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야기 EP22
영어를 배우는 단계에서 원어민과 대화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론, 그동안 공부해 온 영어 단어와 영어 문장들이 띄엄띄엄 생각은 나지만,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어렵다. 내게 질문을 건네고 대답을 한참 기다리는 원어민의 눈빛에 어느 순간 긴장되어 머리와 등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떨어진다.
어느 정도 영어를 공부하고 실제로 원어민과 몇 번 대화를 연습해 본 단계에서 원어민과 대화를 하는 것은 재밌다. 매번 완벽하지는 않지만, 직접 내뱉은 말을 원어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한다는 모습을 볼 때 작은 성취감도 느껴진다. 어느덧, 대화의 시간은 길어졌지만, 아쉽게도 대화의 깊이는 아직 얕다.
영어가 편하고, 평소에 원어민과 대화를 많이 하고, 심지어 그들의 문화까지 잘 이해하는 단계에서 원어민과 대화를 하는 것은 한국 사람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 단계에서 원어민과 대화를 할 때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 말을 많이 듣고, 질문에는 요점을 말하고, 대화 속에서 격식과 예의를 갖춘다. 어느덧 대화의 시간과 깊이가 모두 자연스럽게 길어지고 깊어진다.
영어 실력에 상관없이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화가 다른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기고,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영어로 질문을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사실 멋진 일이다! 하지만,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대화의 에티켓뿐만 아니라 원어민을 위한 문화의 에티켓을 알아두면 훨씬 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피해야 하는 5가지 대화 주제
Don't ask about age.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 "몇 살이세요?" 일단 나이를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서열을 정리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나이 서열 문화가 원어민들에게는 굉장히 낯설고 새롭다. 특히, 한 살이라도 더 젊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관리하는 여성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물론,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나이를 통해 취미와 관심사를 알아볼 수도 있다. 영어 실력에 상관없이 함께 공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주제가 있어야지만 서로가 어색하거나 뻘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질문부터 "How old are you?"라고 물어보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침착하게 기다리자.
나이 말고도 전형적인 예시로 날씨, 기분, 음식 등의 조금은 가볍고 편한 주제로 먼저 대화를 시작해 보자. 그렇게 나이라는 것을 잊고 사람과 사람으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자. 물론, 나이차가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그 또한 매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이라는 색안경을 벗어두고 진솔한 대화에 집중해 보자.
Don't ask about politics.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편을 나누고 싸우는 것이 기본 개념인 정치를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물론, 같은 정당을 지지한다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치하여 더 좋은 대화가 될 수도 있고, 반면에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면 모든 생각들이 불일치하여 최악의 대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피하자.
물론,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특정 정책을 통해서 서로의 관심사와 생각을 이해할 수도 있다. 조금은 진지하고 심각한 대화가 주제가 될 수도 있지만, 서로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관심이 많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주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질문부터 "Do you support an anti-abortion?"라고 물어보는 것은 조금 위협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주제를 통해서 천천히 서로를 더 잘 이해해 보자.
아무래도 나라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함께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로울 수도 아님 그저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로의 관심사를 이것저것 말해보면 분명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금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을 나눠보자.
Don't ask about religion.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부터 자신의 믿음을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자신의 믿음이란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쉽사리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로 나의 믿음이 흔들려서도 안되고, 어떠한 영향도 주거나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서로의 믿음이 더 두터워질 때 천천히 말해보자.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원어민 교사는 불교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집에서 파티를 한다고 초대를 받았다. 와인 한 병을 들고 그의 집에 찾아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춤추고, 놀기 바빴다. 혼자서 그의 집을 둘러보면서 다양한 책들과 많은 불교 장신구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가 불교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우리는 불교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고, 어느 주말에는 산 꼭대기에 위치한 절도 함께 찾아갔다.
개인적으로 무교이기 때문에 종교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종교 관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처음부터 "Do you believe in Buddhism?"라고 물어보거나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을 뿐이다. 종교라는 영역은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 아닌 조용히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조금은 편하게 먼저 이야기하기 전까지 너무 적극적으로 덤비지는 말자.
Don't ask about educational background.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부터 어느 학교 출신인지, 학위는 몇 개인지를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학벌과 학위는 그 사람의 지능 수준을 말해준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 나의 지능 수준을 기준으로 너무 높게, 또는 너무 낮게 차이가 나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판단을 하려고 든다. 따라서, 학벌이나 학위보다는 어떤 과목에 관심이 있고, 어떤 과목을 전공했는지를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오해하지 말자. 자신의 학벌과 학위에 너무 자랑스러워할 필요도 없고,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단지, 새로운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저 학벌과 학위만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상대방의 학벌과 학위에 관심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Which school are you from?"라고 물어보기보다는 "What subject did you major in?"라고 물어보자.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어떤 것을 이뤘는지 결과를 이야기하기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어떤 것에 도전했는지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어떤 대학을 졸업했고, 어떤 학위를 취득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과목을 전공했고, 어떤 부분이 재밌고, 어떤 부분이 어렵고, 또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조금은 더 깊게 대화를 나눠보자. 상대방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더 크게 공감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Don't ask about money.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월급은 얼마인지, 연봉은 얼마인지, 돈은 얼마나 버는지를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번다고 도움을 청하고, 조금 벌면 조금 번다고 창피함을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이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이제 세대가 바뀌면서 가지고 있는 자산을 공유하고 심지어 돈을 버는 방법도 공유한다.
외국계 기업에서는 직무가 같아도, 연차가 같아도 실적에 따라서 연봉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연봉 금액을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하는 순간, 누군가는 현타에 빠져 퇴사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비밀로 보장되는 연봉 계약서는 그들이 마지막 퇴사하는 순간까지 함께 가져가야 하는 비밀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밀도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다양한 온라인 채용 사이트에서 회사 별로, 직무 별로, 연차 별로 연봉 테이블을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부터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순간, 상대방이 그저 돈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관심사가 돈이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돈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사기꾼이 되고 싶지 않다면 돈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만들자.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은 언제나 옆에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영어를 배우고,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고, 마침내 영어가 편해지고 문화를 배우는 모든 단계까지 대화의 에티켓과 문화의 에티켓은 지속적으로 배워야만 한다. 상대방의 목소리, 톤, 발음, 상대방이 말하는 단어와 표현, 상대방이 말하는 방식, 그리고 상대방이 물어보는 질문 등 정말 다양한 요소들이 그 사람을 대신 정의한다.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은 함께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친절하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이고, 배려심 깊게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최대한 상대방을 편하게 만든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제스처를 따라 하고, 함께 웃으면서 대화를 오래 그리고 깊이 이어나간다.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위의 5가지 주제를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사실, 대화를 통해서 서로가 조금씩 편하고 가까움을 느낄 때 천천히 이야기하기 좋은 주제들이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처음부터 시작하기에는 바람직한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나중을 위해서 기다리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이다. 원어민과의 첫 만남과 첫 대화는 언제나 설레고 긴장된다. 그 커다란 설렘과 긴장감만큼 그 기억 또한 오래가니 부디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보자.
원어민과 첫 만남에서 피해야 하는 대화 주제 5가지
1. 나이
2. 정치
3. 종교
4. 학벌
5. 돈
Before you say something, stop and think how you'd feel if someone said it to you.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추고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 말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먼저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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