪼끄만 주인은 아주 예사롭게 젖꼭지를 덥석 물더니 쉴 새 없이 마음껏 힘껏 빨고 있다. 내 큰 몸뚱이는 그 쪼그마한 입을 향하여 쏠리고 마치 허다한 임의의 점과 점을 연결하면 초점에 달하듯 내 전신 각 부분의 혈맥을 그 쪼그마한 입술의 초점으로 모아드는 듯싶었다. 이와 같이 벌써 모(母) 된 선고를 받았다.
p.255
그러나 겨우 먹여 놓고 재워 놓고 누우면 약 2시간 동안은 도무지 잠이 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어찌어찌해서 잠이 들 듯하게 되면 또다시 바시시 일어나서 못살게 군다. 이러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기(機) 개월간 계속 되더니 심신의 피곤은 인제 극도에 달하여 정신엔 광증이 발하고 몸에는 종기가 끊일 새가 없었다. 내 눈은 항상 체 쓴 눈이었고 몸은 마치 도깨비 같아서 해골만 남았다. 그렇게 내가 전에 희망하고 소원이던 모든 것보다 오직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 종일만, 아니 그는 바라지 못하더라도 꼭 한 시간만이라도 마음을 턱 놓고 잠 좀 실컷 자 보았으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 진실로 잠은 보물이요 귀물이다. 그러한 것을 탈취해 가는 자식이 생겼다 하면 이에 더한 원수는 다시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정의를 발명하여 재삼 숙고하여 볼 때마다 이런 걸작이 없을 듯이 생각했다.
p.256~257
세인들은 항용, 모친의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모 된 자 마음속에 구비하여 있는 것같이 말하나 나는 도무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혹 있다 하면 2차부터 모 될 때에야 있을 수 있다. 즉 경험과 시간을 경하여야만 있는 듯싶다. …… 최초부터 구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5,6개월의 장시간을 두고 포육(哺育)할〔먹여 기를〕동안 영아의 심신에는 기묘한 변천이 생기어 그 천사의 평화한 웃음으로 모심(母心)을 자아낼 때, 이는 나의 혈육으로 된 것이요, 내 정신에서 생한 것이라 의식할 순간에, 비로소 짜릿짜릿한 모(母)된 처음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내 경험상으로 보아 대동소이한 통성으로) 모심에 이런 싹이 나서 점점 넓고 커 갈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므로 '솟는 정'이라는 것은 순결성 즉 자연성이 아니요, 단련성(鍛煉性)이라 할 수 있다.
p.260~261
1922년 4월 29일 1년 생일에 김나열의 모 씀.
《동명》(1923. 1. 1.~21.)
나는 꼭 믿는다. 내 모 된 감상기가 일부의 모 중에 공명할 자가 있는 줄 믿는다. 만일 이것을 부인하는 모가 있다 하면 불원간 그의 마음의 눈이 떠지는 동시에 불가피할 필연적 동감이 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나는 꼭 있기를 바란다. 조금 있는 것보다 많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꼭 단단히 살아갈 길이 나설 줄 안다. 부디 있기를 바란다.
p.271
「백결생(百結生)에게 답함」
《동명》(1923. 3. 18.)
오직 미리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장성함을 따라 교육자인 부모의 교훈을 신뢰할 만치 부모 된 자는 반드시 그 시대 시대를 이해할 만큼 공부하기를 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280
「내가 어린애 기른 경험」<조선일보>(1926.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