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하지 않는 삶이여 오라

「생리 공감」 - 김보람 (2)

by 김우진



아... 생리 안 하고 싶다.



둘째 출산 후 생리 기간만 되면 남편에게 하는 말이다. 생리 전 증후군부터 생리기간 중의 불편까지, 이제 출산 계획도 없는데 꼭 생리를 해야 할까? 제발 완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생리기간을 보내왔다.


그러다 생리 공감 책을 읽으며 피임 목적이 아니어도 생리를 중단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흥미롭고 솔깃했다. 김보람 감독이 다큐에도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본인이 겪어보지 않고 싣을 수는 없었다고 했던 이야기가 책에는 소개되어 있었다.



"생리를 안 해도 괜찮을까요? 그게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요?"

생리를 안 할 수 있습니다. 약을 먹을 수도 있고, 호르몬 주사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비타민제 처방으로 생리 양을 줄여 나갈 수도 있습니다. IUD나 임플라논 같은 기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생리를 하지 않는 것과 건강은 연관성이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p.229-230


막연하게 공상처럼 생리를 안 하고 싶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실제로 생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선택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이야기에 잠시 책장을 덮었다.


임신 계획이 없었던 십여 년 동안, 생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만 여기며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 여행기간에도 그저 받아들여왔다. 꼭 중요한 일이 아니어도 생활 속에서 한 달에 일주일 가량은 통증과 불편에 시달리는 일상 자체가 버거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진통제를 먹는 것이 전부였고 그 마저도 몸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무수한 날들.


내가 유독 무지했었던 것 같다. 관심을 안 두었거나. 아마 다른 여성들은 다양한 방법들을 찾으며 자신의 몸에 더 주체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나는 무얼 하며 사느라 내 몸에 그리도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후회와 자책이 뒤섞인 기분으로 그러나 한 편의 희망을 가지고 책을 마저 읽었다.


그 후 여러 시술법에 대해 찾아보고 남편과 상의도 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 상담도 받아 볼 예정이다. 혹시 시술이 적절치 않다면 차선으로 생리컵 사용에 도전해보려 한다. 이제부터라도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나의 의지를 발현하는 삶을 살고 싶어 졌다.


그리고 두 딸이 성장하는 시기에 맞게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두 딸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생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책의 한 부분을 먼저 남편에게 말해주며 같이 읽자 권했다.


수진 씨가 고등학생일 때, 사용한 생리대를 깜빡하고 그대로 화장실에 펼쳐 놓고 나왔다고 한다. 뒤이어 들어간 아버지가 피 묻은 생리대를 접어 휴지통에 버린 모양이다. 거실로 나온 아버지는 수진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만 생리한다고 자랑하느라 그랬지?"

중학교 동창인 서윤의 경우 거의 정반대 경험을 했다. 사용한 생리대를 잘 말아서 휴지통에 버렸는데 접착력이 없어 저절로 펴진 것이다. "이게 정신머리가 나갔다, 여자가 어딜 그런 걸 다 펼쳐 놓고 다녀?" 그걸 본 아버지에게서 서윤은 모욕에 가까운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수진 씨는 당시 아버지의 반응이 자신이 생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말했다. p.61


딸들이 생리를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도록, 생리에 관련된 여러 선택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조력하는 엄마와 아빠가 되고 싶다.





지난 29일 장혜영 의원이 '월경 용품 가격안정을 위한 3법'을 발의하였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보고 좋아하게 된 장혜영 '감독'이 어느 날 보니 '국회의원'이 되어 있었다. 그 후 그의 의정활동을 지켜보며 난생처음 진심으로 지지하는 국회의원을 갖게 되었다. 발의하는 법안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말 그대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생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생리용품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기업들에 대한 조치도 필요하거니와 무상 생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시급하다. 깔창 생리대 기사 이후 후원자들이 늘고(나 역시 소액이지만 매월 기부 중에 있다.) 있지만, 여전히 '생필품'을 무상 지급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크다. 그런 와중에 장혜영 의원의 법안 발의는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 '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났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존재의 기원인 이 피의 정체를 밝혀내고 정의할 것이다. 양이 많은 날 생리 컵을 질 안으로 밀어 넣으면 종종 손톱에 빨갛게 생리혈이 묻어 나온다. 그 피를 보며 누군가는 죽음을 떠올렸지만 나는 그 피로 행운을 빌었다.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면서 나를 간지럽히고 설레게 했던 이상한 희망이 당신에게도 전해지길. 이 피로 행운을 빈다. p.246


생리는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결코 여자와만 관련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 덕분에 인류는 존속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여자'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생리를 잠시 중단하고 싶을 때, 향후 몇 년간 임신 계획이 없을 때, 자신의 몸에 맞게 '생리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오늘도 딸아이는 임신 놀이를 하다 묻는다. "엄마, 뱃속에 동생 또 있는 거 아니야? 배가 왜 이렇게 볼록해?" "...... 아니야, 이건 엄마 살이야." 대답하면서 건강을 위해 운동 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덩달아 겉으로 보이는 배뿐만 아니라 뱃속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을 갖자고 또다시 다짐한다. 마흔 이후, '생리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나 자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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