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아니고 '생리 중'입니다

「생리 공감」 - 김보람 (1)

by 김우진




이 피로 태어난 모든 이에게


생리는 몸의 일이다. 여성의 몸, 특별히 질 그리고 질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오랜 세월 금기시되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은 공유되거나 기록되는 대신 잊히고 삭제된다. 이토록 오랜 시간 이 피를 금기시한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방치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피를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로 만들었고 그 피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과 비용 그리고 고통은 모두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겨 뒀다. p.9


책의 프롤로그를 읽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뒤따르는 억울함 감정에 울컥했다가, 두 딸을 생각하며 더 꼼꼼히 읽자고 정신을 붙잡았다.





6살인 딸아이가 요즘 제일 관심 있는 주제는 임신과 출산이다. 언제부터인가 '배 속에 아기가 있는 일'에 관심을 갖더니 급기야 인형을 윗 옷에 집어넣고 임부 흉내를 내기도 한다. 머지않아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행여나 아이가 물을까 봐 생리용품을 눈에 띠지 않게 두었고 뒷처리도 아이가 모르게 해왔다. 남편은 뭐 어떠냐고 물어보면 말해주라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남편은 가늠도 할 수 없기에 쉽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으며 딸아이에게 말해주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 생리에 대해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한,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설명을 해도 일상에서 내 행동이 모순되게 나타날 것 같았다.





중학교 2학년 여름, 하교 후에 소변을 보다가 피가 같이 나왔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들어왔던 일이기에 크게 놀라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바로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요새 흔히 한다는 파티 같은 것은 없었지만, 축하할 일이라니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축하는 하루뿐이고 생리대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일부터 생리통에 시달리는 일까지 온통 귀찮고 힘든 일뿐이었다. 몸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늘 생리혈이 교복 치마에 묻을까 조마조마했고, 짝꿍에게 생리 냄새가 전해질까 봐 두려웠다. 생리기간 내내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때는 진통제 복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많았어서 아파도 약을 먹지 않고 참느라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생리대에 묻은 검갈색의 혈흔과 냄새, 습한 느낌이 더럽고 싫었다. 실제 생리혈은 붉은색 그대로이고 냄새도 나지 않는데 생리대의 화학성분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십 대 중반이 넘어서였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생리는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고 더 궁금해하지도 않고 참고 살아온 무심함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 몸인데, 매 달 찾아오는 일인데, 어떻게 그리 무심했던 걸까.


종교학 연구자이자 중세 가톨릭에서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연구 중인 민지 씨는 이렇게 분석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은 자기 몸과 다른 여성의 몸을 도저히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구에 상륙한 외계인을 일단 적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그들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자신은 알지 못하고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일을 '이상하고' '불경하고' '좋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p.39


남성이 불경하고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감추어야 했던 문화가 여성에게도 부정적인 인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말하지 않고 의문을 품지도 않고 그저 윗 세대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여성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생리를 하면 '진짜 여자'가 되었다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신성한 몸'인 것처럼 이야기하다가도 불결하고, 은밀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중성이 아직도 만연하다. 심지어 '피싸개'라는 혐오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충격이 컸다. 여자가 생리한다는 사실이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당혹스럽기도 했다. 땀흘리는것이 몸의 일인 것처럼 생리도 그저 몸의 일인 것인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생리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존재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더 자세히 생리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위축되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남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처럼,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 하나가 생리이다. '그날'이라고 돌려 말할 것도 없고, 예민해진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도 안된다.





스물두 살에 처음 수영을 배우게 되었고, 그 덕에 탐폰이란 생리용품도 알게 되었다. 수영 때문에 탐폰을 사용해야겠다고 했을 때 우려하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난다.


글을 올린 어머니는 아직 10대인 딸아이의 질에 탐폰을 넣어도 건강상 문제가 없는지, 처녀막이 찢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다른 엄마들도 댓글에 아직 아이인데 탐폰은 좀 그렇지 않겠냐고 답했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탐폰 경험이 없다. 그래서 때로는 '어머니'가 딸아이가 탐폰을 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p.90


엄마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만류했는데 훗날 그것이 '처녀막'을 염려하던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더 옛날 중학생이던 내가 자전거를 즐겨 탈 때도 만류하던 엄마의 얼굴도 같이 떠올랐다. 아마 같은 이유였을테지. 엄마도 그렇게나 몰랐던 것이다. 처녀막의 실상에 대해.


무지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겪게 될 공포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이제껏 수많은 금기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신에 시달렸고, 타자(남자)의 욕망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기호로 여겨져 왔다. 질은 숨어 있어 보이지 않고 무언가에 뚫릴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그 때문에 남성들은 처녀막을 찢고 처녀성을 정복하려는 욕망을 품게 되었다. p.119


실제로 나는 애인과의 첫 관계 후 피가 나오지 않았다. 애인은 왜 피가 안 나느냐고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했다. 정말 몰랐으니까. 그러나 애인은 그걸 기준으로 내가 첫 관계가 아니었다고 믿는 눈치였다. 그땐 그게 화내야 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내가 이상한 몸이라고 생각할지언정.


성별을 불문하고 처녀막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전 세대만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 조차도 잘못된 정보를 통해 그릇된 성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피상적인 성교육도 문제지만 '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다.






생리에 대해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다양한 생리용품이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다. 탐폰도 생리컵도 문화적으로 잘못 인식된 탓에 사용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의 그릇된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자신의 몸에 맞는 것을 본인 선택에 따라 고르고 사용해야 한다. 나아가 생리용품들은 안전해야하고 누구나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야한다는 인식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소녀 ×몸 교과서 - 윤정원, 김민지 / 우리학교 / 202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성애는 자연성이 아니라 단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